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가지의 준비물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기자의 삶을 꿈꿔왔다. 언제부터 기자란 직업을 동경했는지는 딱히 기억이 안 난다. 공중파 8시 뉴스에 나오는 멋진 기자 고모를 두어 서인지 아니면 지루한 미국 유학생활을 달래기 위해서 매일 읽던 기사들 때문인지, 아마 두개 다 일수도 있다. 글 쓰기를 워낙 좋아해서 고2 때부터 차근차근 The Korea Times, 중앙일보 등 신문과 잡지에 한/영 기사와 칼럼을 기고했고 대학 전공도 저널리즘과를 선택했다.
대학을 입학할 때 결심을 했다. 언론도 분야가 참 많은 만큼 (라디오, 티비, 신문, 통신사 등등) 졸업 전까지 최대한 두루두루 경험해보고 4학년이 되면 제일 나와 잘 맞는 분야에 매진하기로. 해외에서 살고 싶은 열망이 매우 커서 내신보다는 외신에 도전장을 내밀기로 했다. 그리고 운이 (매우) 좋게도 외신에서, 그것도 다른 분야에서, 총 3번 인턴 할 기회를 얻었다.
내 첫 번째 인턴은 AP통신 (Associated Press) 홍콩지부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인턴은 싱가포르 채널 뉴스 아시아 (Channel News Asia)에서 다큐멘터리 인턴을 했고 세 번째 인턴은 블룸버그 (Bloomberg) 한국지부에서 뉴스 인턴을 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저널리즘과 역사는 10년을 갓 넘겼고 윗 학번 선배님들도 언론에 종사하는 분이 극히 드물어서 인턴과 심지어 간단한 정보를 찾는데도 항상 애를 먹었다. 앞이 안 보이는 동굴을 파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후배들로부터, 그리고 이메일과 링크드인을 통해 가끔씩 모르는 분들한테도 "외신 인턴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라는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나도 학교 그리고 언론에 계신 선배님들과 안면이 없는 분들께도 많은 도움을 받아서 부족하지만 몇 자를 남기려고 한다. 물론 현직에 계신 분들이 보면 많이 미흡하겠지만 그래도 대학 생활 동안 내 심장을 뛰게 한 경험들을 졸업 전 이 곳에 녹여보려고 한다.
일단 내가 외신에서 인턴 하게 된 과정이나 계기는 후속 편에서 다뤄보려고 한다.
이번 글은 외신에서 인턴 하려면 필요한 준비물을 써보려고 한다.
글에 앞서서 '외신'은 해당 국가에 상주하는 다른 나라의 언론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내의 언론 중에서 다른 나라에 소속된 언론은 모두 외신이다.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언론이 해외에 있으면 이 역시 외신이 된다. 밑에 사진은 한국에 상주하고 있는 외신들의 일부이다. 전체 목록은 여기 클릭.
외신에서는 외국인들이 독자인 만큼 뛰어난 (네이티브 수준의) 언어능력이 필요하다.
Bloomberg에서 인턴 하면서 가장 좌절했던 (ㅠㅠ) 부분인데 어느 정도 괜찮다(?) 소리를 들었던 내 영어실력은 잔뼈 굵은 외신기자님들 앞에서는 형편없는 일기장 수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예를 들자면
The company 1) reported 2) said 3) stated
위에 세 단어를 다 사용해도 무방할 것 같지만 실제 사용은 문맥과 언론사의 스타일에 따라서 좌지우지된다. 예를 들자면 블룸버그에서는 다른 언론이 쓴 기사를 인용할 때 "reported"라고 쓰지 않는다고 배웠다. 약간 "우리 기사만 진짜 기사다!" 이런 마인드 때문이라고 한다 (선배 기자님 왈).
간단한 예지만 이렇게 영어에서 미세한 단어의 차이점을 잡아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영어가 요구된다.
블룸버그에서 인턴 할 때 가장 심장이 오그라드는 시간이 있었다. 매일 아침 8:30-10시 사이였는데 KOSPI/ MSCI INDEX를 다루던 나는 장 열리는 시간에 맞춰서 급등/급락하는 주식들에 대해서 실시간으로 짧은 기사들을 써야 했다. 세계 금융인들이 블룸버그의 주요 고객이고 블룸버그 기사에 따라서 많은 거래와 돈이 움직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그리고 매우 정확히) 글을 써내야 하는 부담감은 엄청났다.
걔다가 숫자와 거리가 먼 정치학도에게 기업공시를 읽어내려 가고 매일 애널리스트들과의 하는 전화 인터뷰는 참 살 떨리는 일이었다. 애널리스트들 특성상 말을 참 어렵게 (ㅎㅎ) 하셔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녹음까지 했다. 엄청 똑똑해서 말을 어렵게 하시는지, 아니면 숫자와 너무 친하셔서 말을 잘 못하시는 건지, 이 부분은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아무튼 현직 기자님들은 하루에도 저런 기사를 몇 개씩 쓰신다. 저 기사를 쓰는데 필요한 1) 정보 얻기, 2) 정보 확인, 3) 관련자 인터뷰, 그리고 4) 확인 또 확인, 이 프로세스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순발력은 필수이다.
꼼꼼함을 요구하는 외신 덕분에 내 덜렁거리는 습관과 성격을 고치는데 꽤 많은 덕을 봤다.
조금만 실수가 있어도 정정보도를 하는 외신 특성 상, 그리고 특히 'Accuracy'를 자사 브랜드화 시킨 블룸버그 같은 곳에서 실수는 허락되지 않는다. 큰 숫자들을 실시간으로 한국어--> 영어로 번역하기란 생각보다 매우 어렵다. 꼭 블룸버그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사소한 실수에 기자들은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렇게 해야 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환경이기 때문에 미디아 종사자들은 꽤 예민하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사소한 실수지만 기자들에게는 어떤 실수도 사소하지 않다. 그래서 나도 참 많이 혼났다. 혼나는 것을 넘어선 험한 소리도 많이 들어서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꺼이꺼이 운 적도 꽤 있다. 물론 내 잘못이 9할이긴 했지만 가끔씩 내 잘못이 아니거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싫은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이건 어느 직장에서나 있는 일 아닐까... 아무튼 그래서 훈훈넘치는 구글에 적응하는데 꽤 애 먹었다..)
뉴스 인턴쉽이 끝나고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기자님과 밥을 먹었다. "요즘, 내 인턴들 다 마음에 안 들어. 내 인턴들은 한 번씩 꼭 울더라. 근데 너는 한 번도 내 앞에서 운 적이 없어."
나는 아무리 서러워도 절대 보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Rule #1: Don't cry in front of your boss
우는 순간 지는 것 같다. 울지 마요!!! 울어도 화장실 가서!!!!! 아이라이너 번진 티 내지 말고!!!
이 글이 점점 [조무래기가 쓴 기자의 덕목] 같은 글이 돼가고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최대한 짧게 쓰겠다 (재미난 에피소드는 많지만 나중에 따로 써야지~~)
나는 인턴을 하면서 새벽 5시에 퇴근을 한 적도 꽤 있었고 "뻗치기"를 하면서 유명인을 며칠 동안 스토킹 하듯이 졸졸 쫓아다닌 경험도 있었다 (경호원 아저씨들 무섭 ㅠㅠ). 나에게는 불과 며칠이었지만 현직 기자들에게는 일상이다. "기다림"과 "인내"는 필수다. 추울 때 따뜻한 곳, 그리고 더울 때 에어컨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쓰다 보니 너무 '덕목'에만 치중했다.
공채를 거치며 시험을 치고 입사하는 내신과 달리 외신은 거의 레쥬매와 포트폴리오로 당락이 지어진다.
포트폴리오란 지금까지 본인이 쓴 기사들이 담긴 온라인 웹사이트나 블로그를 말한다.
주위에서 보면 포트폴리오로 Wordpress를 많이 쓰는데 코딩과 거리가 멀고 워드프레스의 작은 폰트가 싫은 나는 그냥 매달 돈을 내고 Pressfolios를 쓴다.
기사는 언론에 실린 글일수록 좋지만 대학생 때는 언론에 기고하기가 힘드니 학교 신문에 기고한 글을 실으면 된다. 그래도 언론에 글을 싣고 싶으면 The Korea Times 나 South China Morning Post (홍콩)에 도전해보시길! 대학생 기고를 받는 영자신문들이다. 국문 기사를 기고하고 싶으면 중앙일보의 "나도 칼럼니스트"라는 페이스북을 참고하시길
AP통신에서 인턴을 할 때 나의 멘토 중 한분을 만났다. 전직 기자이셨다가 지금은 AP통신 아시아 지역 세일을 총괄하시는 분인데 어느 날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봤다. "사람을 뽑으실 때 무엇을 보세요?"
"Attitude (태도)"
그리고
"디지탈 미디아 생태계를 잘 아는 다재 다능한 사람. 요즘은 글만 쓰면 안 돼. 1인 3역을 하는 시대라서 글도 잘 쓰는 동시에 촬영, 편집 그리고 기획까지 가능한 기자가 필요해"
아직도 현직에 계신 내 교수님들만 봐도 혼자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에 촬영을 가시거나 블로그를 운영하시면서 편집된 취재물을 공유하신다. 갈수록 위축되는 미디아 시장과 소셜 미디아의 부상 덕분에 기자들은 더 바쁘다.
얼마 전에 선배가 한 유명 외신의 기자가 되셨다. 외신 취업을 위해서 선배가 항상 강조하시는 것이 있다. 바로 중국어 (아니면 제 3 외국어)
중국이 부상하고 있고 미국 밖 주요 뉴스들은 거의 중국의 차지이기 때문에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외신기자가 갈수록 필요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어/ 영어만 잘하면 한국에 있는 외신, 그 이상 취직이 힘든 것 같다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거나 영어를 엄청나게 잘 하지 않는 이상). 요즘 홍콩만 봐도 다 중국어 (만다린)가 되는 인력을 뽑기 때문에 중국어를 못하는 한국인으로서 설 자리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Expat을 위한 잡지나 신문은 중국어를 못하는 인력을 뽑기는 하지만 월급은 매우 적고 독자도 작다.
참고로 위에 말한 선배는 일본어를 잘 하신다.
만약에 내가 시간을 되돌린다면 나는 아마 저널리즘을 전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4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지만 지식 측면에서는 조금 뻔한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글 쓰는 법은 누가 가르쳐 주는 것보다 인턴 하면서 더 빨리 늘었고 '언론학'이라고 해봤자 기본개념과 소셜 미디아의 부상 등 common sense 안에서 계속 걷도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언론학은 학문이라고 할 수 없다.
언론은 전문성을 가진 기자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테크 (tech) 분야의 기자를 뽑을 때 회사는 (글의 수준이 엇비슷하다면) 당연히 엔지니어링을 전공한 사람을 우대한다. 왜냐면 테크놀로지에 관한 문과생의 지식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관한 기사는 정치학도도 좋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제학도도 유리하다.
일단 많은 외신들이 문을 닫거나 합병을 하고 있는 추세에 현재 '성장'을 하고 있는 외신은 경제뉴스를 다루는 외신, 즉 로이터나 블룸버그 등 밖에 없다 (이번에 블룸버그와 로이터가 감원을 했지만 말을 들어보니 금전적인 이유보다는 좀 더 회사를 타이트하게 운영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파이낸스 기자에 대한 수요가 아직까지는 꽤 있는 편이기 때문에 경제학을 전공이나 부전공을 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운이 필요하다.
외신은 그다지 틀에 잡힌 시스템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을 뽑을 때는 아는 사람을 뽑거나 라이벌 회사에서 이직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외신 (CNN, Bloomberg, etc)은 신참을 뽑지 않는다.
뽑자마자 기사를 쏟아낼 수 있는 경력직을 선호하기 때문에 보통 아주 작은 언론사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 외신 기자들의 루트는 보통 (아 참. 한국 외신 기자들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ㅎㅎ 유학파, 국내파 다양하다)
1) 내신 (연합뉴스 영문, 코리아 헤럴드, 코리아 타임스 등) --> 외신
2) 타 분야 (사기업, 대학원 등) --> 외신
3) 외신 인턴 --> 외신
가장 흔한 루트는 #1번이다. 내신에서 적게는 1년, 많게는 5년 이상씩 일하신 다음에 외신으로 이직하시는 분들이 많다. #2번은 흔하지도, 그렇다고 드물지도 않다. 사모펀드에서 일하시다가 기자가 되신 선배 (콜럼비아 저널리즘 대학원 졸업), 아니면 영국에서 대학원을 마치시고 우연히(?) 지원하셨다가 기자의 길로 들어오신 선배... 각양각색이다. 공통된 말씀은 "나 기자 생각해보지도 않았어~"
#3번은 가장 레어하다. 일단 인턴이 되기도 힘들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는 곳은 드물다. 왜냐면 보통 프리랜서로 돌아가는 회사가 많기 때문이다. 굳이 인턴을 돈 더 주고 정규직으로 고용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게 아닐까... ㅠㅠ
나도 물론 인턴쉽을 위해 매년 여름이 다가올 때마다 30~50개씩 지원서를 냈지만 상당한 운도 따라줬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공석+실력+인맥+운이 따라줘야 하는 상황이 많아서 꽤 막막할 수 있다. 이 점은 꼭 유념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상당히 좌절감을 느끼거나 실망할 수 있다.
다음 회에서는 인턴쉽을 구한 과정을 써보려고 한다.
Thanks for reading. Hope this helps.
p.s. 상당히 개인적인 내용입니다. 편견 없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도 제 경험에 의존해서 쓴 만큼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점 유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