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의 어느 날. 어린 여행자가 이스탄불의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따로 마약검사를 받고 있었다. 나름 적지 않은 비행을 해 본 여행자는 이 날따라 기분이 매우 불편했다. 무심하고, 딱딱한 말투로 그에게 지시하는 요원에게 말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야? 들어올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고!”
요원은 귀찮고,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으니까 빨리 티켓이나 보여줘”
보통 여행자라면 몹시 당황스럽고, 긴장을 숨기지 못하며 순순히 지시에 따르겠지만, 어리고, 나름 많이 돌아다녔다고 자부하는 이 여행자는 따지고 있었다. 법을 어기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이미 여러 차례 마약검사를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려 5번이나.
여행에서는 모두가 안전하게 계획대로 여행을 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러나 흔히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한다. 이것이 물론 여행의 목적이자 즐거움이다. 나 역시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마주했었다. 에든버러에서는 스코틀랜드 여왕의 초대를 받아 파티에 가는 시민들을 볼 수 있었고, 우연히 베네치아의 길거리에서 열리는 결혼식, 파리 외곽에서 흑인들에게 둘러싸인 적도 있었다. 좋든 싫든 경험이자 잊지 못할 이야깃거리로 남기는 태도를 갖추려 노력하지만, 준범죄자 취급은 너무하지 않은가! 아직도 처음으로 그러한 취급을 당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처음 마약검사를 받은 곳은 몇 해 전, 체코에서이다. 시내에서 공항까지 돈을 아낄 요량으로 시내버스를 타고 갔었다. 걱정이 무색할 만큼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날씨가 좋았고, 생각보다 많은 한국인을 볼 수 있어서 기분이 들떠있었다. 탑승구에서 런던행 비행기를 구경하며 탑승을 기다리던 나에게 요원 두 명이 다가왔다. 나만 ‘콕’ 집어 설명도 없이 손을 내밀어보라 했다. 일행이 있었지만, 그들은 오직 나만을 원했다. 그는 면봉으로 나의 손 구석구석을 문질렀고, 다른 한 명은 나의 짐을 뒤져보았다. 나의 흔적을 묻힌 면봉을 혈압측정기처럼 생긴 하얀 기계에 집어넣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기계에 알아볼 수 있는 단어가 쓰여있었다. ‘Doping Tester’라는 단어가 제일 눈에 띄었다. 보통 마약검사는 연예인이나 재벌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했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유명인들의 마약검사는 모발이나 혈액을 채취하면 며칠이 지난 후 뉴스에서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즉석에서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몽글하고 떠올랐고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당연히 마약을 해본 적이 없는 나였지만 그 짧은 순간, 혹시 양성반응이 나오면 체코 감옥에 가는 것인가 한국 감옥에 가는 것인가 생각했다. 또 나의 무죄를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약을 했었나 하며 기억을 되짚어갔다. 도핑 기계는 ‘띵’하는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전자레인지만큼이나 빨리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결과는 음성이었고 나는 안도했다. 공항 요원들은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쌩하고 가버렸다. 그때만 해도 그저 색다른 경험으로 남았었다. 체코를 시작으로, 상하이에서 2번, 터키 이후에 발리에서도 마약검사를 받았다. 유난히 터키에서는 기분이 불편해서 요원에게 따졌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마약에 대한 일화는 공항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들은 마약 호객만 해도 과장 조금 보태 100번 조금 안 될 것 같다. 여행자들의 성지라는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발리의 꾸따, 윤식당의 촬영지로 유명한 길리 섬, 유럽의 밤거리에서 그랬었다. 특히 발리에서는 일련의 순서가 있었지만, 나에게는 바로 마약을 팔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발리에서 한 달간 그런 호객행위를 겪고 난 후, 친구들에게 장난스레 하는 말이 있다.
“내가 약쟁이처럼 생겼나 봐.”
다행히 어린 여행자는 생각을 바꿔먹었다. 친구들에게 들려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 나쁘지만은 않다. 흔히 듣는 이야기가 아니거니와 특히 이번 여행에서 까맣게 탄 피부도 이야기의 신빙성을 보태 즐거워했다. 그래서 당신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다. 20대에 모든 대륙은 한 번씩 가보고 싶다는 목표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마약검사를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