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섬, 장봉도가 빛나는 까닭은

장봉도욕쟁이 할머니 칼국수, 공정업님

by 여행하는나무


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우리 나라는 3,348개의 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섬은 특별한 보물을 간직한 듯 언제나 신비롭고 새롭다. 그래서 섬 여행을 계획하면 기대감을 먼저 갖는다. 지금까지 60개 가까운 섬을 여행했다.


장봉도에는 어떤 특별함이 숨어 있을까?

KakaoTalk_20250615_215945693.jpg?type=w773 장봉도를 오가는 배

장봉도는 인천 영종도 삼목항에서 배로 40분이면 닿을 수 있다. 한 시간에 한 대씩 출발하는 배가 있어서 손쉽게 갈 수 있다. 인천 시민이라면 배삯이 편도 1,500원, 타시도민들은 80%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 가능하다. 장봉도 선착장에 내리면 다소곳이 앉아있는 인어상을 만날 수 있다.


KakaoTalk_20250615_215011888.jpg?type=w773 장봉도 선착장 인어상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01.jpg?type=w773

♥ 산과 바다를 품은 트래킹길


산길과 바닷길이 연결된 해안 트래킹 코스도 잘 조성되어 산과 바다를 조망하며 가볍게 걷기에 좋다. 초록이 푸르른 숲길은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버스 타고 건어장 직전에서 내려서 윤옥골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서 해안 길로 나가면 아주 특별한 바위들을 만날 수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이 만든 멋진 기암괴석들이 이어져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퇴적된 단단하고 큰 바위가 휘어지고 굽어지고 끊어져서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변성 퇴적암으로 그 대단한 위용이 장관이다. 힘센 거인이 강한 힘으로 누르고 구부린 것 같은 모양새가 머나먼 시간 속으로 이끌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KakaoTalk_20250615_215727484.jpg?type=w386
KakaoTalk_20250615_220044890_01.jpg?type=w3840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16.jpg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18.jpg


♥ 공룡 해식동굴

공룡 해식동굴은 파도와 바람이 만든 예술 작품이다.

동굴 안에서 바다를 보면 공룡 모양을 닮았다. 멋진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라고 소문이 나서 평일임에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물때를 잘 맞춰서 간조 시간에 방문하면 좋다. (위치 : 장봉리 산 154-2)

KakaoTalk_20250620_205933114.jpg 공룡 모양 해식동굴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13.jpg?type=w773


♥ 삶의 이야기가 있는 장봉도 맛집

장봉도의 또 다른 보물은 욕쟁이 할머니 칼국수집이다.

선착장에서 내려서 오른쪽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보인다.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03.jpg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04.jpg
욕쟁이할머니 칼국수

예전에 남편이 혼자 장봉도 여행을 왔다가 가게 문 앞에 걸린 히말라야 사진에 이끌려 들어간 인연으로 알게 된 멋쟁이 할머니다. 할머니의 시 모음집을 주면서 다음에 함께 가자는 약속을 이번에 지킨 것이다.

허름하고 투박한 가게 안에는 벽면 가득 세계를 여행한 사진과 손글씨로 직접 쓴 할머니의 시가 가득하다. 방문한 여행객들이 쓴 소감 글도 있다.

놀라운 모습에 연신 감탄하면서 사진을 찍고, 시를 읽어보았다. 삶이 곧 시였다. 조금은 서툴고 어설프지만 삶의 진실이 묻어있다.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05.jpg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12.jpg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08.jpg
욕쟁이 할머니의 인생시와 소감글


산낙지와 백합 칼국수를 주문하여 먹으며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꿈틀꿈틀 싱싱한 산낙지와 독특한 맛을 내는 백합 칼국수는 75년 인생이 담겨서인지, 깊이 있는 맛이 일품이었다.

KakaoTalk_20250615_233946803.jpg 산낙지무침


보츠와나, 탄자니아, 남아공, 나미비아, 튀니지, 알제리, 짐바브웨, 잠비아,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모로코,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멕시코, 쿠바 등 이름만 들어도 낯설고 머나먼 나라들, 전세계 30여개국을 혼자서 한걸음 한걸음 다녔다고 한다. 나도 가보고 싶은 나라들이다. 혼자서 자유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보니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돈이 많아서, 영어를 잘 해서, 시간이 남아서 그렇게 여행을 떠난 게 아니었다. 장사해서 번 돈으로, 때로는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서까지 낯선 나라에서 한 달 살이를 하기도 했다. 72세 겨울에는 네팔에 40일간 머무르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300m 도전에 성공하기도 했다.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06.jpg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도전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오지만 찾아다닌 여행길, 사진들마다 할머니의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었다.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10.jpg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09.jpg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07.jpg
KakaoTalk_20250615_215011888_11.jpg
할머니가 여행한 30여 개국 사진

남편과 딸을 일찍 보내고 힘들고 팍팍한 섬 살이를 하면서 죽을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갱년기 우울증까지 겹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시작한 여행, 죽으려고, 죽음을 각오하고 다닌 길이었다. 그 여행길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아픔이 조금씩 옅어지고, 삶의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배웠다. 고행 같은 여행을 하면서 삶과 화해하고 자신의 아픈 마음을 다독이며 남은 생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일기를 쓰고, 시를 쓰면서 삶의 나이테를 단단하게 새긴 것이다.


젊은 사람들도 쉽지 않은 나 홀로 오지 세계 여행이라니, 정말 대단한 강단이다. 그냥 보기에는 시골 할머니 같으나, 온몸에서 배어 나오는 단단한 자신감과 겸손함이 은은한 빛이 되어 반짝인다. 그저 놀랍고 감탄스러울 뿐이다. 욕쟁이 할머니라니, 멋쟁이 시인이라고 불러야 할 듯하다. 장봉도에서 참 아름다운 사람을 만났다.

KakaoTalk_20250615_215945693_01.jpg?type=w773 욕쟁이할머니 칼국수집을 운영하는 공정업할머니


인생은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에 향기를 남기는 것임을 할머니에게서 배운다.

나도 덩달아 시인이 되어 할머니의 삶을 노래하고 있으니...



사람의 향기


산낙지, 소라, 백합, 바지락

바다가 내어준 싱싱한 재료 위에

맵고 짜고 달큰한 양념을 더해

투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한 상을 내온다.

장봉도 욕쟁이할머니의 칼국수.


오래전 가슴에 묻은 남편과 딸.

고달픈 세상살이 속에

그리움과 미안함은 마음속 돌덩이가 되어

떠나지 않고는 숨 쉴 수도 없던 날들.

예순 넘어 전 세계의 오지를 홀로 헤맸다.

나미비아 사막에서 히말라야 4300미터 여정까지

집 안 가득 시와 사진으로 펼쳐진다.


힘겨운 발걸음보다 더 무거웠던 마음,

도망치듯 떠난 길에도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흔들림 없이 오래된 풍경들 속에서

비로소 알았다.

살아있기에 이 모든 것이 찬란하다는 것을.

길 위에서 배웠다.


"내려놓아라,

살아라,

사랑하라."


떠나서야 비로소 돌아온 인생의 원점.

묵묵히 건네는 그녀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가슴을 울린다.


장봉도,

그 섬이 이토록 빛나는 이유는

바로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네팔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