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예능은 트로트의 해다. MBC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의 등장이 트로트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전국민에게 친근한 존재인 유재석이 성공적으로 ‘유산슬’로 변신하여 트로트라는 다소 생소한 영역을 거부감없이 시청자들에게 전한 덕분이다. 그 이후에 TV조선의 ‘내일은 미스트롯’,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기점으로 전국에 트로트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상파 3사가 야심차게 준비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선보일 예정이라, ‘트로트 광풍’이 정점에 달할 전망이다. MBC ‘트로트의 민족’은 물론, KBS2 ‘트롯전국체전’, SBS ‘트롯신이 떴다’ 등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TV조선도 올해말 ‘미스트롯’ 시즌2를 준비 중이다. 수많은 트로트 예능들이 쓰나미처럼 쏟아지고 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제작자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대책없이 쏟아지는 트로트 예능들에 시청자들이 심리적 반발심과 피로감을 가지는 요즘, ‘트로트 민족’만의 무기는 무엇일까.
‘트로트의 민족’은 ‘신개념 지역유랑 서바이벌’이라는 차별화된 포맷을 내세웠다. MBC의 지역 방송 네트워크를 활용해, 각 지역을 대표하는 트로트 스타를 발굴한다는 계획 하에 각 지역별 대항전을 펼치는 콘셉트다. 특히 지역 출신 트로트 가수와 심사위원들이 ‘찾아가는 오디션’을 만들어, 직접 원석을 발굴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발굴한 인재는 해외 이북까지 포함하여 총 8개 지역의 팀으로 나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팀 당 무려 10팀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쟁쟁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참가자들이 이렇게나 많이 출연한 덕분에 시청자들의 볼거리는 훨씬 늘어났다. 게다가 역대급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트로트의 민족으 자랑 중 하나이다. 이들은 심사위원계의 어벤저스에 가깝다. 자타공인 천재 프로듀서 ‘김현철’, 위대한 멘토 ‘이은미’, 트로트 대부 ‘진성’, 뮤지컬 감독 ‘박칼린’, 요즘 핫한 작곡가인 ‘알고보니 혼수상태’ 등등 트로트와 무관한 분야의 전문가도 함께하면서 심사평의 깊이와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졌다. 그들의 심사평은 시청자들에게 더욱 전문적이고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많은 참가자들 중에는 기존 트로트의 통념을 완전히 박살낸 참가자들도 대거 등장했다. 타 경연 프로그램은 보통 솔로 참가자들 중심으로 방송이 진행되는데, 트로트의 민족에서는 듀엣, 보컬 그룹, 트로트 밴드까지 등장해서 트로트를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했다. ‘제3한강교’를 펑키비트가 가미된 방식으로 풀어낸 그룹 ‘경로이탈’은 곡 중간 판소리와 태평소 솔로 연주를 가미하는 독특한 편곡으로 경기도팀과의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또한 유산슬 원곡의 ‘합정역5번출구’를 성악 버전으로 재해석한 박홍주는 원작자 박현우, 정경천 등으로부터 극찬을 받는다. 전국 8도 출신의 가수들이 색다른 장르로 트로트를 해석하여 다양한 무대롤 선보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눈과 귀가 즐겁다. 최근 트로트의 인기는 2030세대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중장년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트로트 장르가 젊은 층에게도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트로트의 민족’에서 새로운 장르와 결합된 트로트는 10대부터 노년층까지 전 연령대에 어필하는 폭발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에 MBC만의 특별한 무기는 바로 팀 대항전과 오디션의 콜라보레이션이다. 우선 단체 노래 대결 방식은 이미 성공의 선례가 있다. 바로 TV 조선 ‘사랑의 콜센타’이다. 단체 노래 대결 방식은 다양하고 많은 출연자들의 무대를 마치 콘서트처럼 물 흐르듯이 볼 수 있어서 어르신들의 취향에 정확히 부합한다. 단체 노래 대결 방식을 통해 승리한 참가자가 가장 많은 지역팀은 탈락자 1명을 구제할 수 있는 골든티켓 1장을 부여받게 된다. 덕분에 단체전이라고 해도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특히 트로트의 민족 첫 회부터 바로 1대1 데스매치 방식을 도입하면서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렸다. 물론 떨어지는 탈락자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선의의 경쟁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전히 방송사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의 지표 중 하나인 1020 세대들을 사로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이 1020을 포함한 전연령대를 사로잡은 것은 단지 트로트란 장르의 등장에 대한 신선함 덕분인지, 연출과 기획의 힘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확실히 타 프로그램 오디션 예능과는 다르게 경연 밖 세계의 모습과 경쟁 과정 속의 스토리텔링을 긴장감 있게 담지 않은 점은 1020세대들에게는 크게 매력이 없는 연출인 것 같다. 반대로 참가자들의 대결과 무대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트로트를 좋아하는 어른들의 입맛은 사로잡았다. 또한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며 아직까지 ‘피디 픽’, ‘투표 조작’, ‘악마의 편집’ 등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은 아주 칭찬할만한 점이다.
전국 팔도 트로트 고수들이 한 자리에 예로부터 흥이 많았던 선조들의 가무 DNA를 부활시킬 신개념 k-트로트 지역 대항전 ‘트로트의 민족’이 성공적으로 상승기류에 올라탔다.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제작된 트로트의 민족을 보면,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참가자들의 꿈과 제작진들의 땀이 녹아들어 있을지 상상이 간다. 현장 무대 장치나 음향 등도 아주 훌륭했고, 참가자들의 속 이야기는 최소화하면서 그만큼 참가자들의 대결과 무대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트로트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던 점도 아주 좋았다. 비록 1020 세대들의 관심을 끌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상파 채널 특유의 노련함과 MBC만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눈에 돋보인다. 새롭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트로트란 지독한 레드오션에서 끝까지 ‘트로트의 민족’이 살아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