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문 앞에서 그 여자가 그러더군요.
"난 못 배웠어요. 그래서 배운 사람들은 나한테는 없는 교양이라는 게 있는 줄 알았어요. 그게 아니라는 걸 아버님 보고 처음 알았고요. 오늘 또 알았네요. 아버님 잘 모시세요."
거기가 바닥이었어요. 더 내려갈 데가 없는 곳.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집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몰라요. 와서 울지도 않았어요. 슬픔, 서러움, 억울함 이런 마음보다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수렁에 너무 오래 빠져 있어서 수렁인 줄도 몰랐구나 싶었어요. 지금이라도 탈출하자.
- 30쪽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분명히 알았어요. 내 삶의 더 커다란 결락, 더 심각한 중독은 아빠였다는 것을. (중략)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
- 38쪽
“아빠, 나 담배 다시 피운다.”
아빠가 그 말을 알아들었을 리가 없는데, 어쩐지 희미하게 웃는 것 같기도 했어요.
-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