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서울 (2)

2025.11.07

by 콩밥

며칠 전 결심 했듯이 뇌를 유튜브에 담가 절여버리는 자기 학대는 아직 하지 않고 있다. 작심삼일의 딱 삼일째이기는 하지만. 한편 한국에서 얻어온 옹동이 질환은 고새를 못 참고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기 시작했다. 밀린 일 중 하나였던 논문 수정을 끝마쳐보겠다고 하루 종일 앉아있었던 게 화근이 되었다.


출혈을 보이는 장기가 하나가 아니어서 그런지 점점 두통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연구실에 풀었던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어기적 걸어 나왔다. 참, 그 그저께 망했다는 면접은 어찌어찌 운이 좋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런데 그게 다음 주인지라 이럴 바에야 일찍 한국에 들아가 병원도 들러야겠다는 생각이다.


맞다, 또 비행기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틀 만에 한국에 다시 들어간다.


오늘 남자친구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만나 진탕 놀 생각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10여 년 연애의 산물로 덥석 결혼을 약속해 버린 그는 약혼녀를 돌보기 위해 서둘러 그 자리를 마무리하게 되겠지… 그 생각에 이르자,

공항에 데리러 가는 건 어려울 거 같아. 적당히 마무리하고 바로 갈게.

다소 난처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에게 내심 서운했던 몇 시간 전이 떠올랐다.


우리가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매일같이 달라붙어 먹고 말하고 듣고 사랑했던 아주 사사로운 일상들의 대부분은 이미 휘발되었다.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다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 나는 좀 더 그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 것인가 생각했다. 당연히 나를 살뜰히 챙겨주고 살펴주고 사랑해 줄 거라는 그 기묘한 믿음은 비슷비슷했던 그 일상들로부터 온 것일까?


구직활동을 핑계로 우리 관계에 있어 진지한 자기 성찰을 소홀히 한지도 꽤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즈음부터 본격적으로 남자친구가 나에게 많은 것을 맞춰주었다. 나를 그에게 맞추어주었던 것은 그보다 한참 전인 고무신 시절 잠깐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인간의 몰골에 가깝기는 하지만 스스로 썩 자랑스럽다 말하기 곤란한 나날들이 있다. 그런 곤란한 날들에는 두 시간이 멀다 하고 그에게 전화를 건다.

뭐 해, 바빠?

그러면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나 휴게실로 이동하며 자뭇 진지하게 잠시만, 이라 나지막이 말한다. 그리고는,

안뇽~ 무슨 일이야?

복도에 접어들면 명랑해지는 그 미성이 좋다. 그러면 나는 정말이지 너무나 사사로운 아무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 우리는 정말로 사랑하고 있구나. 한참 부족한 나를 견디어주는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잘하자는 것이 오늘의 결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서울에서 홍콩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