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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수 Nov 08. 2021

어느새 너무 멀리 와버렸다 해도

영화 <클래식>을 다시 보고


  주변 성화에 못 이겨 영화 <클래식>을 처음 봤던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그놈의 클래식. 아무리 2000년대 영화를 좋아하는 나라지만 제목과 걸맞게 포스터에서부터 풍겨오는 그야말로 클래식한 느낌에 보기를 두고두고 미루던 게 <클래식>이었는데, 하도 감동적이라느니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은 명작이라느니 하는 소리에 결국 보고야 만 것이다. 상영은 진즉 끝났기에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대여를 했다. 고작 천오백 원 결제하는 것조차 조금은 망설이면서.      


  예상과는 다르게 포스터에서보다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손예진의 등장으로 시작된 영화는 러닝타임이 장장 두시간이나 됐다. 어? 조인성이 나오는구나… 손예진이 1인 2역이였군… 음… 황순원 소나기네 이거…. 조인성의 앳된 모습과 연기력이 흥미로운 것도 잠시뿐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시큰둥한 표정으로 영화를 보던 나는 생각했다. ‘대체 이게 왜 명작이야?’     


  <클래식>은 그런 영화였다. 그래, 내가 그럴 줄 알았지, 하는 영화. <약속>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거룩하신 사랑이 허락한 이 두 사람,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죽어서도 갈라놓을 수 없는 둘의 가슴 저린 운명을 보여드릴게요. 사랑이 뭔지 아세요? 이런 게 사랑입니다.’라고 외쳐대는 영화랄까.     


  처음 본 <클래식>은 사랑이 대놓고 눈에 보이는 순간을 그린 장면들의 연속이었고, 다들 이 영화에 왜 감동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랑을 굳이 왜 영화화하는가. 그걸 또 왜 아름답다 하는가. 그 질문의 바탕에는 몇 번이고 주희의 삶을 반복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순식간에 좋아하고 또 사랑하고 무아지경으로 연애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그때의 내 시선으로는 어려운 게 아니었다. 지닌 마음은 어리숙하고 그만큼 활력 넘쳤다. 목숨까지 걸 것처럼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나이였다. 한국 멜로영화의 바이블이라는 그 영화는 내게 어떠한 충격도 주지 못했다. 단순한 사랑 영화일 뿐. 여전히 클래식하면 떠오르는 건 그저 베토벤과 모차르트 같은 천재들이 만들어낸 감미로운 선율이었다.     


  그렇게 두 번은 없을 것 같던 <클래식>을,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아무튼 글은 써내야 하니 그냥 유튜브에서 누가 잘 간추려놓은 영상이나 휙 볼까, 고민하다 오롯한 내 시선으로 감상해야 할 것 같아 영화를 다시 봤다. 처음 봤을 때처럼 역시나 미루고 미루다가. 어떤 문장을 쥐어 짜내야 할까 걱정이 가득했던 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생각했다. ‘아니 이 영화… 왜 이렇게 아름답지?’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클래식>은 거의 처음 보는 영화처럼 느껴졌다. 내내 시큰둥하게 봤던 과거완 달리 기차를 타고 멀어지는 준하에게 주희가 다급하게 목걸이를 건네는 장면이나 주희가 앞이 보이지 않는 준하를 알아채는 장면에서는 눈물까지 나왔다. 저런 농도의 마음이었구나. 아차 싶었다. 당연하게 여겼던 과거완 달리 지금의 나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농도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러 감정이 교차됐다. 여전히, 단순하게 사랑을 표현한 영화였다. 그러나 몇 계절 떠나 보내니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렇게 단순하게 사랑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숱한 장애물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마음을 끝까지 지켜낸 게 언제였더라. 예외 없이 거칠고 혹독한 현실, 이제는 사랑을 판단하고 허락하는 현실을 살고 있는 내게 사랑이 허락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분명 감동적일 만했다. 


  우리는 <클래식>이라는 영화를 통해 바래진 기억 속에서 준하이고 주희였던 자신을 추억함과 동시에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게 이 영화를 명작으로 만든다. “어우 촌스러. 좋아,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뭐.” 편지를 읽던 지혜의 대사. 유치하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은 우리가 그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음을 뜻한다. 세련되어버린 마음으로 그때처럼 클래식한 사랑을 해볼 수 있을까.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출 때,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 있을 때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을까. 나는 부디 그러길 포기하지 말자고, 편지처럼 이 글을 쓴다. 


  클래식이라는 단어에 베토벤과 모차르트보다 조승우와 손예진이 먼저 떠오르게 되었을 때. 그 두 사람이 연기한 맹목적이고 순수한 이야기가 떠오를 때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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