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에서 환상 여행하기
이스탄불의 활기찬 소음을 뒤로하고 이른 새벽 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숙소에서 정성껏 챙겨준 커다란 샌드위치를 챙겼다. 1시간 조금 넘어서 도착한 카파도키아 공항은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작고 소박한 모습이었다. 다행히 날씨는 맑았고 공기는 생각보다 포근했다. 숙소로 향하는 셔틀버스 창밖으로 풍경이 점차 낯설어지더니, 이윽고 지구가 아닌 어느 먼 행성에 불시착한 듯한 기묘한 바위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괴레메 마을 자체도 거대한 바위의 일부를 벽으로 삼거나 돔형으로 깎아 만든 동굴 호텔들이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겼다.
우리가 묵은 '모자익 케이브 호텔'은 지대가 높아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짐을 풀자마자 카파도키아의 속살을 만나기 위해 트레킹에 나섰다. 원추형 바위들이 드넓은 대지에 끝없이 펼쳐져 있어, 카메라가 어디를 향하든 예술적인 작품이 되고 근사한 풍경이 담겼다. 오랜 세월 바람과 시간이 빚어낸 천혜의 작품을 보고 있자니, 인간의 상상력은 자연 앞에 얼마나 초라한지 실감하게 된다. 긴 이동으로 쌓인 피로마저 찬란한 풍경 속에 씻겨 내려갔다.
먼저 찾은 '로켓 밸리'에는 이름처럼 로켓 모양의 바위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었다. 수차례의 화산 폭발로 쌓인 화산재와 그 위를 덮은 용암층이 반복적으로 쌓이고, 침식에 약한 화산 응회암 층이 깎여나가며 만들어진 대자연의 조각품이었다. 직접 손을 대보니 단단하지 않은 응회암은 손끝에서 모래알이 되어 떨어졌다. 이 연약한 흙들이 모여 이토록 거대한 장관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이어지는 '제미 밸리'는 깊은 계곡을 따라 키 큰 플라타너스들이 자라는 평온한 곳이었다. 평평한 땅에는 과일나무가 자라고 농사지은 흔적도 보였다. 특이하게도 나무마다 우리나라 강원도 깊은 산에서나 볼 법한 '겨우살이'가 잔뜩 매달려 있었다. 몸에 좋은 약재로 귀하게 대접받는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는 그저 평범한 숲의 일부로 자라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음, 카파도키아에서 겨우살이 차를 팔아봐?'
계곡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괴레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넓은 평지에 다다랐다. 열기구를 띄우기에도 안성맞춤인 그곳에서 바라본 카파도키아는 그야말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천연 예술품이었다. 석양이 지기 시작하자 붉게 물든 바위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려는 관광객들의 설렘이 가득했다. 반나절 만에 2만 보를 걸으며 직접 마주한 자연의 규모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밤이 찾아오자 괴레메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 바위 틈틈이 자리 잡은 가게와 호텔마다 화려한 조명이 켜졌고,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까지 더해져 마을 전체가 환상적인 야경으로 변모했다. 2박 3일이라는 시간은 이 거대하고 신비로운 땅을 다 알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적어도 일주일은 머물러야 이 대지의 속삭임을 다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카파도키아의 깊은 밤 속으로 스며들었다.
12월 25일, 성탄절이다. 이 특별한 날의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해가 뜨기도 전부터 서둘러 몸을 깨웠다. 카파도키아의 상징과도 같은 열기구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서였다. 우리 숙소보다 지대가 더 높은 호텔 옥상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어스름한 새벽하늘 위로 하나둘 불꽃이 튀더니, 이내 100개가 넘는 열기구들이 도심 위로 둥실 떠올랐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기상 상황 때문에 나흘 만에 비행 허가가 떨어진 덕분에, 오늘만 무려 150구의 열기구가 하늘을 메웠다고 한다. 거대한 바구니를 단 커다란 풍선부터 앙증맞은 작은 것까지, 제각각의 높이에서 떠다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열기구들이 주로 도심 쪽에 몰려 있는 것을 보며 ‘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계곡의 풍경은 얼마나 더 경이로울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모처럼 먼 길을 왔으니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직접 열기구에 올라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비용에 비해 조망이 아주 선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현실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동상이몽의 순간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땐 꼭 저 열기구에 몸을 싣고 말리라’는 작은 다짐을 새겼다.
거친 기암괴석의 능선과 그 위를 유영하는 오색빛깔 열기구들이 만든 풍경은 특별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오직 카파도키아에서만 가능한 성탄절의 선물이었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터져 나오는 감탄사 속에는 그 멋진 풍경에 대한 경의와 함께, 하늘 위 사람들을 향한 나의 숨길 수 없는 부러움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열기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우리는 개인 가이드 무스타파와 함께 소안르(Soğanlı) 계곡으로 향했다. 나이 지긋하고 친절한 무스타파는 능숙하지 않은 영어 대신 구글 번역기를 통해 터키어를 한국어로 들려주며 훌륭한 길동무가 되어주었다. 괴레메에서 차로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소안르는 겨울철 여행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그야말로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었다. 괴레메가 화려하고 들뜬 축제의 장이라면, 소안르는 카파도키아의 옛 모습을 정갈하게 간직한 평온한 안식처였다.
오가는 사람 한 명 없는 협곡에서 우리 부부만을 위한 오붓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중간중간 흐르는 개울물을 따라 30분쯤 걸어 들어가자, 병풍처럼 깎아지른 절벽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길이 좁아질수록 양옆의 바위산은 하늘 높이 치솟아 마치 거대한 문처럼 우리를 맞이했다. 문 하나를 열면 또 다른 무늬의 문이 나타나는 환상적인 공간. 거인이 손으로 부드럽게 빚어놓은 듯한 둥근 침식 지형은 자연이라는 예술가가 부린 대담한 솜씨였다. 좁은 바위틈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과 그 끝에 걸린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이 거대한 자연의 전시장을 독점하는 호사를 누렸다.
높다란 바위벽 곳곳에는 네모난 구멍들이 가득했다. 과거 이곳 사람들은 비둘기를 기르며 그 배설물을 거름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주인들은 떠나고 없지만, 적막을 깨는 비둘기들의 구구거리는 소리와 날갯짓만이 이곳이 여전히 생명의 땅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소안르는 9세기에서 13세기 사이, 박해를 피해 숨어든 기독교인들의 거주지이기도 했다. 협곡을 따라 흩어진 100여 개의 동굴 교회들은 그 자체로 신앙의 전시장이다. 바위를 깎아 완벽한 돔을 만든 교회 내부에는 강렬한 색채의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었다. 비록 세월의 풍파와 낙서로 눈과 얼굴 부위가 훼손되었지만, 척박한 동굴 속에서도 예술과 신앙을 꽃피웠던 이들의 의지는 가릴 수 없었다. 그 흔적들을 마주하니 숭고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트레킹을 마치고 마을 입구에서 터키 전통 식사를 즐겼다. 투박하지만 푸짐한 빵을 치즈와 매콤한 소스에 찍어 먹으며 소안르 할머니들이 만든 알록달록한 헝겊 인형도 구경했다. 이 고요하고 충만했던 개인 투어의 만족도가 너무 높았던 탓일까, 이튿날 참여한 다국적 '그린 투어'는 패키지여행처럼 잠깐씩 점찍듯 지나갔다. 주얼리와 토산품 판매하는 쇼핑센터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기도 하여 못내 아쉬웠다. 다음에 다시 오면 개인 가이드를 고용하여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해서 돌아보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
지하 8층 규모의 데린쿠유 지하도시는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사람들의 지난한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다. 지하 8층까지 길을 내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미로처럼 지하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고 정교하게 공간들이 나누어져 있다. 단순한 도구나 사람 손으로 일일이 파고 다지고 다듬었을 공간을 만져본다. 이곳에서 살았을 사람들의 손길이 느껴진다. 내부에는 교회도 있고 부엌도 있고 와인을 저장하는 곳도 있다. 공기가 통하는 구멍도 있고, 1층에는 동물을 기르는 곳도 있었다. 그 시절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지 잘 상상이 되지 않지만 그들이 남긴 흔적을 보면 그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조금은 떠올릴 수 있다. 유명한 관광지이고 투어 하는 팀이 많아서 오랫동안 차분히 지켜보지 못하고 한 줄로 서서 들어갔다 나왔다.
흐린 날씨 속에 단체로 움직이며 멀리서 바라만 본 으흘라라 계곡보다는, 무스타파와 함께 두 발로 구석구석 누볐던 소안르의 시간이 훨씬 값지게 느껴졌다.
카파도키아의 마지막 밤, 우리는 큰맘 먹고 한식당을 찾았다. 점심을 숙소 샌드위치로 때우며 아낀 보람도 없이, 메뉴판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김치찌개 한 그릇에 2만 5천 원, 떡볶이는 무려 3만 원이라니! 헉 소리가 절로 났지만, 이역만리에서 마주한 비빔밥과 찌개 맛은 의외로 정직하고 한국적이었다. 사악한 가격에 놀란 가슴을 제대로 된 김치 맛으로 달래며, 그렇게 카파도키아에서의 잊지 못할 2박 3일 여정을 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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