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새벽, 잠에서 깨어 보채는 아이의 상태가 평상시 같지 않다. 젖 달라고 우는 소리치고는 미묘하게 끙끙대는 소리였다. 일단은 비몽사몽 잠결에 젖을 물려 보았는데 가슴에 아기 입이 닿는 느낌이 뜨끈뜨끈하다. 이마도 몸도 뜨끈뜨끈.
새벽 6시경이었는데, 체온을 재 보니 38도가 넘었다.
아이고... 감기인가 보다.
잠귀 밝은 남편도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일어났다.
일단 예전에 사 둔 해열 패치를 붙이고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며 열을 조금 떨어뜨린 다음에 소아과 오픈 시간에 맞추어 줄을 섰다. 월요일 아침부터 병원도 북새통이었다. 요즘 수족구에 장염, 감기 할 것 없이 다 유행이라더니. 이렇게 아픈 아이들이 많다니 아이들도 부모들도 참 고생이 많다.
그나마 나는 육아휴직 중이고, 남편도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개인과외 사업자라 아침부터 함께 소아과를 찾았다만,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보호자 혼자 병원에 온 엄마나 할머니가 대부분인 것을 보며 각 가정의 사연들과 걱정거리 하나하나가 멋대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한 시간 정도 대기했다가 진료를 받았는데, 나긋나긋하신 의사 선생님이 편도염인 것 같다며 해열제와 감기약을 처방해 주셨다. 애들 감기는 설사와 구토를 동반하기도 한대서 혹시 몰라 지사제도 예비용으로 처방받았다. 9개월차 아이의 첫 감기는 부모 입장에서도 첫 경험인지라 은근히 긴장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의 친절하고 구체적인 설명에 마음이 살짝 놓였다.
열이 날 때는 꽁꽁 싸매지 말고 시원하게 해 주어야 하는 것이란다. 집으로 돌아와 기저귀만 입혀 두고 수유와 이유식 텀 사이사이에 약을 먹였는데, 처음 먹는 약이 입에 맞을 턱이 없지. 약을 게워내고 울고불고하는 바람에 낮시간 동안 진을 쏙 뺐다.
떡뻥 과자에 해열제를 찍어서 먹이니 다행히 약을 삼켰다. 이 방법은 한 번만 성공.
그날 밤엔 도무지 열이 잡히지 않아 투약이 가능한 해열제 용량을 체크해가며 남편과 함께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아이도 잠을 제대로 못 들고 계속 끙끙댔는데, 이러다 열 경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을 정도였다.
남편은 다음날 출근을 해야 했고 나도 연이틀 풀 근무에 해당하는 가사와 육아로 심신이 지쳐 있었지만,서로 교대로 잠을 잔다거나 하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둘 다 안절부절 아이 옆에 붙어 있었다.
한편으론 이것이 모성애 부성애인가 생각했다.
출산 직후나 신생아를 키우면서는 모성 신화 같은 것에 강한 부정을 표했었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하나의 인간관계일 뿐인데. 얼마나 시간을 들이고 애써서 관계를 가꾸어 나가느냐가 사랑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이지, 내 배에서 나왔다고 곧바로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내새끼가 되진 않을 터이니. 녹록지만은 않았던 육아의 시간들도 '희생과 헌신' vs. '즐거움과 행복 추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의연히 지나보낼 수 있었는데,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는 쉬이 의연해질 수가 없더라.
"차라리 내가 아프면 좋겠다"는 여느 선배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한 치의 거짓 없는 말이구나 하는 것을 절절히 느꼈다. 이렇게 '부모'에 한 걸음 더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남편 역시 이 순간을 종종 회상하곤 한다. "아프지만 말고 자라 달라"고 되뇌었던 이때의 마음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사춘기를 겪고 할 때도 잊지 않겠노라고.)
휴직 중 전업육아로 인한 스트레스를 덜고자 육아 일기도 쓰고, 집에서 혼자 꼼지락거리며 만들던 모유비누나 입욕제 제작기 등을 블로그에 종종 올리곤 했는데,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이웃 가운데 장애아이를 키우는 분이 계셨다. 눈이 참 맑고 예쁜 아이였다.아이가 입원 치료를 받는 기간이면 한동안 블로그가 잠잠했다. 그러다 한참 만에 퇴원했다는 글이 올라올 때면, 부모가 그동안 얼마나 긴 한숨과 눈물을 삼켰을지 모니터 너머로도 절절히 전해지곤 했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그저 살기 위해서 수차례 힘든 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부모들의 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아이들은, 정말이지, 아프면 안 되는 것이다.
내 아이의 사소한 감기 한 번에도 철렁 마음이 내려앉는 경험을 하며 공감과 이해의 폭이 한 평 정도는 더 넓어진 느낌이다.
타인과 불행이나 고통을 경주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고작 감기라서 천만다행이라는, 내 아이만큼은 크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어 그 마음이 혼자 또 무겁고 부끄럽다.
알량한 동정심인지 죄책감인지 분간하기 힘든 마음의 발로로 장애 아동을 위한 일회성 후원금을 결제했다.
간신히 열이 떨어져 드디어 쌔근쌔근 편안한 숨을 내쉬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자리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