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2013년 내가 결혼하던 해에 경기도 이천 교외에 있는 작은 땅을 사셨다. 잡초만 무성했던 밭 한구석에 급수와 전기 냉난방이 가능한 컨테이너를 하나 두고서 주말마다 이천으로 내려가 농작물과 꽃을 키우셨다.
사람을 좋아하시는 부모님 성품 덕분에 작은 시골 농장은 개시 이래로 늘 북적였다. 우리 삼 남매를 비롯하여 큰집이나 고모네 식구들, 가까이 사시는 외삼촌 외숙모도 자주 다녀가시는,대가족 주말 농장이다.
이렇게만 말하면 퍽 여유롭고 아름다워 보일는지 모르겠지만 컨테이너 생활이 녹록지만은 않다. 요리는숯불 아니면 부르스타로만 가능하고, 이동식 샤워장을 설치하기 전까지는 씻고 옷 갈아입을 장소도 여의치 않았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에는 지하수 수도를 잠가놓아야 하기 때문에 서울에서 가져간 물을 끓여 고양이 세수를 했다.
무엇보다 화장실! 열심히 관리를 한다 해도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진 수세식 화장실에는 비할 수가 없고, 여름이면 모기를 비롯한 각종 날벌레의 집합소가 된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이천 농장을 참 좋아했다. 작은 컨테이너 하우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우리도 벌레 정도로는 유난 떨지 않을 만큼 무던하게 자란 편이라 이따금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남편과 함께 친정집보다 이천을 자주 찾았고, 친구들을 이천으로 불러 함께 놀기도 했다.아이가 생긴 후로는 이천 농장을 자연체험 학습의 장으로 적극 활용했다. 낮에는 농장에서 놀다가 숙박은 가까운 시내 호텔을 이용하는 방법도 아주 좋았다.
2016년에는 경강선이 개통되어 대중교통으로도 이천을 찾기가 수월해졌고(위치상 픽업 서비스는 필요합니다.) 농장에서 5분 거리에 도예촌 관광단지가 모양을 갖춰가면서 이천 농장의 매력은 점점 더 높아졌다.
이렇게 인기가 많다 보니 언제누가 이천 농장을 사용할지 펜션혹은 캠핑장처럼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그러던 이천에 큰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남동생도 결혼을 했고, 부모님의 서울 집 규모도 줄이면서, 드디어 이천 땅에 꿈의 주택을 올리게 된 것이다.
2020년 봄부터 가을까지 공사를 마친 이천 하우스.
따라다라 따~ 따라다라다 다~
이 뻔한 음악이 흘러나올 것만 같은 화이트 하우스다.
집의 건축 디자인과 설계 등 모든 과정을 아빠가(정확히는 아빠와 마음이 참 잘 맞으셨던 건축 사무소 사장님이) 진두지휘하셨다.건축에 대해서는 가족들 모두 지식이 일천하여 믿음직한 전문가의 존재가 참 든든하게 느껴졌다.
집 짓는 일은 정말 돈과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예기치 못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기본적인 공사가 마무리되어 살림살이를 하나씩 들이고 지내던 여름에는 기록적으로 쏟아진 폭우로 인해 뒤쪽 축대가 무너지는 사고도 있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던 시간대에 일어난 사고라 천만다행으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당시를 떠올리면서 참 여러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잘한 사건 사고를 잘 넘기고 드디어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다 감당 안 될 만큼 큰집 식구들과 고모네, 외삼촌네 식구들이 냉장고, 전기밥솥 등 살림살이를 채워 넣어 주셨다. 마당에 잔디를 심고 꽃밭을 조성하는 일도 외삼촌들이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힘써 주셨다. 우리 삼 남매도 각자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안마기, 대형 그릴, 파라솔 등을 샀고, 아부지는 성인 열 명은 들어가서 놀 수 있을 정도의 대형 풀장을 구매하셔서 엄마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 시국에 모임 인원 제한만 아니면 더 많은 사람들이 들고나며 이곳을 즐겼을 텐데 그 점이 못내 아쉽다. 이젠 좀 물러가라, 코로나!)
기존의 작은 불편함들마저 제로에 가깝게 수렴시킨 멋진 집이 완성되고 나니 사소한 고민에 빠졌다.
명칭.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모님 명의인 장소이지만 '우리 가족 주말 농장'이라고 부를 때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는데 말이다. 정식으로 집을 올리면서 농지도 토지로 변경하고 컨테이너도 주택으로 업그레이드가 되니 이걸 참, '농장'이라고 불러야 좋을지 '별장'이라고 불러야 좋을지 애매하더라.
농장:농사지을 땅과 농기구, 가축, 노동력 따위를 갖추고 농업을 경영하는 곳.
별장:살림을 하는 집 외에 경치 좋은 곳에 따로 지어 놓고 때때로 묵으면서 쉬는 집.
(헷갈릴 때는 검색 찬스를 이용하세요. 국어사전은 내 친구.)
부모님이 살림을 하시는 집은 서울에 있으니(언젠가는 거처를 아주 옮기실 수도 있지만), 별장이라는 표현이 적확하기는 하다.
그렇지만 별장이라고 하면 어딘지 재수 없어 뵈는 부르주아지가 연상되지는 않습니까?저만 그런가요?
사실은 대단히 복합적인 의미와 가족사가 담긴 이 장소를'별장'이라는 단 두 글자로 대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휘 선택에 예민한 것은 아빠를 닮은 탓이다. 막상 남들은 별 관심 없을 명칭 때문에 번뇌의 시간을 제법 오래 보내고 나서, 온라인 게시글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이곳을 '이천 가족 별장'이라고 칭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곳은 우리 가족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드는 소중한 별장이맞으니까.
설령 이보다 규모가 더 작고 아담할지언정,
또는 이곳이 시간이 많이 흘러 쇠락해 갈지언정,
때때로 찾아가 즐기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곳이 별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얼마 전 우연히 뒤적여 본 아빠의 건축 기록 파일에는 이천 가족 별장을 '이천 하우스'라고 적어 두셨더라.
아빠도 별장이란 표현은 썩 와닿지 않으셨나 보다 생각하며 혼자 피식 웃었다.
건물 그 자체를 칭할 때는 '이천 집'이나 '이천 하우스'라는 말이 더 편안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보다 더 부모님의 영혼이 담긴 명칭도 있다.
바로 '시가(詩歌)누리'이다.시와 노래를 함께 즐기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시인이자 작사가인 아빠와 작곡가인 엄마의 정체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이름이다.
기존에 사용하던 컨테이너 하우스에는 맞춤 장을 들여서 부모님의 동요 및 가곡 창작의 역사와 교육자로서 받아오신 각종 훈장 및 임명장들을 전시한 공간을 만드셨다.
이천에 땅을 마련하실 때부터 부모님의 진정한 꿈은 어쩌면 이 작은 전시관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먼 미래에 자녀들에게 짐을 남기고 싶지 않으신 그 마음을 안다.그것이 각종 상패와 책과 음반들같은 트로피들이라고 해도 말이다.
언제라도 곡 작업을 할 수 있는 오르간과 대형 실로폰, 작업용 책상도 함께 놓여 있는 현재형 '시가공방(詩歌工房)'이지만, 자식 된 입장에서는 이곳에서 부모님의 과거와 먼 미래가 동시에 보일 때가 많아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내 작업물이나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딸내미의 작업물도 여기로 오게 되려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아빠가 직접 쓴 현판 '시가누리'
작은 전시관으로 사용중인 기존의 컨테이너 하우스 '시가공방'
남들에게 직관적으로 읽히는 '이천 가족 별장'이란 이름보다,
대단히 매트한 느낌의 '이천 하우스'라는 이름보다,
'시가누리'라는 이름이 가장 좋다.
누군가에게 이 이름으로 가족 별장을 소개하려면 TMI가 불가피하지만, 여기는 시와 노래를 즐기는 우리 가족의 쉼터이다.
긴 이야깃거리가 있는 만큼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천 하우스의 낮과 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인 이곳을 다섯 살 난 딸내미는'이천 내 집'이라고 부른다.
...?! ㅎㅎㅎ
제가 가르친 게 아닙니다. 진짜루요.
"이 집은 자주 찾아와서 즐기고 가꾸는 사람이 주인이다."라고 하신 외할아버지의 말씀 때문이라고요.
코로나 시국에 유치원도 제대로 못 갔지, 마침 엄마는 회사도 그만두고 집에 있지, 평일이고 주말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이천에 함께 내려와 집이 지어지는 전 과정을 살펴본 호연이는, 누구보다도 이천 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지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