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육아 일기

엄마가 우주를 보여준 날

이 넓고 넓은 우주에서 우리가 만난 것은...

by 박경진

나는 우주를 좋아한다.

나는 우주를 사랑하 도 같다.

천문학과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저 평소에 하늘의 별을 보면서 "아~ 좋다~." 하는 단순한 감상을 날리 정도의 것도 없는 상을 보내는 사람이지만, 막상 첫 문장을 쓰고 나서 지난 삶을 돌이켜보니 과 우주에 빠져 지낸 역사가 상당히 깊다.


486 컴퓨터를 사용던 시절에는 플로피디스크 몇 장에 달하는 분량의 성단이나 성운 사진들을 보관하기도 했고(학명이나 위치 같은 정보를 외우지는 못합니다... 그냥 참 이뻐서 그랬어요...), 대학교에서도 우주에 대한 교양 강의를 혼자서라도 찾아 었다(주 깊이 있는 수학 지식이 필요치 않은 수준에서요... 저는 우 문송한 사람라...).

언젠가 턴코리아라는 출판사에서 간된 우주 진집을 한 권 샀었는데 이따금 혼자서 조용히 그 책을 펼쳐보는 간이 복했다.

인이 된 후에 가끔 일본 도쿄를 여행할 때면 시간을 쪼개어서라도 이케부쿠로 선샤인시티에 방문하여 플라네타리움 '만텐(滿天)'의 티켓을 끊고는 했다.

자주 변경하지 않는 노트북이나 휴대전화의 배경화면은 늘상 밤하늘 사진이다.


언제부터 우주를 좋아던 걸까.

은하수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1~2학년 때였다. 충남 당진에 위치한 외갓집은 아궁이로 불을 때어서 온돌 난방을 하는 전통 가옥이었다. 당진 시내에서도 더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가는 길은 당시에 포장도 안 된 흙길어서 오갈 때마다 차가 늘 심하게 덜컹거렸던 기억이 난다. 외진 시골 마을은 빛공해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천체관측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었다. 여름방학 때 외갓집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바라봤던 밤하늘은 서울에서와는 달리 너무나 선명하고 맑았다. 정말 강물이라도 흐르듯 밤하늘을 뿌옇게 물들인 은하수가 참 예뻤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천체망원경을 들여다 기회가 있었다. 당시 외숙모께서 근무하시던 기도 광주의 은 시골 분교에 어떤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천체관측을 한다고 찾아왔었는데, 마침 외삼촌 댁에 1박으로 놀러 갔던 날이라 운 좋게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면식도 없던 아이들에게 고가의 장비를 선뜻 내어준 언니 오빠들도 참 고맙고 대단하다.

달이 없는 맑은 밤, 거대한 사이즈의 원경 렌즈를 통하여 목성과 목성의 위성 두 개 선명하게 보였다. 해와 달 외에는 그저 반짝이는 점으로만 보였던 무수한 별들. 밤하늘이라는 2차원 은색 도화지 위에 그저 예쁘게만 흩뿌려져 있던 그 별들이, 항성과 행성과 위성이라는 자기만의 이름을 가지고 우주라는 3차원 공간 안에 쭉 늘어서 있음을 체감하며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경험을 했다. '움직이는 지구' 위에 서 있는 작디작은 스스로를 처음 자각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별자리 이야기>에서 읽었던 그리스 신화의 지식을 올리며 목성의 4대 위성 이름인 제우스(주피터)의 애인들을 언급했을 때, 언니 오빠들이 기특해했던 기억도 오래 남았다.

<별자리 이야기>는 가 아빠의 서가에서 꺼내 본 첫 성인(?) 도서이기도 하다. 오리온,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카시오페아, 페르세포네... 별자리에 얽힌 그리스 신화가 참 재미있기도 했지만, 삽화 하나 없는 꺼운 책을 읽는 것을 대견해하셨던 부모님의 긍정적 반응이 같은 책을 읽고 또 읽게 만드는 큰 동력이 되었다.

우주 덕후의 씨앗은 사실 더 어렸을 때부터 뿌려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술이 좀 들어가면 허구한 날 본인이 어린 왕자라고 농을 하시던 아빠 덕분에, 린 나이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저기 먼 별에서 지구별을 찾아온 여행자이며 현세에서의 죽음과 이별이란 각자가 자신의 별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관념을 갖게 되었다. 류시화 작가가 2002년 <지구별 여행자>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했을 때, 책 제목만 보고서도 저절로 손이 뻗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빠의 대표 시 제목은 <나의 별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고 나 첫 작품으로 <어린 왕자에게>라는 동요 노랫말을 썼다.

그러고 보면 꽤나 별 볼 일 많았던 별난 어린 시절이었다.


우주에 대한 동서고금의 다양한 이야기들은 제나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태양계 행성과 위성들, 황도 12궁과 각 별자리에 얽힌 설화들, 생일에 따른 별자리별 성격, 동서남북을 담당하는 4방 28수...

90년대 일본 만화를 좀 보신 분들이라면 익히 아실 <세일러문>과 <후시기 유기('환상 게임'으로 정식 번역됨)>에도 정신없이 빠져들었더랬다. 독학으로 습득한 내 일본어 력의 8할은 이 두 만화의 전 시즌 OST를 달달 외우다시피 했던 덕력로부터 나왔다 해도 틀리지 않다.

나사에 대한 음모론과 달의 뒷면에 대한 상상력 일본 전통 신화 카구야 히메 이야기에 버무려낸 <월광천녀>, 보름달이 뜬 날 찻잔 안에 달을 띄워 홍차를 마신다는 설정이 나오는 <홍차 왕자>도 참 좋아했다.

히어로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서도 <어벤저스> 시리즈를 빼놓지 않고 챙겨보는 이유 하나의 우주라는 배경 안에 북유럽 신화와 SF물까지 개연성 있게 묶어낸 그 특한 계관 때문이다.

과학자의 화성 탐사 이야기를 다룬 <마션>이나 언어학자의 외계인 조우 이야기를 다룬 <컨택트> 같은 영화는 원작 소설까지 함께 찾아보며 푹 빠져서 감상했다.


내가 만약 '우주 학'보다 '우주 야기'를 더 좋아하지 않았더라면(수학 성적이 좀 더 좋아서 이과를 선택했더라면...이고 해야 지도요...) 아마도 난 천문학을 전공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 성인을 위한 장난감들이 제법 유행이다. 키덜트라는 표현도 생소하게 들리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세가토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홈스타'는 천체투영기는 장난감이라기보다는 고급진 인테리어 소품 같다.

손가락 한 뼘 사이즈의 플라네타리움.
리얼한 은하수 이미지가 방 천장에 펼쳐진다.


제품 가격이 좀 나가는 편이라 살까 말까 늘 고민하곤 했는데, 마침 크게 축하할 만한(=현금이 들어올) 일이 있어서 자축의 의미로 플라네타리움을 질렀다.

시중에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예쁜 별 모양 달 모양 무드등과 가장 큰 차이점은 리얼리티라고 하겠다.

은하수, 오로라, 별자리 등 원하는 디스크를 삽입하면 방 천장에 생생한 밤하늘 이미지가 펼쳐진다.

소소하게 별똥별이 하나씩 떨어지는 기능과 하늘이 조금씩 회전하는 일주 운동 기능이 함께 들어 있다.

(저는 절대로 이 회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내돈 내산 후기일 뿐입니다.)


엄마가 우주 덕후면 벌어지는 일.

아직 엄마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여섯 살 딸아이도 앞으로 방구석 우주쇼를 강제로 감상해야만 하느니라.


아이에게 기왕이면 드라마틱한 경험을 만들어 주고픈 마음에 플라네타리움 배송이 오기 전까지 혼자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아빠가 우주를 보여준 날>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울프 스타르크라는 북유럽 아동문학가의 작품인데 크레용하우스 출판사에서 2002년에, 그리고 2018년에 새로 펴냈다.

치과 의사인 아빠가 캄캄한 겨울밤에 아이를 데리고 나와 처음으로 밤하늘을 함께 보며 우주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이야기이다.

작품에 나오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우주'라는 말을 떠올리며 "이것도 우주예요? 저것도 우주예요?"를 무한히 반복하며 놀 수 있다.

저기 보이는 뒷산도 우주, 집 앞의 나무도 우주, 편의점도 우주, 신발도 우주...

이 놀이가 시큰둥해질 즈음,

"아빠는 네가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작품 말미에 나오는 아빠의 대사를 진심을 담아 읊어 준다.

"난 오늘 아빠가 보여준 우주를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주인공 아이의 말을 천천히 따라 읽으며 혼자 감상에 푹 빠져 본다.

호연아, 너도 지금 집중해서 듣고 있는 거 맞지?


책을 읽어준 후에 새로운 수면 의식을 시작하기 위해 플라네타리움을 켰다.


-와아, 진짜 밤하늘이다!


기대했던 대로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단다.


-저렇게 작은 별과 별 사이가 사실은 엄청나게 멀대. 우주선을 타고 평생을 가도 닿지 않을 만큼 말이야.

이렇게 넓은 우주에서 엄마 아빠랑 같은 지구별에 태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는 호연이가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아름다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어.


책 속의 문장을 당하게 표절하려니 말투에서 가식이 좀 묻어난 것 같긴 하지만.

자~, 어떠냐~. '엄마가 우주를 보여준 날' 프로젝트는 여기까지란다.

시나리오대로 착착 준비한 멘트를 날리고서는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며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캄캄한 방 안. 흐릿하게 보이는 아이의 얼굴.

서로를 지그시 마주 보다가 방긋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이를 꼭 끌어으니 가슴이 벅차다.

프로젝트를 준비한다고 하루 종일 바쁘고 시끄럽게 굴러가던 머리가 잠시 운행을 멈추었다.

광활한 진공 상태의 우주 우리 둘만이 조용히 떠 있는 것 같다.


엄마가 오랫동안 오늘을 기억하게 될 것 같구나.

너와 함께 처음으로 우주를 본 날.



(* 2021년 5월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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