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시간이 어디 있어

by 콩밥

00아, 잘있냐. 오늘 오랜만에 사촌들의 이름을 불렀다. 다른 애들은 무얼 하며 사는지 모르겠지만, 큰 이모의 딸, 작은 이모의 딸과는 그나마 생존신고를 하는 수준으로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생 시절 대부분의 방학을 외갓집에서 보냈다. 아침마당을 보며 아침을 먹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며 참외들 이불을 걷어주고, 저녁엔 여섯시내고향을 보며 계란찜을 먹었다. 그렇게 빈둥거리다 보면 작은 이모네 딸이 왔다. 작은 이모네도 맞벌이를 하시니 그 애도 한번 오면 몇 주씩 지내다 갔다.


우리는 낮에는 자전거를 타며 논밭 사이로 난 흙길을 쏘다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옆 마을로 일을 하러 가면 따라가서 '할머니 파밭, 파바바바바, 파밭' 따위의 노래를 목청이 떠나가라 부르며 기다렸다. 밤이면 돗자리나 평상에 누워서 날벌레를 쫓으며 노닥거리거나 다 같이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는 큰 길가로 산보를 나갔다.


큰 이모네 사촌들은 명절에나 볼 수 있었는데, 그래도 나, 큰 이모의 딸, 작은 이모의 딸, 우리 셋은 한두 살 차이밖에 나질 않아서 마음이 잘 맞았다. 그렇지만 이모 삼촌들은 자주 의가 상했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문제들이 있었고, 그래서 데면데면해진 지 꽤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성인이 되었고, 우리의 부모님들, 그리고 부모님의 부모님들도 공평하게 나이가 들었다.


엄마는 여러 사건 이후로 외갓집에 내려가는 횟수가 뜸해졌는데, 나밖에 모르던 나는 그게 썩 나쁘지 않았다. 번갈아가며 운전을 하는 것도 피곤하고, 내가 운전을 하지 않을 땐 조수석에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바쁘다고 대학원생이 벼슬인 양 굴었다. 당일으로라도 다녀오자고 해도 주말의 비밀 데이트가 하루 줄어드는 것이 뭐가 그리 아까웠는지, 도리어 엄마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데 꼭 외갓집을 가야겠냐며 짜증을 냈다.


코로나가 수그러드니 더 이상의 핑계도 없고, 엄마가 요새 혼자서 당신의 엄마 아빠 집으로 왕래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이모 삼촌들 사이에도 짧은 연락이 오갔고, 나도 철이라는 것이 조금 들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께 주기적으로 전화를 드리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나를 많이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다. 나는 전화를 할 때마다 조만간 갈게요 기약 없는 약속을 했다. 괜히 민망스러워 말은 하지 않지만 나도 나름의 계획이 있다. 박사 논문 디펜스만 끝나면,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여행도 가고, 엄마한테도 며칠의 휴가를 줘야지, 남자 친구가 오래 기다렸으니 남자 친구랑도 며칠 여행을 가야겠다, 그런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몇 년 전부터 아무것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다. 나잇값을 못하고 응석을 부리던 시절의 죗값을 치르는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열심히 해서 졸업을 빨리 했어야 했는데, 엄마가 아프기 전에 좀 더 신경 썼어야 하는데, 뭔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사실 과거로 돌아간다고 뾰족한 수가 생길 리도 없는데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할아버지의 뇌에 언제 작은 세 개의 구멍이 생긴 건지, 그게 세 개라는 것에 감사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더 많이 생길 것을 걱정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곱씹을 수 있는 따뜻한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플 수도 있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다. 내가 계획해 놓은 미래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는 전혀 다를 수도,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왜 몰랐는지 모르겠다.


졸업을 하고 여행을 가고 그런 것도 다 좋은데, 할아버지가 기다리신다는데 주말 하루 시간을 못 낼 것은 뭔가. 세상의 많은 영화와 문학이 얘기하는 것도 죄다 비슷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아프지 말구 잘 먹고 잘 자야 해. 사촌들과의 짧은 인사에 평소처럼 ㅋㅋㅋ를 붙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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