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투 폭로와 함께 영화계에서 흔적을 감췄던 배우 ‘오달수’ 씨가 최근 독립영화로 복귀한다는 뉴스를 접하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다.
'그래, 작년 이맘 때쯤 미투(ME, TOO)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열기가 시들해지더니 요즘은 행적이 묘연해졌다.
미투운동 이후 사람들은 혹시 자신이 미투 폭로의 대상이 될까 싶어 조심하는 분위기가 자리잡아서일까? 아니면 미투를 고백해봤자, 결국 자신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 많은 미투 피해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최근 전 직장의 K 임원을 만나 대화할 일이 있었다. 회사의 H 임원이 승진을 했다는 얘길 전하곤,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H임원이 술자리에서 여직원 C와 어깨동무 한 번 했을 뿐인데, 성추행이라고 고소를 해서 그 양반이 법원을 들락날락하며 고생했잖아. 나도 그 회식 자리에 있었는데,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솔직히 이래서 여자들은 뽑으면 피곤해. 다들 C는 절대 팀장 시키면 안 된다고들 했어.”
상당히 젠틀하고 합리적인 인물로 여직원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판을 받던 K 임원의 얘기에 나는 짐짓 놀랬다. 미투를 대하는 조직의 논리가 바로 이런 거구나, 다시 깨닫게 됐다.
전에 다니던 직장은 대부분의 회사처럼 남자가 CEO와 임원진을 도맡고 있었고, 성추행이나 성폭력에 대해 항의하는 목소리가 나와도 ‘귀찮고 피곤하니 알아서 무마시키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여직원에게 고소를 당한 그 H임원은 많은 여자 직원들을 성추행해서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나에게도 수차례 집근처까지 찾아와 한밤중에 만나달라고 졸라대던 사람이었고, 나도 성추행을 당했었지만 스스로를 자책하며 그냥 넘어갔던 적도 있었다. 또 회사의 대학생 인턴 직원을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태운 후 양평의 모텔까지 끌고 갔는데, 그 인턴 직원이 울며불며 뛰쳐나왔다는 얘기도 들었다.
무엇보다 그 임원의 끈질긴 성추행으로 괴로워하던 C직원은 나의 동료였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추행을 당했는지에 대해서도 사전에 얘기를 듣고 서로 분개했던 터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변호하고 싶은 방향으로 진실을 왜곡시킨 후, C직원이 예민하고 까칠하며 과잉대응을 하는 또라이로 규정했다.
그녀는 경력이나 능력이 출중했음에도 계속 팀장을 달지 못했었는데,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러한 내부 분위기기가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성추행 사건의 특성상 증거가 불충분했고 결국 유야무야 그 사건은 마무리됐다. C는 얼마 되지 않아 해외 근무 나가는 남편을 따라 가며 회사를 그만두고 그 사건도 내 기억 속에서 빠르게 잊혀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K 임원의 얘기에 잊고 있던 그 사건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해군인 지인이 군대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얘기해줬다. 그 사건으로 성폭력 가해 군인은 합의금을 주고 자리를 보전했고, 합의금을 받은 여군은 얼마 못 가 전역을 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그 일이 있은 후 부대에서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조치를 취했는데, 그 조치라는 게 여군들을 전부 부대 밖의 숙소로 옮겼다고 했다. 여군 숙소가 부대 밖에 있으면 성폭력이 발생할 소지가 줄어든다는 논리다. 한 마디로 ‘여군’들이 원인 제공자이므로 이들을 격리시키는 방향으로 정리를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사기업이든, 군대든 의사결정권자들은 ‘남자’이기에 그들의 논리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어쩌면 조직의 논리로는 당연한 조치일 수 있다. 만약 조직의 CEO나 임원진이 모두 여성인데, 남자 직원이 여성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여성 CEO에게 제보하고 언론에 알린다고 하면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회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여성 임원에게 패널티를 가하기보다, “그까짓 거 가지고 소란이야?”라며 그 남자직원을 은근히 왕따시키거나 근무하기 힘든 분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미투’의 본질은 권력
그래서 미투운동의 본질은 남녀를 떠나 ‘권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칼자루를 쥔 사람에게 문제제기하거나, 부당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진실여부를 떠나 불편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결국 칼자루는 그들에게 휘두르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내부고발자들이 어느 회사든 힘겨운 싸움을 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한번 이슈가 되면 불같이 타오르지만, 쉽게 꺼지고 빠르게 잊힌다. 나도 마찬가지다. 미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이제는 잊혀진 이름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만약 K임원이 H임원의 승진 소식과 과거사를 꺼내지 않았다면 나도 그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물론 미투 가해자에게 평생 주홍글씨를 새기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지금 나에게도,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이로 인해 힘겨워하는 사람들도 많은 만큼미투 가해자들이 더 반성하고, 진심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그들의 죄가 천천히 잊혀질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약자의 편에 서는 일은 어쩌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외롭지 않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주고, 좀 더 오랫동안 기억해주는 일, 그러한 작고 사소한 관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