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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진 Nov 19. 2021

수능 국어 킬러 문항

헤겔의 변증법에 부쳐

어제는 대한민국 수험생들의 최대 관문인 수능 날이었다.


나는 국문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독서 교육을 업으로 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일은 주로 등 교육 쪽이라 입시 국어는 사실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매년 수능 다음날이면 기사를 검색해 보고 국어 영역에서 이슈가 되었던 문제들을 직접 풀어본다.

수능이라는 말만 들어도 아직까지 몸이 덜덜 린다거나 1교시 이후에 멘붕이 와시험 전체를 망쳐버렸다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뭐 저런 변태 같은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수도 있겠다. 그저 필자가 "독서가 취미입니다."라는 말이 순도 100% 진심인 사람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수험생 시절에도 영어와 수학 공부는 억지로 했지만, 국어와 사회 영역 지문을 읽는 자체가 책을 읽는 것과도 같았기에(수험생이 문제집 외의 책을 들고 있으면 공부 안 하고 논다는 눈총을 받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려나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문제집을 펼쳐보곤 했다.

 시절 비문학 지문을 읽으며 접했던 인문 철학에 대한 지식은 교과서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지적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당시 어느 모의고사 문제지에 실렸던 '확증편향'에 대한 오래도록 머리에 남아 자아성찰의 나침반이 되었다.


독서와 국어 성적은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에 있다. 책을 그저 많이 읽는 이가 국어 성적도 잘 받는 것 아니다. 그렇지만 난이도 논란에 상관없이 국어 성적을 잘 받는 아이는 을 읽고 깊이 사유해 본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독서와 사유로 다져진 문해력은 원만한 사회생활과 개인의 성장 및 행복의 밑거름이 된다. 최근에는 문해력 차이가 연봉의 차이는 물론이고 건강과 수명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 나왔다. 랄 노자다. 아마도 문해력을 바탕으로  관련 다양한 정보를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인 듯하다. (자자, 책을 읽읍시다. 뭐도 읽고 공부를 합시다!)


만화책과 판타지 소설을 망라하여 독서를 즐겼을 뿐인데, 사교육 없이 국어만큼은 1등급을 놓친 적이 없수십 차례의 모의고사와 두 차례의 수능 경험을 통틀어서도 틀문제가 손에 꼽을 정도였어서, 국어 시험을 마치 쉬는 시간이면 구들 답을 물으러 몰려오곤 했다학생 P의 사례 함께 적어 본다.

독서와 문해력의 중요성에 대해 더 높은 증거 수준(LOE. level of evidence)을 갖춘 자료들이 많이 있음에도 인 통제가 엉망인 개인의 경험 근거로 드는 것은, 주장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의도보다는 자기 자랑의 목적이 크다. 죄송하다.


문해력은 나의 자부심인 동시에, 독서 교육자로서 필수 소양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못 읽어 내는 글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겠는가.

수능 국어 시험은 문해력을 공식적이고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매년 수능 국어 킬러 문항을 풀어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2018년 우주에 대한 물리 지문은 나도 틀렸다. ㅠㅠ 근히 속상했다. ㅠㅠ)


올해는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지문이 나왔다.


헤겔의 변증법과 미학론
정답은...? 인터넷 검색을 활용하세요. :)



문항이 쉽다 어렵다, 나는 풀었다 못 풀었다 같은 너절한 리는 하고 싶 않다. (시간 제약이라는 부담 없이 자발적인 독자로서 지문을 읽는 제 입장을 어찌 수험생들 입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은 6번 문제가 아니라 3점짜리 8번 문제가 제일 난해했죠. 푸는 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리더군요. 대한민국 수험생들 정말로 모두모두 대단하고 기특합니다.)

당장의 성적과 등급으로 합격의 당락이 결정되는 수험생들은 '텍스트' 자체에만 몰두있을 가능성이 높지만(정확히는 헤겔과 평가원에 대한 원망만 가득할지도 모르지만... 아니라... 이미 분위기가 그렇더라만...ㅠㅠ), 이번 수능 비문학 지문은 개인적인 취향에 비추어 참 감격스럽고 좋았다. 수험생들께는 거듭 송하다. 취향일 뿐이다.

(사실 가장 많이 와닿고  읽히기도 하  지문으로, 독서의 가치에 대한 도 있었죠. 그것도 할 말이 참 많지만, "구구절절 공감한다." 마디로 갈음하겠니다.)


헤겔의 변증법 수박 겉핥기로만 접해본 이론이지만, 정교한 수사로 정리된 글을 읽으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방에서 요동치며 '콘텍스트(연결)'의 의지를 표명한다.

뇌에 기억된 과거의 정보들이() 헤겔의 미학론을 기술한 문장들을 만나자(), 이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합) 욕구가 발하여 뇌 속에서 지각변동 일어나는 것이다. 일순간에 머릿속이 시끄러워진다.




지는 은 사실 '작가의 서랍'에 아직은 넣어두어야 하는, 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의 편린들이다.

그럼에도 '사유 사례'를 소개한다는 목적으로 두서없는 글을 끄적여 보련다.


(헤겔) 정-반-합
(니체) 낙타-사자-어린이
(미학) 예술-종교-철학
직관-표상-사유
미(not 미학)-선-진
체-덕-지
취향-신념-진리
정책 논제-가치 논제-사실 논제
철수-영희-바둑이...는 농담입니다.


"변증법은  사유의 즐거움을 직관적으로 보여 준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테제)을 보고 다양한 비판이나 질문(안티테제)을 던며, 그것을 아우를 수 있는 진실을 찾아내는 것.

이번에 헤겔의 미학론에 대한 연계 지문으로 제시된 <나> 글도 <>  대한 명료한 안티테제다. 반합을 말하는 글을 구조적인 정반합으로 풀어 내다니! (출제자도 참 어지간한 변태이십니다, 그려... 이건 제 나름의 감동과 호감의 표현입니다.)

A와 B 두 사람이 이것이 맞다 아니다 티키타카를 하는 상황을 관전하는 것이 재미있지 않은가?'정'과 '반'이 치열하게 싸우는 토론의 장은 콜로세움의 경기를 방불케 한다. 누가 이길까? 아무나 이겨라! 응원하는 편이 특별히 존재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구나 이 건전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지적 싸움을 즐길 리가 다.

'합'에 대응하는 '사유'야말로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며,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의 발현이며, 진정으로 인간다운 특성일 터.

생각함으로써 고로 존재하는 아저씨도, 배부른 돼지와 비교되곤 하배고픈 생각쟁이 아저씨도, <가>의 글쓴이도 <나>의 글쓴이도 다들 참으로 인간답다. 그래서 . 내 취향이다.


"예술을 모르는 사람은 안타깝다."

자신의 취향이 분명해야 안티테제에 해당하는 신념도 이댈 수 있고, 두 개념이 충돌하는 사유를 통해 궁극적인 진리 탐구도 가능 것이다.

'inartistic'이라는 말은 예술을 모른다는 의미도 있지만 미가 없다는 함께 지닌다.

그래서였나. 취미나 취향이 없는 사람에겐 '인간적인' 매력 못 느끼겠더라.

좋고 싫음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 타고난 본능일진대 "아무거나요.", "특별히 좋아하는 거 없어요.", "취미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이들은, 사실 취향이 없는 게 아니라 취향을 자유롭게 탐색하거나 편안히 드러낼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것이리라. 그래서 그런 이들에게 깊은 연민을 보낸다.

부디. 지금부터라도 꼭. 나만의 취향을 찾으시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보다 단순하고 보편적인 진리를 찾아가며, 즉 철학적으로 사유하며 우리는 더욱더 자유로워진다.

개인적으로는 '절대정신'이라는 용어가 참 신경 쓰인다.

나는 참과 거짓이 명확한 '진'의 개념에만 '절대'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술 종교 철학 각각의 위상 다르 면서도, 동일하게 '절대정신'이라고 칭해 주다니. 헤겔은  너그러운 사람이 아닌가.(뭐, 본인이 찔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술인이나 종교인의 반론을 고려하여 말이다. 실제로 <나> 지문 같은 반론도, 고민해 보았던 것일지도. 아님 말고.)

극(아름다운 예술의 극치)과 극(선한 종교의 극치)은 결국 참된 진리와 통하는 것인가.

예술과 종교와 철학을 아우르는 '미학'에도 진선미가 존재하며, 미학이 곧 미의 문제만을 다루는 것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반성한다.

'정책 논제는 각자가 처한 입장에 따른 호오 판단만 존재할 뿐 진리의 문제는 아니다.'

'가치 논제는 각자가 지닌 신념에 따른 시비 판단일 뿐이므로 나와 다른 타인의 신념에 또다시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다가는 대화의 결론이 날 턱이 없다.'

'진리는 보다 단순하고 명료하다. 그저 참과 거짓, 그것을 안다 모른다의 문제이므로. 우리는 순하고 명료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

평소 이런 생각을 하며  번째 개념. 미, 정책, 호오판단 문제늘 하위에 두었던 나로서는, 철학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철학, 종교, 예술을 모두 '절대정신'의 한 형태라고 표현한 헤겔을 보며 또다시 변증법시도할 수밖에 없다.


"된 진리만이 절대적이며 다른 모든 것상대적이겠지." -정

"이를 헤겔의 미학론과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을 대입하여 평가해 볼 수 있겠군." -반

"어느 경지에 이른 위대한 예술과 위대한 종교는 참된 진리와 닿아 있군." -합


, 버겁게 풀었던 킬러 문항 8번이 바로 이 얘기.


위대한 예술은 '진' 과 통하는 절대정신일 수 있다! 2번!(솔직히 1번은 많이 헷갈렸다...) 틀렸어도 좌절하지 맙시다. 이건 노련한 성인 독자에게도 분명 어려운 문제 맞습니다.



본인이 품고 있던 진선미에 대한 형상을 위계적인 피라미드 그림에서 진리가 중심을 단단히 지키는 동심원 그림으로 수정한다.

포함 관계구나.

진리를 탐구한다는 것은

 힘겹게 올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고, 안으로 조용히 들어가야 하는 것이구나.

('합'을 맹신하지는 맙시다. 모든 '합'은 또다시 테제로서 반론과 비판을 기다립니다.)


다원론과 불가지론을 좋아하는 (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욱 다수에게 선하고 어쩌면 흔들리지않는 절대적인 진리가 어딘가 존재할 것이라는 신념(선)을 가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는 순간까지도 정반합을 반복하동심원의 중심(진리)을 향해 나아는 것 내 인생의 숙제인지도 모른다.






수학 능력 시험의 국어 영역은 학습자가 텍스트를 읽고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다행히도(혹은 애석하게도?) 공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진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올바른 해석' 이후에 비판적 적용, 나아가 융합과 창조가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수능은 말마따나 학문의 기초 단계인 '올바른 해석' 능력을 평가할 뿐이다. 이 말이 더 냉정할지도 모르겠다. 기초가 부족한 사람이 대학에 들어가 고급 학문을 익힌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테니.


지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이제 비판과 반론(안티테제)이 등장할 차례다. 지나치게 고급지고 현학적인 이론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보다, 현재의 내가 수용 가능한 정보들로부터 융합과 창조를 꾀할 수 있다면? 이러한 능동적 학습자는 당장의 수능 성적이나 대학 간판에 상관없이 필히 성공할 것이다.(석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는 수동적 학습자는 "명문대를 나왔지만 내가 뭘 배웠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마침 오늘 아침에 이런 유사한 제목의 기사가 떴더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변증법으로 놀아보자!


-살면서 예술, 종교, 철학을 잘 알고 즐기는 능력이 수학 능력 시험 성적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물론 인과관계는 아니더라도 상관관계는 있을지도...)

-명문대를 안 나와도 뭔가를 잘 배우면 된다.(뭐가 됐든 배우긴 배워야...)

-대학 또는 학원 수준의  지식을 파는 건 까이꺼 공부가 진정으로 취미인 학자들더러 하라고 하고 나는 다른 거 하자.(헤겔 꺼지라고 당당히 외쳐도 된다. 단, 본인이 분명하게 좋아하는 거는 있고 나서...)


각각의 명제에서 본인의 마음이 정으로 자유롭고 편안해지는 '합'을 도출하셨는지?



수능 성적이나 대학 간판이 전부가 아닙니다.




수험생들을 위한 참된  하나를 던지며 글을 마무리하련다.

매년 이맘 때면 남들 다 하는 참 뻔한 말이기도 하다.

그래도 조금은 더 진심으로 와닿는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저 문장 안에서도 '진정한 배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고, 사실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하거든요.'라는 함의를 읽어내야만 한다고. 설명을 덧붙이려니 구차하다. 나름은 쉽게 써 보려고 노력했다만, 이 글마저도 너무 현학적이었다면 사과를 드리지 않을 수 다.

리란 단순하고 명료한 .

더 쉽고 친절하게. 한 번 더 노력.



시험 치르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요.
앞으로 다 잘 될 거예요.
진실된 행복은 마음먹기(이번에 여러분을 괴롭힌 국어 지문에 나오는 그 '사유' 말이죠...)에 달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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