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한국 사람이라면,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환경이 많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를 멈추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점도 인지하고 있으나 우리가 일상 속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대중교통을 타 보았자 전 세계적인 자연파괴 흐름에 큰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사실도 경험적으로 안다. <환경보호>는 오랜 기간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였다. 그러나 그 사이 변한 건 거의 없다. 과학자들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비슷하여 주제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환경분야 최고의 글쟁이, '랩 걸'의 저자인 호프 자랜이 쓴 환경보호 책도 재미없었다.
책의 구조는 전형적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과학적 수치들을 활용하여 지구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빠르게 훼손되고 있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한 개개인의 실천을 촉구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저자의 글솜씨가 워낙 뛰어나 글 자체는 잘 읽히며 각각의 에피소드는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자연파괴 악순환의 고리를 멈추는 방법은 비현실적이다.
아마 내가 이 책에 몰입을 못한 이유는 저자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에 공감을 못 한 이유는 자연 파괴로 인한 부작용을 별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여름의 더위와 폭우가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변화 탓이라고 한다. 아마 과학적으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10년 전에도 한국 곳곳에선 물난리가 났고 여름은 항상 덥고 습했다. 끓는 물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익어 가는 중일지도 모르나, 어쨌든 내 생활이 변한 건 없기에 근본적으로 주제에 공감이 잘 안 됐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 책의 결론도 공허했다. 단순히 개인의 노력해서는 저자가 원하는 수준으로 환경 보호를 할 수 없다. 또한 이 모든 책임을 왜 개인에게 돌리는지 모르겠다. 마치 국민들이 과소비하여 IMF 외환위기가 왔다고 이야기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보는 듯했다. 근본적으로 인류가 에너지와 자원을 과소비하고 있는 이유는 현대사회가 자본주의 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여기에 반하는 삶을 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근래에 시행된 '카페 일회용품 금지 제도'처럼 차다리 국가가 나서서 체제를 바꾸고 기업의 변화를 촉구하는 편이 현실성 있는 방법 아닐까?
OECD 국가의 국민들이 솔선수범하여 절약해야 한다는 주장도 짜증 났다. 솔선수범하여 '절약'해야 할 국가는 산업화로 인한 이득을 계속 누려온 서유럽 국과 들과 미국이다. 이미 자연파괴를 통한 기술 발전으로 부를 쌓은 국가들과 한국, 멕시코, 칠레, 터키 같이 이제 조금 기술 발전을 하려는 국가들을 같은 선상에 세우는 것이 과연 공평한가? 선진국들이야 이젠 자연을 파괴하는 생산과 노동은 타국에 맡길 수 있으니 팔자 좋은 소리 하는 것이 아닌가? '미국'시민이자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호프 자렌이 자연 파괴 책임을 34개 OECD 국가에 1/34 하는 듯하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도 서구권 국가들이 압도적으로 잘 사는데, 다른 나라들이 과연 성장을 포기하고 자연보호를 하려고 할까? 정말 자연을 살리고 싶다면 서구권 국가들이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고 먼저 환경보호를 하여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다른 나라들도 순차적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쪽으로 변화할 것이다.
그래도 이 책에서 배운 생활의 지혜가 있다. 전구, TV 그리고 컴퓨터에 사용되는 전력 양은 비교적 적다고 한다. 이제 어머니가 컴퓨터 전원을 끄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하시면 과학적으로 "어머니 샤워 온도를 1도 낮추시는 게 훨씬 전기 절약이 많이 됩니다"라고 반박할 수 있다. 환경보호는 잘 모르겠고 이런 유용한 지식을 배웠으니 전기를 덜 쓰는 컴퓨터로 유튜브나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