공부가 논문이 되는 덕업 일치를 이루고 싶어 (2)

by 콩밥

유니콘 교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을 의심치 않으셨고, 따라서 우리의 학회 논문을 꼼꼼히 읽어보시지는 않았으나 말씀하시기로서는, 그래, 뭐 분석이야 잘했겠지, 둘 다 열심히 하는 학생들이고, 라며 적절한 격려를 해주셨다. 그리고 그런데를 덧붙이시는 걸 잊지 않으셨다. 우리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숨죽여 앉아있었다.


논문을 써보신 분들은 ‘그런데’ 다음에 오는 말이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알짜배기임을 아실 것이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이 주제는 별 의미가 없었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분석이 쉽도록 a와 b를 섞었는데 실은 a, b, c 다 같이 섞여있어야 의미가 있으며 a, b, c를 섞은 것에 대한 연구는 더 할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실 알고 있었다. 분석 기법을 공부하다 보니 코딩을 하게 되었고 코드가 완성되고 나니 써먹고 싶어 졌고, 그러다 보니 그 분석 기법에 딱 맞는 실험 설계를 했다는 것을, 그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를 외치다 보니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그래프도 예쁘게 만들고, 표도 만들고, 적당히 디스커션도 하고 나니, 어쩌면 3, 4등 저널 정도에는 내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는 것을….


논문을 읽다 보면 이렇게 실험을 많이, 열심히 했는데 고작 3등 저널이라고? 싶은 논문들이 있다. 우리는 실험을 많이,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니, 3등 저널에 내볼 수는 있겠지만 아주, 아주 운이 좋아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현실로 돌아왔다. 교수님께서는 후배에게 요즘의 연구 트렌드와 해볼 만한 주제까지 던져주시는 수고를 마다치 않으셨다. 이번 미팅의 수확이라면, 후배의 졸업 논문 방향과 나의 웃음기를 말리는 교수님의 마지막 질문, 그래서 콩밥 양은 졸업 논문 얼마나 썼어요? 몇 챕터 썼어?


돌아오는 길에 공부 잘했지 뭐,라고 말하면서도 후배한테 조금 미안하고 조금은 창피하기도 했다. 교수님이 이 주제를 내게 던져주셨을 때가 벌써 3년 전이니 뭉그적거린 내 잘못이다.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 배워나가는 것이라 좋게 마무리해야겠다.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는 것은 우리의 자유다. 그런 자유를 누리게 해 주시는 교수님과 주변 연구 환경에 감사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우리의 피와 살이 되겠지만, 실적을 살찌워주지는 않을 것임을, 구덩이에 다이빙하기 전에 잘 살펴보아야겠다.


공부가 논문이 되는 덕업 일치를 이루는 날이 온다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충분히 이 바닥에서 전문가로 인정받는 순간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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