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뚜벅뚜벅! 튀르키예 7박9일 자유여행 3

파묵칼레, 히에라폴리스

by 여행하는나무


파묵칼레, 순백의 목화 성과 성스러운 도시의 유산


저녁 8시 20분, 카파도키아를 떠나 데니즐리로 향하는 야간 버스에 몸을 실었다. 침대형 좌석을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우리나라 우등버스보다 조금 못한 수준이라 편안한 잠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2시간마다 정차하며 간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튀르키예 버스만의 독특한 서비스 속에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새벽 6시, 어느덧 데니즐리에 도착했다. 터미널 화장실조차 요금을 받는 야박함에 조금 놀라웠다. 너무 이른 도착에 작은 규모의 호텔에 빈 방이 없단다. 난감하던 순간에 세탁실 소파에서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 공간에서 단잠을 청하며 여독을 달랬다.

야간 버스 간식

아침 9시,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파묵칼레(Pamukkale)로 향했다. 기기묘묘한 바위성같은 카파도키아의 멋진 풍광과는 다르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목화 성, 파묵칼레가 우리를 맞이했다. ‘목화 성’이라는 이름처럼 눈앞에 펼쳐진 하얀 바위산은 환상적인 빛을 내뿜고 있었다. 석회암 보호를 위해 신발을 벗어야 했는데, 겨울날 맨발에 닿는 바위의 첫 느낌은 차가웠다. 하지만 층층이 쌓인 다랑이논 형태의 석회 단구를 따라 올라가니 따뜻한 온천수가 발을 녹여주었다. 35도 안팎의 온천수는 찬 공기 속에서 더욱 포근하게 느껴졌고, 몽글몽글한 무늬의 단단한 석회암 지형은 자연의 신비로움을 온몸으로 전해왔다. 햇살이 비치자 석회층은 더욱 눈부시게 빛났고, 그 풍경 속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파묵칼레 석회단구

파묵칼레는 탄산칼슘 속에서 이산화탄소가 온천물에 석회암이 녹으면서 만들어진 특이한 지역이다. 여름철이나 성수기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테지만 겨울이라 그런지 한산한 편이었다. 언덕 정상에 올라 신발을 신자 지압을 받은 듯 발바닥이 화끈거리며 시원했다.

파묵칼레 호수와 관광객들

눈앞에는 ‘성스러운 도시’라 불리는 고대 유적지 히에라폴리스(Hierapolis)가 광활하게 펼쳐졌다. 한때 15만 명이 거주했던 이 온천 휴양 도시는 이제 폐허가 된 채 초록 풀밭으로 남았지만, 1만 5천 명을 수용하던 원형 극장의 웅장함만은 여전했다. 극장 계단에 앉아 있으니 찬란했던 옛 로마 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다. 웃고 떠들며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즐거운 환호가 귀에 울린다. 여러 차례의 지진을 견디면서 이런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아고라 광장, 교회, 목욕탕 등 그 시절 위엄 있고 찬란했을 시설은 이제 기둥과 돌문 일부만이 흔적으로 남아 세월의 무게를 말해준다. 히에라폴리스는 기독교 성지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의 선교 이후 빌립보가 순교한 곳이다. 언덕 위에는 빌립보 기념 교회가 있는데, 우리는 그곳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히에라폴리스 원형극장


대욕장은 현재 고고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둥근 돔 천장과 단단한 석조 구조가 당시의 찬란한 문화를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신과 영웅을 조각한 조각상들, 얼굴과 팔다리가 훼손된 채 남아 있는 부조들, 생활용품과 장식품들…. 수많은 왕조의 흥망성쇠가 이 공간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조각상들은 코가 깨지고 팔다리가 훼손된 채였지만, 그 속에 깃든 고대인들의 예술혼은 여전히 강렬했다.

고고학 박물관 유물들

우리는 남문을 시작으로 원형 극장을 지나 북쪽의 네크로폴리스(Necropolis)까지 묵묵히 걸었다. 셔틀을 타고 빠르게 지나치는 다른 패키지 관광객들과 달리, 우리는 ‘죽은 자들의 도시’라 불리는 거대한 공동묘지 길을 두 발로 누볐다. 온천수의 치유 능력을 믿고 몰려들었다가 결국 이곳에 잠든 수많은 이들의 석관과 돌무덤이 2,000년 세월을 견디며 길게 이어져 있었다. 풀밭에 묻힌 듯 피어난 냉이와 달래가 겨울인데도 싱그러웠다.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땅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영원한 안식처였으리라.


네크로폴리스

히에라폴리스 언덕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평화로웠다. 마을 주변의 드넓은 평야에서는 목화와 밀, 보리, 옥수수, 토마토, 고추 등을 재배하는데, 겨울이라 황량한 들판만 보인다. 오후 햇살이 더 넉넉하게 비춰서 올라올 때와는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우리가 지나온 파묵칼레의 하얀 물줄기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오후 5시, 다시 하얀 석회길을 걸어 내려와 숙소에 도착하니 오늘도 어김없이 2만 보를 채웠다. 하지만 신비로운 온천 지압 덕분인지 도심을 걸을 때보다 발걸음은 훨씬 가벼웠다.

언덕에서 바라본 들판

패키지여행이었다면 정해진 시간 내에 발만 살짝 담그고 떠났겠지만, 자유여행자였던 우리는 이 공간에 온전히 머물며 역사의 숨결과 자연의 온기를 충분히 누렸다. 원형극장에서 아름다운 노을 구경을 하고 내려오다가 발이 시려 고생했다는 다른 여행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절한 햇살 아래 넉넉한 풍경을 즐긴 우리의 운 좋은 하루에 감사했다.


다시 이스탄불, 노을빛 모스크에 담긴 마지막 인사


12월 28일 아침 8시, 파묵칼레의 하얀 설원을 뒤로하고 데니즐리 공항으로 향했다. 국내선을 타고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길, 문득 기다림 또한 여행의 중요한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국 수속을 기다리고, 비행기의 이륙을 기다리고, 짐이 나오길 기다리는 그 모든 시간조차 이동이라는 과정 속에 포함된 여행의 순간들이었다.

오후 2시 40분, 다시 돌아온 이스탄불은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회색빛 바다를 품고 있었다.

두 번째 이스탄불 숙소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펜션형 호텔이었다. 좁은 공간에 간판도 제대로 없는 숙소지만, 취사가 가능해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과 누룽지를 끓여 먹으며 집 같은 편안함을 누렸다. 다행히 늦은 오후가 되자 비가 그치고 하늘이 열렸다. 우리는 곧장 페리를 타고 보스포루스 해협의 야경 속으로 뛰어들었다. 오르타쾨이의 화려한 노점들과 쿰피르 냄새, 그리고 바닷물에 반사되는 모스크의 불빛은 이스탄불의 밤을 찬란하게 수놓고 있었다.

이스탄불 야경과 오르타쾨이

이튿날 오전, 이스탄불의 심장이라 불리는 '그랜드 바자르'를 찾았다. 길을 잃기 딱 좋을 만큼 방대한 규모의 시장 안에는 주얼리, 향신료, 양탄자, 도자기 가게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호객꾼들의 활기찬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빛에 따라 색이 변한다는 보석 팔찌를 샀다가 결함을 발견하고 환불받는 소소한 소동도 있었지만, 주인은 흔쾌히 환불해 주었다. 여행자의 가벼운 지갑보다 사람 사이의 신뢰가 먼저라는 듯한 여유가 느껴졌다.

그랜드 바자르 풍경


오후에는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아시아 지구의 높은 언덕, 참르자 모스크(Çamlıça Mosque)로 향했다. 거대한 돔과 부드러운 곡선이 인상적인 이 모스크는 이스탄불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서서히 붉은빛이 퍼지며 석양이 내려앉자, 모스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로운 빛으로 물들었다. 모스크 내부로 들어서니 기도를 올리는 성인들과 그 사이를 해맑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열린 이 공간의 포용력이 이슬람이 가진 진정한 멋이 아닐까 생각했다.

참르자 모스크와 석양

모처럼 맑게 갠 이스탄불의 하늘 위로 환한 반달이 떠올랐다. 내일이면 추억이 많은 이곳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 처음엔 멀고 낯선 나라라는 생각에 '자유여행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건강하게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튀르키예는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풍경과 고대 역사의 숨결이 도처에 살아 숨 쉬는 놀라운 땅이었다.

7박 9일, 자연과 인간이 빚어낸 천혜의 유적지를 두 발로 정직하게 걸어온 시간들. 이 거대한 땅의 극히 일부분만을 보았을 뿐이지만, 그 기억은 내 삶의 소중한 양분이 될 것이다. 언젠가 다시 이 길 위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튀르키예의 또 다른 속살을 만날 날을 기약해 본다.


광장에서 본 블루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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