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 쥘리앵 [완벽한 아이]
[완벽한 아이] 모드 쥘리앵. 윤진 옮김. 복복서가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소설보다도 더 악랄하고 괴악한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이라니, 정말 믿기 어렵다.
모드 쥘리앵의 『완벽한 아이』(원제 『철책 뒤에서』)는 한 포식자가 자신의 가스라이팅으로 누군가의 영혼과 삶을 처절하게 짓밟고 조종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어린 소녀가 그런 심리적 지배를 어떻게 극복해 내는지를 그린 인간 승리의 기록이기도 하다. 만약 소설 속 꾸며낸 이야기였다면 차라리 다행일 텐데, 20세기 프랑스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니 얼마나 경악스러운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어린아이가 그 모든 고통을 겪어야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또 어떻게 그 높고 두꺼운 벽을 뚫고 나올 수 있었을까?
도대체 그 아이 안에 어떤 힘이 있었던 걸까?
모드 쥘리앵은 15년 동안 철책 안에 갇힌 채 몸과 마음으로 겪은 비정상적인 학대를 담담히 회상한다. 책을 읽는 내내 부모의 광기와 폭압에 놀라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끔찍한 학대가 너무 생생해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나는 책 뒤쪽을 먼저 펼쳐 그녀가 자유를 얻었음을 확인한 후에야 안심이 되어 이어서 읽을 수 있었다.
『완벽한 아이』를 읽으면서 나는 한 인간이 겪은 극단적인 심리적 폭력과 통제,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과 회복의 드라마에 깊이 감탄했다. 이 책은 단순한 피해자의 고통 기록이 아니다. ‘식인귀’라 불릴 만큼 잔혹했던 아버지의 가스라이팅과 지배에 맞서 어린 소녀 모드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켜내고, 끝내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찾아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버지 루이 디디에는 부유하고,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으며, 세상을 혐오한다. 가난한 광부의 막내딸 6살 자닌을 데려와 기숙학교를 거쳐 대학교육까지 받도록 한다. 자닌의 나이가 28살이 되자, 그녀와 결혼하고 원하는 딸을 낳는다. 그는 3인 가족 사교집단의 교주가 되어 “위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초인을 만들겠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어린 딸을 실험대에 올린다.
모드가 체험한 심리적 지배의 양상은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잔인하고 치밀했다. 아버지는 ‘초인을 만들겠다’는 왜곡된 신념 아래, 사랑 대신 공포와 폭력, 최면과 세뇌를 휘둘렀다. 밤마다 쥐가 들끓는 지하실에 가둬 죽음을 명상하게 하고, 전기 울타리를 맨손으로 잡게 하며 강철 같은 존재로 키우려 했다. 어린아이에게 지속적으로 독주를 마시게 하며 인내심을 시험하는 ‘훈련’은 상상조차 어려운 폭압이었다. 이런 아버지의 광기 어린 통제는 모드의 내면세계를 산산이 부수었다. 노동과 학습으로 이루어진 체계적인 일과표는 특공대 수준이었고, 요구는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딸을 진짜 위험에서 지켜주지 못했다. 전능을 자처했으나 공허했다. 거대한 언어 뒤에 숨은 불안과 망상만이 있을 뿐이다.
어머니 자닌은 공범처럼 보이지만, 실은 또 다른 피해자다. 어릴 적부터 길들여진 사람은 벗어나는 법을 모른다.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떠나지 못하고, 딸을 지켜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질투하고 원망한다. 책머리에 “식인귀의 첫 희생자였던 나의 어머니에게.”라는 헌사의 의미가 정말 와닿았다.
아버지를 향한 모드의 감정은 사랑과 두려움 사이에서 매우 혼란스럽다. 두려워하면서도 숭배하고, 미워하면서도 인정받고 싶어 한다.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죄책감에 스스로를 벌한다. 이것이 가스라이팅의 가장 무서운 지점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기준을 내면화하는 순간, 감옥은 마음속으로 옮겨진다.
그럼에도 모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작은 빛을 놓지 않았고, 내면의 ‘비밀 창고’에서 문학과 음악을 통해 자신을 지켰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속 라스콜니코프, 알렉산드로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 당테스는 모드가 희망을 꿈꾸고 용기를 내게 만든 ‘내면의 영웅’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문학의 힘으로 모드는 자신을 재구성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며 내면의 상처를 스스로 어루만졌다.
또한 진정한 사랑과 위안이 된 동물들과의 교감, 그리고 삶 앞에서 아름다움을 찾도록 이끌어 준 몰랭 선생님 같은 교육자의 존재는 모드에게 큰 힘이 되었다. 선생님은 아버지의 폭력과는 정반대 편에서 인간성의 존엄과 선의, 경이로움을 증명하는 분이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과 손길은 모드가 ‘완벽한 아이’가 아닌, 그저 평범하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도왔다.
15년간의 감금 생활이 주는 고통보다도 ‘아버지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훨씬 더 어려웠다고 말하는 모드. 오랜 자기 성찰과 힘겨운 심리 치료를 거친 후에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모드는 이제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어, 자신과 같은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돕는다. 한때 지배당했던 사람이 이제는 지배당하는 이들을 돕는 심리치료사가 된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강인하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감동적인 증언이다.
“아버지는 나를 굴복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그 시련들이 나를 부서지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그녀의 고백은 우리가 연대와 사랑으로 경계해야 할 심리적 포식자의 위험과, 그럼에도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믿을 수 없는 회복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시련을 딛고 일어서는 용기와 인간 본연의 존엄성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모드 쥘리앵의 삶과 글은 끝없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한 줄기 희망 같았다.
시대와 공간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닿는 강렬한 울림을 준 책의 여운은 길게 남을 것 같다.
<책 속으로>
동물들이 우리에게 기쁨을 가르쳐주기도 하는 걸까? 혼란스러운 중에도 나에게는 그런 커다란 행복의 샘이 있다. 놀라운 행운이다. 아르튀르를 보러 간다는 생각만으로 내 가슴은 애정과 즐거움에 부풀어 오른다. 혹은 아르튀르 곁을 지나간다는, 재빠르게 지나가며 행복에 젖은 아르투르의 눈길을 받는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렇다. 밤마다 나는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참을성 있게 버티던 아르투르의 흔들림 없는 표정을 떠올린다 나는 아르튀르를 사랑하고, 린다를 사랑한다. 린다는 아르튀르를 사랑하고, 아르튀르는 린다를 사랑한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강하고 아름답다. 물론 힘겹기는 하다. 그래도 함께하는 사랑의 순간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견뎌낼 수 있다. 83쪽
나는 그레고르다. 하지만 따라가야 할 모델을, 본보기를, 이상을 찾았다. 당테스[몽테 크리스트백작]가 나에게 자유의 길을 보여준다. 밤에 차가운 수돗물을 아주 가늘게 흘러나오도록 틀어놓고 몰래 머리를 감는 동안 나는 그레고르를 떠나 당테스가 있는 곳으로 나아간다. 카트랭 공장의 노동자들이 단호한 걸음으로 일터로 향하고 어린애들이 거리에서 웃고 떠들며 학교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당테스에게 다가간다. 삶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하다. 언제나 해결책이 있다. 기필코 그것을 찾아내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137쪽
나는 구원의 이미지들, 강하고 매혹적인 주인공들로부터 힘을 얻는다. 나의 암흑 속에 희미한 빛을 밝혀줄 독서가 점점 더 필요해진다. 일 분이라도 틈이 나면 나는 곧바로 아버지의 서가를 뒤진다. 156쪽
나는 충격에 빠져 읽고 또 읽는다. 늘 숨어서, 늘 몇 페이지씩 읽는다. 나는 서서히 깨닫게 된다. 내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흔든 그 주인공은 바로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둘은 똑같이 다른 사람들을, 세상을, 관습을 밀어낸다. 똑같이 광기 상태를, 거창한 말들을, 가혹함을 좋아한다. 어쩌면 아버지 역시 굳은 외관 아래 아직까지 벌어져 있는 상처가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 스스로 행하고 어머니와 나에게도 강요하는 것, 그 모두가, 아버지가 우리를 가두어놓은 이 세상 전부가 사실은 탁월한 통찰력이 아니라 은밀한 고통에서 나온 게 아닐까?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을 때마다 결말에 담긴 냉혹한 교훈이 나를 죄어온다.
"그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언젠가 자신의 광기를 깨닫는 날이 온다 해도,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사람이야. 도망쳐!" 159쪽
나는 경이로울 만큼 행복하다.
내가 있는 곳은 수용소가 아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연주하지 않는다. 나는 살아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다른 연주자들, 그리고 다른 인간들과 함께 흥에 젖기 위해 연주한다.
나는 내 부모의 집을 나왔다. 정말로 나왔다. 312쪽
포식자는 오로지 자신의 정신세계, 믿음, 욕구, 욕망만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식인귀와 같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단이거나 장애물일 뿐이다. 포식자가 먹잇감을 만나면 우선 지배를 위한 함정을 만든다. 무엇보다 상대에게 자신과의 관계가 절대적 사랑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런 뒤 상대를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런 가치를 가질 수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로 다루면서 서서히 소유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포식자가 말하는 존재로 인지하게 되는 순간 함정을 벗어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때부터는 희생자의 파괴가 순식간에 진행된다. 포식자는 육체적인 면과 지적인 면에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사회적인 면에서, 그야말로 모든 측면에서 철저하게 희생자를 파괴한다. 320쪽
몰랭 선생님은 어디서나 아름다움을 찾고 삶 앞에서 늘 경이를 느끼는, 무한한 선의를 지닌 분이었다. 선생님은 내 아버지와 정반대 편에 선, 아버지가 틀렸음을 말해주는 증거였다. 인간들은 훌륭하다. 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