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연 Mar 22. 2019

“왜 며느리만 전화해야 되는데?”

   전화로 보는 사위노릇, 며느리노릇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결혼식이라는 큰일을 치러낸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공항으로 떠났다. 그 순간만큼 인생에서 행복으로 가득 찬 때는 거의 없을 것이다. 빡빡한 회사 생활 속에서 얻어낸 1주일의 신행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달콤한 휴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티켓팅을 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전화’였다. 

나는 신랑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최대한 공손하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아버지! 잘 다녀올게요!
 응 그래. 재미있게 놀다가 와라~


홀가분한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우리는 신혼여행지인 푸켓에 도착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즐거운 휴가를 보냈다. 결혼 전까지 워낙 회사일이 바빴었기에 일정이 빡빡하지 않고 릴렉스한 휴가를 원했고, 가끔은 너무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계획했던 신혼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착륙하기 전 공항과 그 주변 풍경이 눈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은 답답해져왔다. 늘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회사와 밀린 일들, 양가 방문과 친인척 인사, 회사에서도 인사를 다녀야 할 텐데 등 갑자기 해야 할 일 목록이 쭉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 답답해” 

“나도 그래... 밀린 일도 엄청 많고”


신혼여행이 끝나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밀린 일에 대한 압박, 신혼부부로서의 처리해야 할 일이 크게 다가옴을 느꼈다. 


우리가 우려했던 상황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공항에 도착해서 서울에 잘 도착했노라고 양가 어른들에게 전화를 할 때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 전화했을 때 부모님은 “재미있었어? 그래 집에서 보자” 라며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셨다.


“그래 잘 다녀왔니? 근데 난 무슨 일이 난줄 알았다”

“왜요?”

“응 전화도 한통 없기에…”

“신혼여행 갈 때 전화를 드렸었는데…”

“그건 가기 전이고, 거기 가서는 며칠 동안 연락이 없길래”

“아. 네 죄송해요. 깜빡했어요.”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얘는….”


시부모님은 며칠 동안 우리 전화를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며,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서운해 했다.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화는 아들이 아닌 ‘며느리’의 몫이었다. 

문제는 내가 시부모님이 기대하는 정도로 살가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특히 이유 없이 안부전화를 하는 것의 필요성을 별로 못 느끼는 ‘무심한’ 인간형이었다. 무엇보다 우리집에서는 엄마와도 그렇게 자주 전화를 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가끔 필요할 때 전화를 하는 문화였지만, 그럼에도 비교적 ‘화목한’ 가정이었다.    


사위가 된다는 것, 

며느리가 된다는 것

문제는 시부모님의 기준에선, 며느리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안부전화를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스타일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왜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수시로 안부 전화를 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었다. 정 필요하다면 아들이 자신의 부모님께 소식을 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남편은 ‘사위’라는 이유로 처가의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야 할 의무 같은 건 없었다. 만약 가끔이라도 안부전화를 하면 아주 살가운 사위로 인정받았다. 실제로 전화를 하는 모습을 거의 본적이 없고, 그에 대해 그 누구도 의무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처가에 가는 것도 바쁜 일이 있으면 아내 혼자 가면 그만이었다. 


‘사위노릇’은

세상 편했다

처가에 가서도 일하지 않고 그저 주는 밥만 맛있게 먹으면 이쁨 받는 역할이었다. 그에 반해 며느리노릇은 웬만한 여자는 해내기 힘든 의무가 가득 주어졌다. 시가에 가서도 가만히 앉아서 밥상을 받으면 안됐다. 어머님의 식사를 함께 도와서 차려야 하고, 시부모의 생일에는 생신상도 준비해야 했으며, 설거지도 당연히 며느리의 역할이었다. 그에 반해 신랑은 아들노릇도, 사위노릇도 할 게 별로 없었다. 

시부모님이 원하는 대상은 명확했다. 

‘며.느.리’ 


늘 내가 언제 전화하는지, 마지막 전화가 언제였는지 카운팅 당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시가에 언제 오는지, 마지막 방문일로부터 며칠 지났는지를 체크하셨다. 어떤 때는 “너네 안 온지 32일 지났다!”라고 하는 말씀에 가슴이 턱하고 답답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전화하는 일로 닦달하는 시부모로 보이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셨는지, 최대한 먼저 전화하는 것을 자제하고 참으시는 모습이 많았다. 하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전화가 없으면, 참고 참다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000아 어떻게 지내니? 많이 바쁘니? 전화도 통 없고…
연락 자주 못 드려서 죄송해요. 잘 지내시죠?
   

단순히 안부를 묻는 전화였고 나를 많이 나무라지도 않았지만, 이런 전화를 받으면 순간 내가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며느리는 이런 존재다 

늘 자주 찾아가지 못해서 죄송하고,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고, 용돈이 적어서 죄송하고 등등 ‘죄송’한 것 투성이였다. 마치 며느리의 길에 들어서는 것은 앞으로 ‘죄송’할 일이 많아지는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결혼하고 첫 1~2년은 이 ‘전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딱히 할 말이 없는데, 어색하게 전화를 붙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스타일을 고수했다. 알람을 맞춰놓고 전화를 드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시부모님도 서서히 ‘내 며느리는 원래 이런 애’라는 생각을 갖게 되신 듯하다. 

한마디로 반포기 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이 때부터 평화가 찾아왔다. 

절대 끝나지 않을 듯 했던 전화스트레스는 이제 떠나보낸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가끔씩만 전화를 할 뿐이다. 그것도 내가 원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