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여행기
공식적인 과거 애인의 수는 한 명, 놀다가 외박한 적도 없다. 개방적인 척하시지만 한없이 보수적인, 게다가 매일 영상통화를 거시는 부모님을 둔 나로서는 남자 친구와 여행 한 번 가려 치면 몇 달 전부터 밑밥을 깔아야만 한다. 엄마가 특히 예민하신데, 어느 정도냐면, 어린 시절 친구가 몰래 집에 놀러 왔을 때 지저분한 방을 보여주기 싫어 닫아 놓은 문을 보고 "누가 집에 왔다 갔지?"하고 추궁했을 정도다.
두 세 달 전부터 정교한 거짓말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수고로움을 감수할 만큼 지금의 애인과는 죽고 못 사는 사이이다. 연구실에 간다며 맨얼굴에 추레한 차림으로 나온 나와의 홍대 데이트에 감사해하는, 4년간 불평 한 번 한 적 없는 남자 친구에게 통 크게 보상을 해줘야겠다 싶었다. 일정은 학회 정도로 얼버무릴 수 있는 2박 3일로 타협을 봤기에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선 안되었다. 그래서 행선지는 비행기로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일본이면서, 이틀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도시, 나고야가 되었다.
그와 나는 닮은 듯 전혀 달라서 여행 준비부터 온도가 달랐다. 애인은 나고야 여행 책을 사서 탐독하고, 아예 J로 시작하는 일본어 자격증 준비를 시작했고, 방문할 맛집을 검색해서 메뉴를 하나하나 읽고 외웠다. 숙소도, 항공권도, 가격과 후기를 꼼꼼하게 따져봤다. 나는 그의 옆에서 그럴듯한 학회 장소를 물색하며 열정이 식지 않도록 간간히 칭찬과 감탄을 연발하면 되었다.
나고야 공항에 도착해 열차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니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나고야는 산업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볼거리와 먹을거리, 즐길거리가 쏠쏠하다고 했다. 짐을 풀자마자 강행군을 시작했다. 오손도손 우산 하나를 나눠쓰고 잘 정돈된 큰 도로 변을 따라 오스 상점가로 향했다. 간판에 적힌 가타카나와 히라가나를 떠듬떠듬 소리내어보는 입에 입김이 서렸다.
오스 상점가의 '오스'는 크다는 뜻이다. 빨갛고 큰 대문으로 장식된 입구를 지나면 옷가게, 빵집, 닭튀김 가게, 특산물 가게, 메이드 카페 등으로 가득하다. 목적지 없이 골목골목을 훑으며 각종 주전부리를 먹었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쪼그리고 앉아서, 길가에 서서, 간이 식탁에 앉아서, 평범하고 따끈한 메론빵, 붕어빵이랑 비슷하지만 좀 더 크고 깔끔했던 도미빵, 달고 짠 아카미소(콩으로 만든 된장, 나고야의 향토음식)에 잠긴 타코야끼, 튀김 쪼가리를 넣어 김으로 싼 뜨끈한 주먹밥, 아카미소에 절은 당고(경단) 따위를 먹었다. 맛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뭐가 그렇게 행복했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오스 상점가 주변에는 오스 칸논(신사)이 있는데, 하필 1월이라 겹치는 지역 축제도 없고 공사 중이었어서 건물의 절반이 가설 구조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뭐 어때, 진한 향 냄새를 맡으며 계단을 올라 무사히 전역하기를, 논문 잘 쓰기를, 하며 서로의 한 해가 무탈히 지나가길 빌었다.
다음 날에는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와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의 가호 아래, 소문난 카페에 들러 뜨거운 원두커피와 팥이 올라간 오구라 토스트로 아침을 때웠다. 적당히 말캉하고 달달한 팥과 직접 구운 담백한 식빵, 커피의 쌉싸름함의 조화가 너무나 완벽했다! 그러고는 웬 TV 타워가 명소라길래 지하철을 타고 몇 정거장을 이동했다. 타워는 잘 봐줘야 랜드마크 정도였는데, 그 옆에 길쭉한 은쟁반 같은 구조물을 받치고 있는 거대하고 높은 기둥들, 그 사이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펼쳐지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인공 연못이 장관이었다. 밤에 보면 조명과 어우러져 더 아름답다지만,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과 유리 바닥도 못지않게 눈부셨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부지런히 걸었다. 관광객 티를 실컷 내면서 관청 맞은편 길거리에서, 과학관 앞에서, 백화점 주변 거대한 마네킹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그렇게 흘러 흘러 옥색 지붕의 나고야성에 도착했는데, 그마저도 공사 중이어서 들어가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고야성을 배경으로 슬픔에 잠긴 흐린 얼굴을 사진으로 남겼다.
번화가로 돌아와 나고야 메시(나고야의 향토음식) 중 하나인 히츠마부시(장어 덮밥)로 든든히 보양을 하고, 백화점 51층에 위치한 카페에서 값비싼 디저트를 시켜 먹으며 노을 바라보는 사치를 부리기도 했다. 마지막 날 밤에도 여전히 부모님은 영상통화를 걸어오셨지만, 무사히 치러냈다. 야심한 시각의 나고야 시 외곽에는 한껏 진한 화장을 한 기모노 차림의 여성들이 줄지어 서 있는 요상한 분위기의 건물이 드문드문 있었고, 우리는 바짝 쫄아 그 옆을 지나갔다. 맥주와 닭튀김-나고야는 닭요리로도 유명하다-, 아카미소에 절인 무와 묵으로 야무지게 남은 배를 채워주었다.
돌아오는 날엔 오구라 토스트를 한 번 더 맛보기로 했다. 그런데 항공사에서 문자가 왔다. 대수롭지 않게 확인했는데, 이게 웬걸, 비행기가 연착해서 제 시각에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내가 교토대에서 학회를 마치고 교토-김포 대한항공을 타고 간다고 알고 계시는데, 이미 시간도 알려줘 버렸는데, 심지어 데리러 오기로 하셨는데-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급하게 더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 표를 뒤져보았다. 있다! 시간을 맞출 수 있는 비행기 편은 딱 두 대였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배로 비싼 항공권이냐, 지금 당장 출발해도 탈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항공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색이 되어 빌빌 거리는 나에게 남자 친구가 당장 출발하자고 했다.
카페 앞 100미터 거리에 마침 택시 한 대가 있었다. "oo 호테루 마데 오네가이시마스." 하, 갈고닦은 그의 일본어 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기차역으로 달리는 택시에서, 바로 공항으로 가는 기차가 있을까, 없으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비싼 표를 끊어놓을까,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침착한 척했지만, 나 때문에 여행의 마지막을 망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힐끔힐끔 그의 눈치를 보았다.
캐리어를 양 손에 들고 냅다 뛰어 기차역 창구에 갔다. 남자 친구는 뭐라 몇 마디 하고 표를 계산하더니 2분 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한다고 했다. 팔과 다리는 터질 것 같고, 침에서 비릿한 금속 맛이 났지만, 그의 뒤를 쫓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기차에 몸을 싣기는 했는데, 야속하게도 기차는 제 속도로 달렸다. 이 특급열차는 비행기 탑승 시각 10분 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만약 수속을 마감해버리면 이 표는 날아가고, 비싼 표도 사야 하고, 그럼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발 우리를 두고 한국으로 떠나지 말라고 전하고 싶은데, 항공사에 수십 번 전화를 걸었지만 ARS 서비스는 끝내 상담사를 연결해주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비행기 탑승을 시작하는 시각에 딱 맞춰 데스크에 도착했고, 선한 승무원들이 우리를 비행기까지 호위해주었다. 땀범벅이 된 얼굴로, 핏줄에 십 년 치 아드레날린이 흐르는 것 같은 상태로 좌석에 앉고 나서야, 비로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와, 이게 가능하네!"
이따금 이 살 떨렸던 순간을 안주거리로 삼곤 한다. 내가 제 때 문자를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네가 일본어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택시가 없었더라면, 기차를 놓쳤거나, 아니면 기차가 조금이라도 늦게 출발했더라면 아직까지 이 비밀연애를 지킬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