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이 있어, 값어치가 더 올라가는 것이 있다

내가 우리 남편과 결혼한 이유

by Project Keepgoing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조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만 스물여덟 살이었어요. 당시에도 결혼이 꼭 급한 나이는 아니었고, 오히려 제 주변만 봐도 천천히 결혼하는 쪽이 더 많던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비교적 빠른 선택을 한 편에 속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그렇습니다. 남편을 만나고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1년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요. 나이가 급해서도 아니었고, 상황에 떠밀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결국 하나의 이유로 돌아옵니다.


‘아, 이 사람이다’라는 저만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확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남편은 유난히 조심스럽고, 무겁고, 신중한 태도로 제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쉽게 꺼내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유년 시절과 청년기를 지나오며 겪었던 일들, 남들이 보기엔 잘 자란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 있었던 개인적인 아픔과 흔들림에 대해서요. 변명처럼도, 동정받기 위한 이야기처럼도 들리지 않게 아주 차분하게, 마치 고백하듯 말해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던 중, 남편은 한 편의 수필을 함께 얘기해 주었습니다. 김소운 님의 「특급품」이라는 글이었어요. 아마 수능 특강에 실려 있어서 기억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바둑판을 만들 때는 보통 좋은 나무를 골라 정성껏 손질해 바둑판을 만든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A급 재료로 만든 바둑판은 흔히 ‘좋은 바둑판’으로 불리죠. 그런데 그 바둑판들 중에서도, 단 하나의 조건을 만족한 것만이 ‘특 A급’, 즉 특급품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그 조건이 무엇인지 아세요?


일본에서 특히 선호하는 바둑판은 비자나무로 만들어진 바둑판이라고 합니다. 비자나무는 특유의 유연함과 복원성을 지닌 나무라고 합니다. 습기를 머금거나 외부 충격이 가해져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힘이 강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최고급 비자나무 중에서도 더 특별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천둥번개를 맞아 나무에 금이 가거나 균열이 생긴 경우입니다. 일반적인 나무라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을 상황이지만, 비자나무는 다릅니다. 워낙 복원력과 회복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외부의 공격과 위험을 겪은 뒤에도 스스로 그 상처를 아물게 하며 오히려 더 단단하고 견고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둥번개를 맞아 갈라졌던 흔적을 품은 채 스스로 회복한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A급 중에서도 특 A급, 즉 ‘특급품’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흠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값어치가 높아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남편은 이 글을 자신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 고등학생 시절 수능 공부를 하며 처음 접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이 수필을 통해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있었던 고단함과 애환이 단지 불행한 시간이 아니라, 결국 더 크게 성장하고 더 단단해지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제게 이렇게 이어갔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고. 분명히 힘든 일도 있고, 서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한 순간들도 찾아올 거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그 무엇보다도, 이 비자나무처럼 스스로를 특급품이라고 믿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복원력과 회복력이 뛰어난 사람이며,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다시 중심을 잡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래서 만약 저와 함께 결혼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면, 우리는 그 시간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고, 천둥번개를 맞고도 더 단단해진 바둑판처럼 훨씬 더 견고하고 값어치 있는 인생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여기까지 들으시면 아시겠죠? ㅎㅎ

제가 왜 이 남자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왜 그리 결혼을 서두를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우리나라 전 국민이 사랑하는 배구 선수인 김연경 선수 일화도 유명하죠. 사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조건이 완벽했던 선수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배구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공격수로 뛰기에는 키가 충분히 크지 않아, 주 포지션보다는 수비수 쪽에 더 많이 배치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쌓아온 수비 기량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 키가 자라고 자신의 강점을 분명히 찾았을 때 공격수로 전향하면서도 공수 양면을 모두 커버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뛰어난 기량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약점처럼 보였던 시간이 오히려 가장 큰 무기가 된 셈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결핍과 고난, 역경의 시간들이 있어야만 우리가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런 흠 없이 매끈하게만 살아온 삶보다, 버티고 견뎌내며 스스로를 회복해 온 시간이 결국 사람을 깊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겁니다.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짐이 될까 봐 자신의 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며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여러 번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계신 분들 말입니다.


저는 그런 시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저 그런 흔하디 흔한 바둑판이 아니라, A급 중에서도 특 A급인 ‘특급품’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흠이 있었기에 더 단단해지고, 상처가 있었기에 더 깊어질 수 있었던 삶 말입니다.


올 한 해도 우리 스스로를 차근차근 다져나가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무너지면 다시 복원하고, 흔들리면 다시 중심을 잡으며, 조금씩이라도 더 견고한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길 응원합니다.



PROJECT KEEPGOING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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