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구려. 재입대를 한다거나, 1등짜리 로또를 잃어버리지도 않았는데, 여자친구에게 차였거나, 아니 여자친구는 없는데 말이 그렇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막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닌데 그냥 좀 그래. 그렇다구.
기분이 좋지 않다는 나의 상태를 인지하는 순간이 있어. 이런 순간엔 무얼 하느냐면 말야, 곧장 찬물로 샤워를 해. 그리고 옷장에 넣어둔, 맛있는 식당이나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를 갈 때나 꺼내는 옷들을 꺼내 입지. 그리고 비싼 향수를 뿌려대고 황급히 집을 나서버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고. 그렇게 꾸미고 어딜 가고 누굴 만나느냐고? 난 이상하게 이런 순간에는 친구들을 찾지 않더라고. 목적지도 딱히 없어. 매일 가는 카페를 가거나, 그냥 걷지. 원래 연락이 쌓여있는 게 싫어서 바로바로 답장하는 편인데 말야. 연락도 막 쌓아버려. 혼자 걷다가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서 앉아있으면 기분이 구렸다는 걸 잊어버려. 햇살이라도 환하게 들어오노라면 막 얼굴엔 은근한 미소도 지어진다니까. 한 시간 전 만에도 기분이 구리다고 했으면서. 또 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말야 나한테서 좋은 향기가 코로 막 들어와. 그래서 기분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