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순간은 그 세계를 경험하는 순간이며 자신의 인식체계를 구축해가는 중요한 기제가 된다. 영화관람 편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한국의 청춘들은, 영화로부터 이러한 영향을 더욱 많이 받기 마련이다. 영화 텍스트 자체로부터 무엇인가를 느끼고 인식하기도 하지만, 그 영화에 관한 감상평이나 느낌 등을 다른 청춘들과의 구술화과정을 통해 상호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구술화의 과정을 통해 느낀바로는, 청춘들은 생각보다 '진지한'영화와 '오락영화'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분별하게 오락영화만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획된 상품으로의 영화'인지 '예술영화'인지를 구분하고, 균형있는 소비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청춘들이 진지한 '예술영화'보다 '마블'로 대표되는 상업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정말 걱정할 만한 현상인가? 청춘들에게 '상업영화'는 겨우 오락거리에 불과한 것인가?*
마블영화를 예로 들자면, 그것은 이미 사회적인 현상으로 자리매김 했으며 의미있는 사회적 상상력을 구축해왔다. 먼저 영화의 텍스트 내에서 권선징악의 프레임이 주는 안정감과 통쾌함은 불안정한 현실로부터의 도피 혹은 정서적 피신이 된다. 이는 이윽고 정당한 폭력으로의 욕망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주인공들이 갖는 자아에 대한 고민**은, 수많은 페르소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청춘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콤플렉스를 안은 영웅이라는 이중성은 청춘들이 저마다 가지는 콤플렉스에 대한 공감인 동시에, 영웅들 마저도 콤플렉스를 안고 있다는 일종의 안도감을 부여한다. 이제 히어로영화에 대한 사유는, (라캉의 지적처럼) 상상계에만 머물러있는 허구의 상상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 두 발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된다.
텍스트 바깥에서는 팬덤으로 형성된 커뮤니티를 통해 다양한 공간에서의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되었다.이는 사람과 사람이 매개되는 사회적 접착제가 되었다. 더 나아가 영화에 관련한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활동을 통해 개인은 경제적 소비의 주체가 되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소비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는 자신의 취향을 소비에 직결시키는 사회적 소비구조를 형성하는데 일조하였다.
*모든 영화는 존중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영화에 담긴 시선을 존중한다는 얘기이며 험난한 제작 과정을 이겨내고 영화를 완성해낸 육체적 노고를 존중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문화예술계에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도 만연한 여러 종류의 폭력을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창작의 현장에 신성하게 깃들어야 할 열정과 연대와 같은 가치들이 무너지는 순간이며, 영화안에 담긴 시선 모두를 부정하게끔 만들고야 말았다. 영화 뿐만 아니라 연극, 드라마, 뮤지컬 등과 같은 모든 종류의 문화예술에서 성추행, 폭력, 착취의 문제가 공론화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예술로부터 배신당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악습. 관행이라고 불리는 폭력. 그리고 그것을 답습하고 있는 젊은세대. 그들이 만든 예술로부터 느낀 일종의 배신감은 그동안 받아드린 모든 시선을 스스로 부정해야만한다는 그 허탈함에 기인한다. 결국 청춘들은 삶의 이정표를 하나 둘 잃어가고 있다.
영화가 가지는 힘은, 영화를 통해 현실의 세계를 점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그러나 지금의 영화계는, 텍스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영화를 둘러싼 텍스트 바깥의 현실을 통해 그 자체가 폭력이었음을 자명하고 있다. 이는 예술이 가지는 변화의 가능성을 폭력의 가능성으로 전복시키는 일이다.
**아이언맨 수트를 벗은 토니 스타크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자신의 내면에 '헐크'라는 괴물을 가진 배너의 삶은 불안정할수 밖에 없으며, 과거의 기억을 도난당한 버키는 스스로 운명을 찾아야하는 존재다. 이러한 설정은 다소 과장된 것 처럼 보이지만, 청춘들이 안고 있는 정체성에 관한 물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 대한 고민들이 가시화 되었다는 점에서,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 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