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첫 면접
나는 홍콩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작년 10월, 즉 2달전에 짧은 일주일 간의 가을방학 동안 한국에 들어왔다. 미국과 홍콩에서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보냈기 때문에 한국에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심심한 대학교 4학년은 그래서 취업 공고만 열심히 클릭했다.
작년 가을은 얼마 전 구글 인턴을 끝내고 기자란 목표에 대해서 회의가 한참 들었을 때였다.
하지만 막상 언론사 말고 다른 곳을 지원하자니 딱히 자신 있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언론과 제일 비슷한 업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난 분야가 Public Relations (PR), 홍보회사이다. 미디아 전략도 짜 주고 회사 제품도 홍보하고 소셜 미디아 마케팅도 하고 등등 (예로 들면 한비야가 일했었던 Burson-Marsteller, 업계에서 유명한 회사이다)
열심히 검색을 한 결과, 강남에 있는 한 외국계 PR업체에서 경력직 직원을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취준생의 다급한 마음에 얼른 이메일부터 썼다.
"경력직을 뽑으시지만 혹시 나중에 신입사원을 뽑으신다면 저를 고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놀랍게도 하루 만에 답장이 왔다. 인터뷰 스케줄과 함께.
별 생각 없이 지원한 회사이지만 막상 인터뷰가 잡히니 너무 감사했다. 성심성의껏 하고 싶었다.
나는 회사와 인터뷰가 잡히면 일단 위키피디아를 들어가서 그 회사의 역사를 쭉 읽어본다. 어떻게 시작됐는지, 회사의 이념이나 목표, 크고 작은 변화나 문제점들 등등. 그리고 Glassdoor에 들어가서 회사의 문화나 분위기를 파악한다. 가끔씩은 현재 CEO 들의 이력이나 했던 인터뷰까지 읽어본다.
그 회사에서 실행할 업무도 물론 공부하지만 나는 인터뷰 때도 그 회사의 문화, 즉 work culture을 파악하려고 한다. 구글에서 인턴 하면서 느낀 점인데 회사의 culture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구글에서 인턴 했을 때 리키라는 친구가 있었다. 90인가 91년생이었는데 벌써 구글에 들어오기 전에 케세이 퍼시픽 항공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팬트리에서 우연히 대화를 했는데 소재가 고갈되고 있던 차에 생각 없이 물었다.
"넌 케세이가 좋아 구글이 좋아?"
"음.... 어려운 질문이야. 근데 나는 정말 구글의 culture가 좋아."
"왜?"
"그냥 서로 주고받는 이메일부터 서로의 대화에서까지 회사의 문화가 보이는 거 같아.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워... 근데 모두들 입사 때부터 다 "Googley"하진 않더라도 나중에는 다 이 문화에 맞춰나가고 발전하는 것 같아."
문화의 중요성을 아는 나로서 최대한 수평적 조직문화가 존재하는 외국계 회사를 지원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인터뷰 요청이 온 PR회사도 미국에서 설립된 회사였다.
방학 기간 동안 약속도 취소하고 인터뷰 준비에 매진했다.
설립자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니 그는 "커뮤니케이션은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말을 남겼고 필리핀 아키노 대통령과 만델라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회사는 매 년 Corporate Citizenship Report를 발행하면서 회사의 다섯 개 이념, 도덕성 (integrity), 협력 (Collaboration), 배움 (Learning), 혁신 (innovation), 그리고 품질 (Quality)를 강조한다.
기업들에게 사회 공헌 (corporate responsibility) 이 갈수록 요구되고 부각되는 요즘 시대, 웹사이트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회사는 합격이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설레는 마음을 달랬다.
원피스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는 회사 팬트리 같은 곳에 20분가량 앉아있었다. 약속된 10시가 훌쩍 넘었지만 나를 인터뷰하기로 하셨던 부장님 (아니면 과장님? 기억이 잘 안 난다)은 아직 출근을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천장에 닿는 책장을 둘러보니 잡지가 빼곡했다. 2011년 10월 호.. 2012년 8월 호... 2014년 1월 호....
몇분 후, 나를 인터뷰할 대리 3명과 한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실을 가면서 옆을 살짝 보니 회색 책상들이 줄을 맞춰 빼곡히 나열돼있는데 공장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무실 가지고 판단하지 말자..." 속으로 되새겼다.
질문이 시작되었다.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 같으세요?" "맡으실 업무에 대해서 설명해주세요" "영어 할 줄 아세요? 영어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방금 업무에 대해서 말하셨는데 다른 업무는 생각나시는 것 있나요?" "레쥬매를 보니 기자 인턴쉽을 많이 하셨는데 기자는 안 하실 건가요?" "포토샵 할 줄 아세요?"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해본 적 있으세요?" 등 등
철저히 업무와 연관된 질문들만 받아서 조금 당황했다. 인턴쉽을 했던 전 회사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업무 : 인생에 대한 질문의 비율이 한 2:8 정도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인턴쉽과 정직원 면접에 대한 차이일수도...)
질문이 끝나고 남자 대리가 내 레쥬매를 찬찬히 훑어보더니 난색을 표했다.
나: "네? 무슨 뜻이시죠?"
나: "..."
대리: "아니, 여기 보니까... 뭐 세월호랑... 이것저것"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광화문에서 행진을 해본 적도, 물대포의 물살을 피해본 적도 없다. 다만 잘못이 있다면 외신에서 세 번 인턴을 하면서 다양한 사건 사고 (세월호, 세월호 1주년, 리퍼트 미 대사 공격 사건, 대한항공 마카다미아 등등)를 접한 죄, 그리고 그에 관한 리서치를 하고 선배들의 지도하에 기사를 쓴 죄, 그리고 내가 언론사에서 한 일을 자세히 레쥬매에 적은 죄밖에 없다.
인터뷰는 계속 진행이 되었다.
나: "저는 이 회사의 설립 이념이 제 레쥬매랑 맞다고 생각해서 지원했습니다!"
대리 (셋 다): "우리 회사 이념? 그게 뭐지? 나도 모르는데? 어, 나도. "
나: "이 회사의 모토는 XXXXXX입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여기 회장님께서 개발도상국의 민주주의 설립에 큰 공헌을 하신 분이라 저의 가치관과 잘 맞다고 생각합니다."
대리 (셋 다): (침묵)
그 질문을 끝으로 세 명 다 분주히 서류를 챙기면서 나갈 채비를 했다.
"마지막 질문 있으세요?"
보통 외국회사들은 지원자들이 "마지막 질문"을 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회사에 대한 관심 표현이라고 할까.
"하나만 여쭤볼게요! 혹시 만약에 제가 안 뽑힐 이유가 있다면 알 수 있을까요? 부족한 점을 채워서 조금 더 발전하고 싶습니다"
"아... xx 씨는 외국에서 학교를 다녀서 한국 회사에 적응하기 힘드실 것 같아요. 조직문화도 있고 그래서요."
"아까 회사 문화 수평적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아..... 그건... 뭐...."
"제가 유학은 갔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꽤 살았습니다. 상계동 토박이예요!"
"아... 네...."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다. 떨어졌으면 말이라도 좀 해주시지ㅠ
아무튼 첫 번째 면접치고는 쇼킹했다. 아무리 압박면접이었다 해도 모순된 그들의 말과 편견에 너무 실망을 했다. 그리고 이 '억울함'을 목청을 높여 학교 선배에게 하소연했다.
선배: "네가 잘못했네."
나: "아, 왜요?"
선배: "네가 이겼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나: "당연하죠. 말이 안 되잖아요. 질문도 포토샵 할 줄 아냐 그런 것만 물어보고. 직원 교육이나 미래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나 봐요. 어떻게 사회성이 짙다고 말하죠? 뭐 제가 레쥬매를 빨간색으로 프린트해간 것도 아니고."
선배: "여기는 PR회사야. 아마 그들은 네가 고객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했을 수도 있잖아. 고객을 이기려고 들면 안 되지."
나: "(침묵)"
나는 "말랑말랑"한 회사들과는 안 맞는 것 같다.
"일자리를 고를 때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자신이 맡을 역할과 책임에 관심을 갖는다. 또 회사의 실적과 기업 이미지, 보수를 따진다. [...] 하지만 전문성과 창의력을 겸비한 사람이라면 문화를 가장 우위에 둔다. [...] 기업의 문화는 대게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며 따로 계획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성공의 중대한 요인을 놓치는 셈이다. [...] 탄탄하게 자리 잡은 기업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게 마련이다. [...] 누구나 발언권이 있고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문화를 존중하는 사람은 같은 생각을 가진 직원을 끌어들일 것이다. 반면에 더 독재적이고 권위적인 접근방식을 선호하는 회사라면 이런 방식에 순응하는 직원을 구하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
"그러므로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자신이 어떤 문화를 원하는가를 심사숙고해서 판단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원하는 핵심 부서를 이끄는 독창적인 인물, 창조적인 비전을 알고 자신만큼이나 그 비전을 믿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발쵀: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 (How Google Works,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