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손 이모를 둔 딸내미는 참 좋겠다
7여동생은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다.
학창 시절에 두 살 터울 언니인 나를 따라 코스프레 의상을 제작했던 일이 동생의 전공 선택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동생의 성취에 대한 지분을 살짝 주장해 본다.
아직 청계천이 복개천이었을 때(어이쿠... 정말 격세지감이다. ㅎㅎ), 저렴한 천을 사기 위해 동대문 시장 곳곳을 누비고 밤늦게까지 손바느질을 함께했던 경험 때문에, 지금까지도 동생의 작업에는 늘 깊은 관심과 애정이 간다.
'안물안궁'일 수 있겠지만 동생 자랑을 조금만 해 보련다.
펑크나 고스로리 쪽의 취향도 함께 가지고 있는 동생은 서양 복식에도 재능이 있다. 대학 졸업 작품 발표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어, 캔디 포장지를 연상시켰던 핑크골드 드레스 작품이 당시 이대 학보와 각종 보도자료에 메인으로 실리기도 했다.
졸업 후에는 예술의 전당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 유명한 한복 제작자 선생님께 사사를 받았다. 열정 페이 노동에 지쳐 첫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구체관절인형 의상을 제작하는 회사에 입사하여 예쁜 인형 옷을 비롯하여 신발이나 가발도 만들었다. (구체관절인형은 사랑입니다. 우리 자매는 구체관절인형 덕후이기도 했거든요.)
이것도 벌써 꽤 오래전 일이다. 요즘 동생은 한복과 국악에 대한 관심을 계속 발전시켜 고창 농악 전수관에서 아이들에게 전통 악기를 가르치기도 하고 공연 의상으로 한복도 제작하면서 지내고 있다.
작사가 작곡가인 부모님을 둔 영향인지, 삼 남매 모두 본인 전공과 별개로 음악과 예술에 깊이 발을 담근 삶을 살아가고 있다. 참 감사하고 즐거운 삶이다.
옷을 짓는 재주가 있는 동생을 둔 덕을 가족들이 쏠쏠히 보고 있다.
기성복을 샀을 때 기장을 줄이거나, 뜯어진 솔기나 떨어진 단추를 수선하는 일은 예사이다.
내 결혼 예식 때는 2부 행사 드레스 제작을 동생이 맡아 주었다. 스케치 단계부터 직접 디자인을 논의하고 옷감을 함께 골라 완성한 미니드레스를 입고 통기타를 치면서 남편과 함께 하객들 앞에서 공연도 했다. 그때 불렀던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 가사처럼, 당시 공연은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그날 긴장한 탓에 고음에서 크게 삑사리를 낸 남편은 예식 영상을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큰 실수를 안 했다며, 혼자 참 이기적으로 아름다운 추억이라 말하고 있다.)
뭐니 뭐니 해도 금손 이모를 둔 가장 큰 덕을 보는 사람은 내 딸아이다.
백일 드레스도 이모가 만들어 주어서 약간의 소품만 더 준비하여 간편하게 집에서 기념 촬영을 했고, 이후에도 몸이 커갈 때마다 멋진 맞춤 의상을 지어 입는다.
옷감의 종류와 색상부터 작은 장식이나 리본 색깔 하나까지 직접 눈으로 보고 고르는 과정은 대단히 행복하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기성복이 아닌 맞춤옷이라니.
철없는 엄마는 딸내미가 참 부럽다.
교육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루비 페인의 저서 <계층의 불문율>에 따르면 의복에 대한 인식과 선택 기준도 계층마다 차이가 있다고 한다.
빈곤층은 본인의 개성 표현과 비용을, 중산층은 품질과 브랜드를, 부유층은 예술적 감각과 표현(=디자이너)을 중시한다고 하더라.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부모님의 가치관을 물려받은 까닭에, 주변의 시선에 민감한 십대 시절부터도 유명 브랜드에는 신경을 거의 쓰지 않고 자라왔다.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브랜드 운동화나 티셔츠를 사 달라고 조른 기억도 없다. 성인이 된 다음에야 패션 브랜드의 역사를 조금씩 알게 되며 비비안웨스트우드나 스와로브스키 등에 조금 호감이 생겼지만, 딱히 명품을 소비하는 취미는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어릴 적엔 명품에 관심이 많은 이들을 형이하학적이라거나 천박하다고 여기는 편견도 가지고 있었는데, 다행히 이러한 생각은 나이가 들며 많이 순화되었다.
"사치를 증오하는 것이 지적인 증오는 아닐 것이다. 그러한 증오 속에는 예술에 대한 증오가 들어있을 테니까."
벌써 2백여 년 전에 빅토르 위고가 통찰했던 것처럼. 명품이나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증오하는 것은 일종의 신포도 기제일 확률이 높다.
내가 명품을 소비하지 않는다고 해서 유명 브랜드에 관심이 많고 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을 비난할 필요도 없다.
비록 나는 옷을 고를 때 개성 표현과 비용을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내 맘에 쏙 드는 디자이너의 맞춤복을 입으며 예술적 표현을 즐기기도 한다. 이러한 나만의 취향에 굳이 빈곤층이나 부유층이라는 레이블링이 필요할까.
- 호연이 고운 꼬까옷 누가 지어 줬지~?
(예쁜 한복 색깔은 누가 골랐지~?
예쁜 옷 지은 값은 누가 냈지~?
마더구즈의 울새 이야기 느낌으로 리듬을 살려 질문한다.)
- 이모,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말이 트이면서부터는 사랑을 듬뿍 퍼주는 이모에 대한 애정을 딸아이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호연이에게 이모는 늘 엄마 아빠 다음으로 보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다.
2019년 여름에는 고창 농악 전수관에 1박으로 놀러 가서 이모의 공연을 구경하고, 이모가 지어준 한복을 입고서 뒷풀이 한마당에 참여하여 신나게 소고를 쳐 보기도 했다.
네 살짜리 아이가 소고를 치며 무릎을 들썩이는 모습을 공연하신 분들과 관객 분들이 참 이쁘게 바라봐 주셨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 유아복을 사 입히는 것보다 이런 경험에 기꺼이 소비를 하는 것이 '내 취향'이다. 돈 주고도 못 사는 게 경험이라 하지 않던가. 명백한 호사(豪奢)다.
아가야, 이게 다 이모 덕분이란다.
지금 입는 옷이 작아지면 이번엔 딸아이와 세트로 생활한복을 지어 입고 싶다.
조만간 아이가 스스로 옷감과 디자인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크다.
비단 옷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나만의 취향을 가지고서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길. 삶의 구석구석에서 미를 느끼며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으로 자라길.
이런 바람을 아이에게 투영하면서도, 엄마는 내심 딸내미가 부럽다.
(*2019년 8월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