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 기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진 Aug 06. 2021

[서평]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함인주 교수님을 찾습니다!

 대학 졸업 이후 십여 년 만에 글쓰기 세미나라는 것에 참여하게 되면서, 멤버들과 서로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책이다.

 교정교열이 업인 김정선 작가가 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이 책은 장르 두 개가 왔다 갔다 반복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번은 교정교열 이론, 다른 한 번은 작가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가 교차하여 나오는데, 김정선 작가가 교정교열 일을 하다가 알게 된 함인주라는 저자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겪은 이야기가 에세이의 주요 내용이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함인주 저자의 첫 메일에 담긴 문장이다.

 새로운 형식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책의 구성 방식은 생소하고 어색했다. 나는 이 책을 교정교열 기법을 익히려고 샀기 때문에 다른 반쪽 이야기는 별로 흥미가 없었다. 왜 굳이 이런 방식으로 책을 썼을까 물음표를 던지며 침대에 등을 기대고 느긋하게 책을 읽어 나갔다.

 학창 시절 아버지께 추천을 받아서 끼고 읽었던 이태준의 <문장 강화>도 생각나고, 여느 교정교열 책과 비슷한 내용들이 많아서 다소 건성으로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다가, 2% 정도는 반론 거리도 생각나서(시나 소설 같은 문학적인 글에서 운율을 만들기 위해서나 강조를 위해서 부러 허용하는 표현들을 떠올렸다.) 살짝 삐딱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책의 중반 부분에서 돌연 자세를 곧추세웠다.



만약 궁금했던 것이 ‘내 문장이 정상적이고 표준적인 문장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문장인가요?’가 아니라 ‘내 문장이라는 게 그렇게 이상한 것인가요?’ 라면 어떻겠습니까? 말하자면 ‘내 문장을 쓴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라면 말입니다.



 위 메일에서만 보아도 앞선 작가의 교정교열 이론에 어긋나는 문장들이 들어 있다. 내 문장‘이라는’ ‘게’ 그렇게 이상한 ‘것’인가요?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지우면 신기하게도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첫 메일의 문장이 된다. 교정교열 원칙에 따르면 어딘지 손 좀 봐야 할 것 같은 이 이상한 문장 하나가 책의 장르를 완전히 뒤바꾸고 있었다.

 갑자기 두 사람의 메일은 긴장감 넘치는 학술적 논쟁으로 바뀌어 간다. 갑과 을의 대립, N과 S의 대립, 이데아와 현상의 대립. 기가 막힌 갈등이다. 이렇게 이 책의 절반, 에세이 부분은 대단히 흥미로운 소설이 되었다. 이론 부분은 제치고 소설만 읽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소설은 갈등 상황에 있는 함인주와 김정선 두 인물이 강연장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것으로 클라이맥스를 찍는다.

 김정선 작가의 꿈 이야기처럼, 삶이 억지로 마신 포도주에 취해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비단길 또는 자갈밭이라면(우리네 인생이 어찌 평지이겠는가!) 온전한 문장이란 평지에서의 표현일 테고, 삶이 녹아 있는 글이란 내리막길에서 지르는 비명이나 환호일 터이니.


“비명의 입장에선 그럴듯한 문장에 적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겠죠.”
“비명이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거로군요...... 비명을.......”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비명을 지른다는 표현 때문에 나는 울었다. 함인주 님이 임종을 앞두고서 교정지에 자신의 문장에 대한 고뇌를 격정적으로 남겨 두었으며, 유품이 된 교정지를 살펴보던 함인주 님의 부인이 출판사에 김정선 작가의 메일 주소를 문의했던 것이라는 장면이 나왔을 때(소설의 반전이 드러났을 때), 나는 책장을 다시 앞으로 넘겨 그분의 ‘비명’을 들었다. 함인주 님과 부인이 느끼셨을 복잡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나 역시, 많은 순간 단말마에 불과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책의 앞부분을 읽으며 느낀 삐딱한 마음의 정체가 ‘비명의 입장에서 느낀 적의’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금 책 표지를 살펴보니 또 한 번 감탄이 나왔다.

이 책의 표지를 맡은 편집 디자이너는 ‘그렇게’를 다른 서체로 표현하였다. 이것은 강조인가 생략인가. 아마도 책의 전개처럼 ‘당신의 문장이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이상합니다).’가 ‘당신의 문장은 이상하지 않습니다’로 전이되는 과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리라. (이 편집 디자이너의 표현은 ‘이상하지 않다’를 넘어 ‘훌륭하다’고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누구든 글을 쓸 때 ‘내 문장’을 쓴다. 대부분의 문장은 다듬고 또 다듬어도 이상하다. 하물며 유명 작가의 문장도 그러할진대, 이상한 것이 정상이다. 책의 말미에 소개된 문장가 김훈의 글은 남들이 함부로 따라 했다가는 정말 우스워지기 십상인 독특한 문체를 지니고 있다. 일반적인 교정교열 기법만 가지고는 접근 불가능한 궁극의 ‘내 문장’을 쓰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내공이 필요한 걸까. 그렇게 보면 ‘내 문장이 이상하다’는 사실은 크게 부끄러울 일도 아니다. 내가 나아가야 할 곳까지의 거리를 노려보며 (혹은 나긋하게 바라보며) 쉽사리 당겨지지 않는 풍경과의 긴장감을 가지고 문장을 대하는 것이 글 쓰는 이의 소명일 테니.


 하지만 김정선 작가는 ‘당신의 문장은 이상하지 않습니다.’라고 마지막 메일을 보낸다.

 함인주의 승리다!

 ‘내 문장’은 이상하지 않다. 생생한 삶을 살아가는 ‘나’는 누가 뭐래도 이상하지 않다. 현재를 영원으로 붙들어두려 노력하는 글쟁이들이여, 당당히 고개를 들어라!

 ...... 이렇게 환호하기엔 어딘지 염치가 없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환호도 비단길 위의 외침이구나. 내가 나아가야 할 문장의 끝은 아직 저만치 멀구나.


 김정선 작가도 얄궂게 마지막 메일 뒤쪽으로 ‘문장 다듬기’라는 제목의 교정교열 이론 두 챕터를 더 실어 놓았다. (제목이 ‘문장 다듬기’라니! 앞선 이론들도 모두 문장 다듬기잖아요. 이러지 마세요. 엉엉.)


문장의 주인이 문장을 쓰는 내가 아니라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라는 사실이다.
문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온전히 펼쳐지도록 다듬어야 한다.


 '내 문장'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욕심 가득한 표현인지, 이 책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 읽고 나서 종내에는 온전히 무릎을 꿇는다.

 마지막 두 챕터로 인하여 이 책의 절반인 교정교열 이론까지 모두 통합되어 하나의 온전한 작품이 되었다.

 김정선 당신의 완벽한 승리다.





(여기서 또 하나의 반전은 함인주라는 사람이 실존하지 않는 듯하다는 것이다.

너무 매력적인 인물이라 고인에 대해 폭풍 검색을 해 보았다. 번역가? 교수? 누구지? 무슨 미용학원 교수님이 검색되는데 이 분은 당연히 닐 테고...

서얼마 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셨습니까? 이 긴장감 넘치는 책이 레알로 소설입니까?

교정교열을 업으로 한다는 사람이 이런 소설도 씁니까?

김정선 당신이 두 번 이겼습니다.

저는 그냥 닥치고 헹가래를 치렵니다.

오늘도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죠.)

매거진의 이전글 [서평] 오직 두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