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헛한 주방에 앉아

by 콩밥

지금은 7월 2일에서 3일로 넘어가는 새벽이고, 나의 불성실함을 고백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이번주는 연구실에 이틀이나 무단으로 결근했고, 어제는 처음으로 늦잠 때문에 세미나에 불참하면서 지도교수님께는 아프다고 뻥을 쳤다. 나의 또 다른 공동 지도교수님은 지금 붙잡고 있는 논문 초고를 6월이 가기 전에 마무리하라 하셨는데, 지난주 내내 한 것이라곤 남의 논문에서 그럴 듯한 문장들을 가져다 엉성하게 짜 놓은 서론뿐이다. 이 논문에 넣기로 한 어떤 실험은 너무 간단해서 하기만 하면 되는데 이번주 내내 미루다 오늘 겨우 했다.

지지난주부터 그저께까지 대체 뭘했느냐면 앞으로 나와 만날 일이 없을 중고등학생들의 기말고사 대비 보강을 했다.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거의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스쳐지나간 수많은 학생들은 나와 3개월을 함께했든 3-4년을 보아왔든 기간과 상관없이 죄다 소식이 끊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 역시 그 아이들에게 연락할 마음은 딱히 없으며, 나조차도 중고등학교 때 다녔던 학원 선생님과 연락을 주고 받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원장쌤인, 학생이 서른 명도 되지 않는 단출한 동네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근 2주 동안은 연구실에서 일찍 나와서 네다섯 시부터 열 시까지 조는 아이들을 깨우며 문제를 풀라고 들들 볶고 채점하고 설명하고 채점을 했다. 학원에 상주하는 선생님은 원장쌤 뿐이고, 평소 주 2회 정도 출근하는 파트 타임은 나 말고 두 명의 선생님이 더 있다. 한 명은 이 학원을 다녔던, 올해 대학에 입학한 친구다. 이 친구는 대학 종강과 함께 자유의 몸이 되면서 추가 근무 요청에 호락호락하게 응해주질 않았다. 원장쌤은 꽤나 야속하게 생각했지만 나만 해도 엄마 학원이 아니었으면 진작에 때려쳤을 것이기에 아르바이트생에게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다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한 분은 다른 학원의 원장님인데 알고 보면 엄마의 고향 친구이시다. 원장쌤과 내가 도저히 커버할 수 없는 영어를 지원해주고 계신다. 문제는 학생들이 대부분 전과목을 수강하고 있는데 영어쌤과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은 거의 허수에 가까웠으므로,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진 우리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동생을 서울로 불러들여야만 했다.

동생이 올라오면서 우리와 살고 있는 엄마개 콩이와 제주도에서 지내던 강아지 세마리도 상봉하게 되었다. 푸들 네 마리는 떼로 몰려다니며 분갈이용 흙 포대나 인간용 간식을 뜯어 배부르게 먹는 등의 말썽을 피운 전적 때문에 며칠은 학원에 함께 출근해서 원장실에 갇혀있기도 했다. 어쨌든 40평 아파트가 개 네마리와 세 모녀에게 절대 좁은 평수는 아니었지만 초대 손님들이 있을 때는 넓지 않았다.


대여섯 학교의 기말고사 기간이 10여일 안에 몰리면서 학생들이 우리 집에서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된 것이었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작년부터 우리 집이 교습소로 등록되어있었고, 실제로 교습소로 썼기 때문에 주방에는 넓은 책상 하나와 방 두 개에 작은 책걸상이 여섯이나 있다. 아이들은 어떤 날에는 학교별로, 어떤 날에는 학년별로 우리 집에 들어와서는 교과서를 읽고 외우고, 문제를 풀고 고치다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시험 직전에는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동생은 강아지를 두 마리씩 산책시키고 돌아와서 채점을 했고, 나와 원장쌤은 틀린 문제를 열심히 설명하고 전범위를 다시 훑어주는 식이었다. 새벽 두 세시를 넘기는 것은 예삿일이 되었다.


학생들을 보내고 나면 우리 셋은 서로를 쳐다보면서 야, 이건 정말 한 땀 한 땀 만드는 가내수공업이다, 하며 낄낄 거리고는, 쉴새없이 떠든 후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다같이 쇼파에 앉아 TV 멍을 때리다가, 어기적어기적 하나씩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어떤 밤에는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자문하면서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에 눈물을 흘려보냈다. 치워도 치워도 채숫구멍을 막고 있는 우리 모녀의 머리카락처럼, 내 월급과 실험 자재비를 책임지는 연구 과제와, 앞으로 더 써내야 하는 논문과,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데이터에 대한 생각들이 한데 엉켜서 머릿속이 엉망이 되었다.

어쨌든 아이들은 종종 툴툴거리고 졸음에 굴복하기도 했지만 정말이지, 시험을 너무, 잘 치고 싶어했다. 학원 간판에 자기주도학습을 내걸은 것 치고는 학생들의 학원/교습소 체류 시간이 너무나 길었지만,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공부를 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철저히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고 되뇌었다. 학원에서 나오는 수입이 우리 가족 수입이니까, 고객이 만족해야 계속 이 집 월세도 내고, 네 마리의 푸들도 모시고, 제주도 집 대출도 갚고, 동생 학비도 낼 수 있다, 하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고객 만족과는 별개로 내 삶은 계속 피폐해졌는데, 우선 하루를 여섯시에 시작해서 헬스장에서 쇠질을 해야먄 행복해지는 나의 완벽주의 탓이었다. 눈을 뜨면 아홉시가 훌쩍 지나 있었고, 온 몸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억지로 연구실에 출근해서 논문을 몇 개 읽고, 몇 문장을 대충 긁어 모으고, 시험체를 여기 옮겼다 저기 옮겼다 한 날은 그나마 만족할 만한 날이 되었다. 어떤 날은 일어나자 마자 씻지도 않고 남자친구 집으로 피신을 갔다. 책상과 침대 하나로 가득 차는 방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이불을 푹 덮어쓰고 몇 시간을 더 자고 일어나서는 서브웨이로 한 끼를 떼웠다. 거기서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실컷 응석을 부리다 학원으로 출근을 하면 학업적 성취는 저조했을지 몰라도 다시금 살만해졌고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고작 2-3주가 흘렀다. 지금은 학생들이 빙 둘러앉아 고개를 숙이고 문제를 풀던 주방 식탁에서 글을 쓴다. 엄마와 동생과 강아지들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떴다. 아침에 제주도로 떠나는 엄마와 동생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았다. 둘의 얼굴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벼르고 벼르던 애플 워치를 질러버렸고 워치병은 씻은 듯 사라졌다. 아이들은 시험을 참 잘 쳤다. '선생님! 저 수학 이번에 100점이에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느낌표 갯수만큼이나 나도 기쁘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 일상을 묻고 지지고 볶고 일년에 네 번은 이렇게 합숙 훈련을 하는 사이지만, 어느 인연이든 그러하듯 어느 날 갑자기 상관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콩이는 자신의 방석을 되찾았고 내 일상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조금은 헛헛하지만 그래서 음흉하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가게 되는 흡족한 밤이다.


(작년에 썼던 글인데, 요즘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는게 웃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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