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아 일기

음주(飮酒)와 가무(歌舞)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by 박경진

나는 애주가이다.

술을 잘 마시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올시다지만, 평소에 반주를 즐기 편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늘 좋은 술생각난다.

술을 즐기는 것은 대대로 이어져 온(?) 가의 전통이다. 어릴 적부터 "박 씨 집안사람은 술을 잘 마신다."는 우스갯소리를 가훈보다도 먼저 외우며 컸을 정도로 집안 어른들 모두 술을 즐기셨고, 집에는 직접 담근 막걸리나 각종 과실주가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술에 대한 애호는 남편도 마찬가지다. 요즘도 매일 글라스로 딱 한 잔씩 빨간 뚜껑 소주를 즐기시는 아버님과 술을 곁들인 수다를 대단히 애정하시는 유쾌하신 어머님 슬하에서 자 남편은 리라는 매우 훌륭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전지적 마누라 시점의 평가니다.) 각종 술과 음식의 마리아주에도 관심이 지대하다.


연애하며 취미로 조주기능사 책을 사서 함께 공부하고(실습 목적으로 만든 각종 칵테일은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하수구 대신 입 속으로 털어 넣어 정리습죠.), 가까운 공방에 인들을 이끌고 가서 맥주 제조도 해 본(상면 발효 공법의 에일 맥주를 블라블라... 술 덕후들에겐 주종 하나에 대해서도 화수분 같은 이야깃거리가 나니다.) 나와 남편 사이의 딸내미라면 말해 무엇하랴.

식사 때 제법 능숙하게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오고, 엄마 아빠 잔에다 술도 쪼르륵 따라주는 우리 아가.

인생 43개월 차입니다. (...)

손끝이 야무진 딸내미. 그리고 순범 아저씨께 하사받은 맥주 거품기.



자녀 앞에서 부러 술을 마시지 않는 부모들도 있다. 금연이나 금주는 건강한 몸을 위한 좋은 습관이기에, 아이에게 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쓰는 마음도 이해가 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의 음주(飮酒) 문화를 특별히 자랑하거나 권장할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껏 텐션을 끌어올려 글을 쓰는 동력은 모든 다양한 삶의 일면을 직시하고 그것을 긍정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평범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삶.

스스로를 먼저 긍정하고 타인에게도 기쁨과 활력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삶.

나부터 그런 삶을 살고 싶고, 누군가의 그런 삶을 열렬히 응원한다.

애초에 삶의 방식에는 우월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문화란 그저 향유하는 것일 뿐이라고 굳게 믿기에. 난 우리의 가풍을 긍정하며 때때로 그것을 즐긴다.(음주에 대한 변명도 이만하면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딸아이도 식사 때 물이나 원하는 음료를 자기 잔에 따르고서 식구들과 건배를 하는 유쾌한 문화를 향유하며 자라고 있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필름은 끊기지 않을 만큼만. 다음날 부끄러움은 남기지 않게끔. 술자리가 길어지더라도 취침은 반드시 내 집 내 잠자리에서... 이런 음주의 기본적인 규칙들이야말로 또래가 아닌 집안 어른들에게 배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술은 어른들께 배워야 한다'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지 가져와 쓰며 주장의 신뢰도를 조금 더 높여 본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에 음악이 빠질 수야 없는 법. 가끔 지인들을 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할 때면 서로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BGM을 고른다.

기본적으로 남편과 내가 공유하는 음악 취향은 80~90년대 락과 메탈이지만, 국내외 유명 싱어송라이터의 곡이나 제3세계 음악, 올드팝도 가끔 즐긴다. 최근에는 <팬텀 싱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함께 빠져서 참가자인 남성 성악가들의 노래를 열정적으로 찾아 듣다 보니, 생소했던 이태리어가 제법 친숙하게 느껴지고 있다.

딸내미도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면 적극적으로 반응한다.(아쉽게도 엄마 아빠가 최근 빠져 있는 성악곡은 썩 본인 취향이 아닌 듯...) 호연이는 제 나이에 어울리는 깜찍한 동요들도 좋아하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대표곡들이 수록된 2006년 발매 음반 2번 곡 'Ducks dance, too'를 특히 좋아한다. 그 덕분에 나와 남편도 같은 음반에 수록된 <라이온 킹>의 'They live in you'에 새삼 빠져 있다.

마샬 엠프 모양의 이것은 저의 소중한 술냉장고입니다.

어느샌가 오픈형 씨디 플레이어에 원하는 음반을 넣고 플레이하는 법을 익힌 '디제이 (딸아이의 태명)'의 최근 주 레퍼토리는 체리필터 1집이다. 아무래도 핑크빛이 도는 앨범 색상이 마음에 든 것이 아니었을까 다만, 체리필터 앨범을 틀면 어른들이 꺄르륵 웃으며 통해서 그런지 행동 강화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손님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추천받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음악적 취향에는 그 사람의 인생사가 담겨 있기 마련이라, 노래와 함께 귀한 삶의 이야기를 한 편 소개 받는 느낌이 든다. 곡의 가사와 멜로디, 리듬을 온 몸의 감각을 동원해 느끼며 눈 앞의 소중한 이들과 소통한다.(혹은 소통이 이뤄진 듯한 착각에 빠진다. 술은 언제나 이러한 착각을 도와주는 훌륭한 매개가 된다.)

그렇게 좋은 음악을 나누며 고개를 까딱이고 몸을 들썩이는 가무(歌舞)도 우리 집의 즐거운 문화이다.






고대 역사서인 동이열전에도 기되어 있듯, 우리는 예로부터 음주와 가무를 즐기기로 유명한 민족이 아니었던가.

음주와 가무라는 말에서는 흥이 느껴진다.

한(恨)의 민족 흥(興)의 민족. (제가 민족주의자는 아닙니다만) 굳이 고르라면 후자가 더 마음에 든다.

문화를 '향유'한다는 말에도 '생활 속에서 마음껏 즐기고 맛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 즐겁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음주도 가무도. 행복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동 양식이다.

생(生)의 몸부림이자 투쟁이다.

(1절만 합시다, 1절만~.

이건 뭐, 육아일기인지, 논설문인지... OTL

그래도 조금이나마 설득이 되셨다면, 오늘 밤 딱 한 잔, 왠지 끌는 노래 한 곡과 함께, 삶을 적극적으로 즐겨 보시면 어떠한가요?

단, 즐기는 것이 과해서 주변에 피해를 주는 행위-주사와 고성방가-는 절대 금물니다!)




(*2020년 7월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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