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바이오리듬

by 콩밥

그렇게 들뜰 때가 있다. 교수님께서 어떤 실험에 관한 질문을 메일로 주셨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답장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서 보낸 것 같아 뿌듯했다. 출근길 만나는 관악산은 상록수의 짙은 초록과 막 움튼 연둣빛 잎새들이 얼룩덜룩한 것이 마치 털갈이를 하는 것 같아 눈이 즐거웠다. 오프라인 학회가 하나둘씩 열리고, 숙소 예약을 하고 나니 비행기를 탈 생각에 설레었다. 날이 따스워지니 달리기를 하는 옷차림도 가벼워지고, 그렇게 마음도 가벼워져 두둥실 뜬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이런 걸 보고 사람들은 봄을 탄다고 하는 걸까?


이렇게 이상하게 고양된 후에는 항상 바닥을 치는 시기가 왔기 때문에 슬슬 무서워졌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연구실 후배가 말하길 <마음의 법칙>이라는 책에 따르면, 좋은 것은 아끼고 싫은 것은 한 번에 끝내야 한단다. 시간이 흐르면 자극에 무뎌지기 마련이니, 아무리 신나는 일이라도 처음에 느꼈던 짜릿함은 곧 사라지고, 불편한 일일지라도 꾹 참으면 곧 적응을 해서 괜찮아진다나.


나도 모르게 코로나 시기의 정적인 상태에 익숙해졌었나 보다. 축제도, 콘서트도, 모임도 없고, 감정을 눈으로 최대한 표현했던, 입을 크게 쩍쩍 벌리며 면전에서 하품을 할 수 있었던 그 시기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학교에 학생들이 왁자지껄 몰려다니고 때마침 아카시아 향을 실은 봄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와중에 하늘은 눈이 부시고 파랗다 보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봄은 너무 아름답고, 그래서 그 오감의 자극에 쉬이 휩쓸렸다가 금세 조용한 슬픔을 느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벼운 슬픔은 채워지지 않는 욕심에서 온다. 논문을 더 잘 쓰고 싶다. 빨리 실험 데이터를 정리해서 마무리하고 트렌디한 다른 실험을 하고 싶다. 좀 더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아지고 싶은 그런 마음은 어딘가 깊은 곳에서 조용히 흐른다. 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봄으로 가려졌던 그 마음이 자꾸만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눈앞의 글자들에 집중할 수 없게 한다. 한 문장을 쓰면 바로 그 문장을 반박하는 질문이 떠올라서 지금까지 해놓은 실험을 없던 걸로 만들고 싶게 한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흐르고, 어찌 되었든 금토일에는 해야만 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평일에 몇 문장이라도 써야 한다. 내가 가진 짚과 흙으로 기와집까지는 못해도 초가집이라도 지어보자고 다짐해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은 없지만, 어디선가 그가 한 말을 포스트잇에 적어 모니터에 붙여놓았다.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 이제야 그 사람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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