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학교 가까이로 이사를 왔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학교 가는 셔틀 정류장으로부터 걸어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데, 야트막한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 살살 걸어 내려오기 좋다. 아침에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건널목마다 노란 깃을 들고 교통지도를 하는 노인들이 거기에 있다.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지나치면 시장 골목으로 접어든다. 시장엔 좌판에 얼음과 생선을 깔고 있는 상인들이 있고, 아침으로 저걸 먹을까 싶지만 벌써부터 닭을 튀기고 떡볶이를 만드는 가게 주인들, 아이 손을 붙든 작은 가방을 멘 부모들이 있다. 작은 수레를 끌고 다니는 할머니,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 그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종종걸음으로 지하철역을 향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요즘은 길가의 노인들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저들은 누구의 할머니, 할아버지일까? 손주의 등굣길을 살피고 싶어 자원하신 것인지, 아니면 동네주민센터에서 권유해서 나오신 것인지, 사소한 물음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흩어진다. 지팡이를 짚고도 한걸음 한걸음이 불안한데 해뜨기가 무섭게 어디로 나서는 것일까, 아침에 장을 봐서 누구의 밥상을 차리려는 것일까, 그런 생각은 이어서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로 향한다.
이건 다 얼마 전 읽은 박완서 작가의 글 탓이다.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그렇기에 책임도 느끼지 않는 손자에 대한 할미의 사랑, 민들레 꽃에 함께 얼굴을 맞대는 손자의 꼬수운 살결 내음이 불러일으키는 돌아가신 아버지와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랑에 대한 기억,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담담한 글이 자꾸만 떠오르는 탓이다.
몇 해 전을 기점으로 나의 마음이 크게 변하고 있다. 어떻다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좀 더 많이 상상하게 되고 어쩔 수 없는 일들에 화를 덜 내게 되었다. 엄마가 나에게 할머니, 할아버지 흉을 보면서도 실은 그리워하고 있고, 그래서 내가 엄마의 편에 서서 당신의 부모를 욕하고 찾아뵙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흰쌀밥에 계란찜을 비벼먹는 것을 좋아하는 포동포동했던 나를 위해 오토바이를 몰고 읍내 시장에 가서 계란 30알을 사 오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코로나를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몇 년을 찾아오지 않는 나와 엄마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을, 그럼에도 쌀과 참외를 서울로 부치는 두 분의 마음을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