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탐

by 콩밥

어제는 문득 옆 건물 연구실에 새로 오신 박사후연구원을 검색하고 싶어졌다.


어쩌다 보니 우리 연구실은 옆 건물의 다른 연구실과 각자의 실험실을 공유하여 남의 실험실도 제 것인 양 드나들게 되었는데, 어느 날 못 보던 분이 실험실에 계셨던 것이다. 어차피 오며 가며 계속 마주칠 테고 그때마다 초점 나간 눈으로 시선을 피하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싫어서, 통성명을 하였다. 나는 누구 교수님 연구실의 아무개이고 무얼 한다 너스레를 떨고는 무슨 실험을 하시냐 새로 오신 박사과정이시냐 불쾌하지 않을 법한 선을 아슬아슬하게 지키며 약간의 신상조사도 하였다. 그런데 그분의 첫인상이 상당히 선하고, 뭐랄까, 순수한 느낌인지라 박사 후 연구원으로 온 것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무튼 그분의 이름이 어딘가 낯익다는 생각이 퍼뜩 스쳐서, 이름과 출신학교를 검색해봤다. 웬걸, 예전에 읽었던 기사의 주인공이었다. 철없던 그 시절에는 몰랐는데 그 기사에 난 연구 결과로 기업에 기술 이전도 하고 1등 저널에 논문도 내고 저번에 듣기로는 올해 엄청난 규모의 연구 과제도 따셨다고…


내친김에 구글 스칼라에서 영문 이름도 검색해봤다. 40편이 넘는 논문이 주르륵 펼쳐진 페이지 가장 위에 1등 저널에 낸 그 논문이 있었다. 100이 넘는 피인용수에 나도 모르게 오오, 개쩐다, 감탄을 하고 말았다. 옆자리에서 후배가 뭐가요? 하며 물어왔고 나는 그분이 무슨 내 자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벌떠벌 이력과 스펙을 읊어주었다.


나와 연구실 후배의 작은 목표 중 하나는 개쩌는 논문을 쓰는 거다. 언젠가는, 모두의 구미를 당기는 주제로 아무도 시도해본 적 없는 실험을 해버리는 거다. 우리가 신호탄을 피융 쏘아 올리면 해외 다른 연구자들도 그걸 보고 몰려와서 너도 나도 비슷한 연구를 하고, 참고할 것이라곤 우리 논문뿐일 테니 다들 우리 논문을 인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엉큼하고 즐거운 상상이다.


첫 번째 논문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꼬박 일 년 반쯤 걸렸고 두 번째 논문도 두세 번은 퇴짜를 맞았다. 최근에는 제안서도 하나 떨어졌다. 거절에 점점 덤덤해지고는 있으나, 그런 논문을 쓰려면 여기서 한참은 젊음을 뭉개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체득하고 있다.


어떻게든 흠을 찾아보고자 40편의 논문을 훑으며 1 저자로 쓴 논문은 몇 개인지, 혹시 허접한 저널에 낸 건 없는지 한참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경탄만 나올 뿐, 결국 나와 후배는 이분은 가까운 목표로 잡기에는 우선은 좀 과하니 우리 체급을 더 키워야겠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후배와 함께했던 지난번 구덩이 탐사의 성과는 그저 그랬지만, 이번에 우리가 작업하고 있는 주제는 진짜 괜찮을 것 같다. 아무도 안 해본 실험을 하려고 이것저것 부품도 사두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잘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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