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동네 편의점에 캔디류가 쫙 깔린 모습을 보고 딸아이가 관심을 보이기에, 화이트데이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화이트데이는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사탕을 주는 날이래.
-어, 아빠가 남자인데!
-아빠가 누굴 사랑하는데?
-나랑 엄마? 그럼(!) 아빠가(!) 나랑 엄마한테(!) 사탕을 주겠네?
하하하. 이게 그렇게 눈까지 빛내며 힘주어 말할 일이었더냐.(아빠가 사랑하는 사람에 엄마도 끼워 줘서 참 고맙다.)
요즘들어 더욱 똥꼬발랄하신 따님.
우리 집 최고 존엄 따님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기 위하여 아빠상어는 백만 년 만에 캔디샵을 들렀다.
나와 남편은 특별히 이벤트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다. 연애 초기부터도 그랬고, 지금도 서로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다.
그런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새삼스레 이벤트의 즐거움을 쏠쏠히 느끼고 있다.
할로윈에는 쿠키를 굽고, 크리스마스에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카드를 쓰고, 추석과 설에는 한복을 꺼내 입고 송편이나 만두 같은 명절 음식을 만들거나 전통 놀이를 해 본다.아이의 생일에는 왁자하게 파티를 하고 선물 증정식을 진행한다.
나도 분명 어릴 적에는 부모님과 함께 이런저런 다양한 이벤트들을 즐겼었는데...
어른이 되면서 집 나갔던 동심(童心)이 아이와 함께 다시 찾아오기라도 한 걸까?
게리 채프먼이 쓴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책에서는 사람마다 애정을 느끼는 소통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긍정적인 말(word of affirmation), 신체적인 터치(physical touch) 외에도 서로에게 봉사하는 것(acts of service), 함께 특별한 시간을 보내거나(quality time) 선물을 주고받는 것(giving gifts)도 사랑을 전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는 애정이 있더라도 상대에게 온전히 그 마음이 전해지지 못해서 오해가 쌓이기 쉽다고 한다.
이성과 합리를 중시하는 나와 남편은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사랑을 전하는 방식'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이러한 방식의 집결체로도 보이는 '이벤트'에 시큰둥해 왔던 까닭도 우리 부부가 주로 사용하는 사랑의 언어가 지닌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내 아이에게는 따뜻한 애정의 말과 다정한 스킨십은 물론이고, 함께하는 수많은 첫 경험의 시간들과 소소한 선물들을 포함하여 편견 없는 다양한 사랑의 언어를 알려주고 싶다.
아니다. 큰 착각이다. 편견이라는 것을 아직 학습하지 않은 아이가 이미 어른보다 다양한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유치원에 가는 것보다 엄마랑 집에 같이 있는 것이 제일 좋고(오늘도 유치원에 가기가 싫고...=,.=) 아빠가 해 주는 요리가 가장 맛있다는 그 잔망스러운 말로, 허접하기 짝이 없는 종이접기 작품이나 작은 꽃송이를 선물이랍시고 챙겨 오는 행동으로, 아이는 이미 자유롭고 다채롭게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로부터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잊고 지냈던 기억 속 희미한 사랑의 언어들을 아이 덕분에 다시금 떠올려 본다.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라는 것에 우열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개인마다 선호하는 편안한 언어가 따로 있을지언정,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다른 사랑의 언어보다 열등하다고 여길 이유가 어디 있으랴. 값비싼 선물로만 애정의 크기를 재려 하는 꼬부라진 마음이 문제인 것이겠지.
이벤트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나니, 무슨무슨 데이라는 이름이 붙은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아이와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이벤트가 될 수있겠구나 싶다.
사랑을 담은 작은 선물. 너의 수많은 첫 순간을 함께 나누는 시간. 따뜻한 말과 표정, 서로의 온기와 체취를 느끼는 스킨십... 그렇게 오늘도 너를 사랑하고 우리의 삶을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