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홍콩 (1)

2025.11.05

by 콩밥

비행이라는 것은 평소에 쓰는 비슷비슷한 일기와는 다른 글을 쓰고 싶게 하는 묘한 구석이 있다. 인터넷이 되질 않으니 유튜브를 틀고 멍청하게 있을 수 없다. 동영상을 미리 다운로드하여 둘 수도 있었겠지만 그 정도로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예전에 사놓았던 전자책을 읽을 수밖에.


인천에서 홍콩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이슬아 수필집을 읽었다. 홍콩에서 만 일 년을 살았고 앞으로 별 일 이 없다면 일 년을 꼬박 더 지내야 하니 이제는 홍콩으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새삼스럽다. 이 작가의 글이 꽤나 구체적이어서 읽다 보니 나의 유년시절부터 전 애인까지 온갖 옛 기억에 마음이 몽글거렸다. 거기에 나에게 맞추어 저장된 음악들을 듣고 있으니 그 느낌이 배가 되어 속이 울렁거리고 조금만 노력하면 눈물도 흘릴 수 있을 것 같다.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되어버렸다.


근 5년간 해외 학회에 참석했고 남는 시간에는 성의 없는 여행을 했다. 그리고 홍콩에 나와 얼마간 살아보면서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비슷하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가족과 애인이 있는 한국에 직장을 구하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생각의 수순이 아닐는지? 그래서 변변찮은 이력으로도 국내 대학에 지원서를 난사하고 있는 중이었다.


손톱 옆에 난 거스러미를 뜯고 있으니 어제 망해버린 임용 면접이 떠오른다. 지도 교수님은 최선을 다했다면 된 거라 하셨지만 항상 끝난 후에는 내가 최선을 다한 게 맞는지 의문스럽다. 강의 경험이 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잘할 수 있다고 말이라도 당차게 해 볼걸, 따위의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구비가 크지 않아서 구조 부재 단위 실험은 해보지 못했다고 답한 것이 떠오르면서, 내가 정말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하나마나 한 생각들로 이어진다. 막연하게 좋은 선생님이, 좋은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 지금보다 더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치환되어야만 하겠지.


한 곳에 정주하다 보면 생각도 한 지점에 고여버리는 것 같다. 이전에 써둔 일기를 넘겨보니 다 똑같은 내용들이다. 논문 빨리 쓰자, 실험이 안 된다, 리비전 힘들다… 그러니 이렇게 한 번씩 공중에 떠 있는 것은 좋은 환기가 된다. 더불어 예전보다 조금 더 건강해진 것 같은 엄마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조금 더 늙어버린 콩이도 두 손으로 북북 긁어줄 수 있었으니까 위로가 된다. 감기 몸살은 한국에 두고 옹동이 질환은 홍콩으로 가져가면서 유튜브를 멍청하게 스크롤하며 순간을 흘려보내는 자기 학대는 그만해야지라는 진부한 결론을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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