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여행기 - 1
수능을 끝낸 한국 고등학생들처럼 미국 고3들도 대학 진학이 결정되고 나면 슬슬 엉덩이가 들썩인다.
‘Senioritis‘라고 불리는 이 전염병은 고3들이 학교에서 졸업만 기다리며 겪는 지루함과 무력함 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약 십몇 년 전, 대학을 합격하자마자 senioritis가 노크를 했다. 하지만 차 없이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오클라호마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호스트 가족 마당에 있는 아주 작은 수영장에서 어푸어푸 개헤엄을 치거나 하루종일 컴퓨터로 기사를 읽는 일이었다.
해가 너무 세서 차 가죽에 피부가 닿으면 따가울 정도다. 너무 드라이하기도 하다.
미국 정부도 일찍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
1830-1850년 사이에 미국 정부는 미국 원주민 (Native Americans) 육만 명 정도를 강제로 오클라호마로 이주시켰다. “The Trail of Tears (눈물의 길)“로 불리는 이 긴 여정동안 수많은 원주민들이 죽었고 목적지인 오클라호마 도착 후 척박한 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다.
오클라호마에 여름은 일찍 찾아온다.
졸업을 앞둔 오월, 이미 잔디는 햇빛을 잔뜩 받아 매끈하고 비료 없이도 푸르름 했으며, 선글라스 없이는 밖을 나가기 어려웠다.
챗 지피티 ChatGPT 시절 한참 전이니, 위키피디아와 UN 공식 웹사이트를 보며 백몇개 나라의 연평균 온도를 확인했다.
첫 번째는 세인트 피에르 어쩌고 섬인데 (Saint Pierre and Miquelon), 평생 갈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그렇게 핀란드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었다.
올해 여름은 태음인인 내게 유난히 고통스러웠다.
맛이 간 에어컨 덕분에 선풍기를 머리맡에 두고 젖은 빨래처럼 침대에 축 쳐져있던 어느 여름밤, 연평균 21도의 나라인 핀란드가 갑자기 생각났다.
핀란드는 오랫동안 내게 미지의 세계였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궁금해할 만한 복지국가이고 산타의 고향이다. 몇 년 전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북유럽 이민 열풍도 호기심을 지폈다.
그날 밤, 통장 잔고를 박박 긁어모아 헬싱키 티켓을 샀다.
이틀 뒤, 핀란드행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