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신이 있다면,

by 콩밥

홍콩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있었던 종교적인 체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다들 한 번 쯤은 겪는 일이 아닐까 궁금하기도 하다. 믿는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나마 종교에 가까운 활동이라고는 마음이 힘들어질 때 법륜 스님 영상을 보면서 욕심을 버리려고 노력해보려는 것 정도다.


이른 새벽 비행기에 약간의 피곤함을 느끼며 안경을 빼고 흐릿한 시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내 육체가 껍데기처럼 느껴지고 내가 마치 주변의 그 어떤 것과 견주어도 더 낫지도 못하지도 않은 아주 동일한 것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눈꼬리에 눈물이 고이다 뺨을 타고 방울 방울 흘러내렸다. 장 그르니에가 <섬>에서 말했던 '공(空)의 매혹'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발가벗은 몸으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만약 이런 느낌이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종교가 말하는 신에 대한 경험이라면, 이제 나는 기꺼이 종교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종교는 없지만 신이라 불리는 것을 느껴본 적은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과거와 미래라는 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과거도, 미래도, 허구는 아니지만, 분명 존재하는 명백한 진실임에도, 의식 너머에 있는 공허한 개념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약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현존'이라는 것의 현현(顯現)이라면 이제는 기꺼이 그 개념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껍데기가 아니라 그 자체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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