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 문학동네, 2025.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 가곤 한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가득 찬 책장에서 내가 읽은 책은 찾기 힘들다. 하루에도 수백 권씩 출간된다고 하니,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과정을 거쳤든 귀한 인연 중의 인연이다.
내가 속한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1월의 책은 김애란 작가의 [안녕이라 그랬어]이다. "2025년 소설가들이 사랑하는 소설 1위"로 선정된 작품답게 김애란의 소설은 지역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누구에게나 있음 직한 이야기,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 가까운 일화들이라 가볍게 술술 읽었다. 하지만 마음은 무겁고 불편했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발표했던 7편의 작품을 모은 단편집, [안녕이라 그랬어]는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30대 40대 가난한 소시민들의 일상과 그 안에서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마음(감정)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소재와 배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돈과 이웃과 나, 관계와 소통의 방식‘이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현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시대에서 돈은 곧 계층 혹은 계급과 연결된다. 돈의 유무에 따라서 사용자가 되고 피고용자가 되며 그 사이에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계층이 형성된다.
경제적 인간이 중심축이 된 현대 사회에서 경쟁에서 밀린 개인들은 한없이 무력하고 흔들린다. 거창한 경제 논리나 사회적인 함의가 아니라 내 안에서 피부로 와닿는 미묘한 지점에서 감정적으로 흔들리고 갈등이 생긴다. 이 소설은 그 개인들 속으로 들어가 돈이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 삶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세심하게 보여준다. 돈을 둘러싸고 삶과 관계 속의 소통, 계층과 감정의 다층적 풍경을 어쩌면 이리 세심하고 깊이 있게 다루었는지, 내가 애써 피하려 했던 진실의 한 면을 눈앞에 드러내 보여준다. 그래서 소설 속 그녀의 이야기, 그의 이야기는 곧 내 주변의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가 된다.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40대 부부, 새로 입주해서 한 달 넘게 비싼 자재를 써서 집을 고치는 신혼부부를 보며 질투를 느끼고, 연민으로 바라봤던 제자 시우의 집이 새 아파트로 이사한다는 소식을 듣고 내 마음이 달라진다. 좋은 이웃이 되고자 했던 부부는 나만 뒤처진 것 같고 나만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서글픈 현실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좋은 이웃)
코로나19 시기, 연극배우인 이연은 후배 성민의 권유로 의사, 변호사 등 전문가들이 모인 부유층의 홈 파티에 초대된다.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은근히 자신들의 우월감을 드러낸다. 대화에서 겉도는 이연은 계급 간 긴장과 소외감을 느끼며 내적 갈등을 겪는다. (홈 파티)
주인공 기진은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여행 책방을 열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늙고 병든 엄마 선주의 병원 동행을 하면서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 속에 쌓인,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공통의 어려움과 불안을 감지한다. (레몬 케이크)
표제작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인공 은미는 병든 어머니를 돌보느라 직장을 그만두고 연인과도 자연스레 멀어진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영어 원격 과외를 받던 중, 옛 연인이 들려준 팝송 가사(러브 허츠)에서 ‘암 영(I'm young)’을 한국어 ‘안녕’으로 잘못 이해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안녕이라는 말의 의미와 과거의 관계를 되새기는 은미가 원격 화상 앱에서 만난 외국인들과 소통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는 모습은 짠하고 안쓰럽다.
이웃과 연결되지 못하고 고립되고 단절된 개인들, 그 개인들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는 무겁고 어렵기만 한다. 늙고 아픈 부모를 돌보면서 자신의 불안한 미래도 걱정해야 한다. (레몬 케이크, 안녕이라 그랬어). 부동산 가격 폭등, 전세 사기 등으로 삶의 기본적인 생존과 안전권마저 위태롭다. (좋은 이웃, 빗방울처럼)
신형철 평론가는 문학이 공동체 스스로의 마음을 직면하게 하여, 의식이 고여 썩지 않도록 각성시키는 역할, 사회적 정화의 기능을 한다고 강조하며 그녀를 소설가이자 사회학자라고 말했다. 그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경제적 인간으로만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가치들을 날카롭게 조명하며 돈으로 인한 사회적 계층의 이면을 잘 파헤쳤다. '생활에 대한 고민이 있는, 생활과 가까운' 인물들에게 관심과 애정이 많다는 작가의 인터뷰처럼 생활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고민과 내적 갈등이 잘 드러난다.
돈이 존재를 규정하는 현실 속에서 도덕적인 가치나 공동의 선은 뒤로 밀려나고, 혼란을 겪는다. 우리 주변에 있음 직한 상황과 미묘한 심리 묘사를 통해 아프고 쓰린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게 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어렵사리 구해서 내 손에 들어온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덮으며 여러 주인공들의 먹먹하고 막막한 상황을 보면서 고민이 깊어진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이웃이 사라진 도시에서 좋은 이웃은 가능한지, 아니, 이웃과 안부라도 나누는지.
단순히 감정적 공감을 넘어서 인지적 공감을 통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이라도 하는지.
<빗방울처럼>에서 막다른 상황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주인공 지수를 위로한 건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유창한 모국어가 아닌, 도배하러 온 이주민 노동자의 서툰 한국어 질문.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 담백하고 단순한 질문에 따스한 온기를 느꼈다니...
‘안녕’이라는 말이 만남, 이별, 그리고 모두의 평안을 기원하는 다의적 단어임을 떠올리며
우리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꿈을 꾼다.
-오늘 어땠어요?
정말 궁금한 듯도 하고 마땅한 작별 인사가 떠오르지 않아 불쑥 튀어나온 말 같기도 했다. 오대표의 목소리를 듣자 이연의 머릿속에 문득 학교에서 배운 서사 이론 하나가 떠올랐다.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서 뭔가 뺏고 싶다면 그에게 먼저 그걸 주어라'라는 법칙이었다. 그래서 이연은 지금도 소설이나 연극,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면, 사랑이나 어떤 성취 혹은 명예 앞에서 너무 벅찬 감정을 표할 때면, 어김없이 '저 사람 곧 저걸 잃어버리겠구나' 예감하곤 했다. 이연은 오대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어떤 주문을 외듯,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랑을 어서 잃고 싶어 하는 연인처럼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 좋았어요. 너무너무 좋았어요, 정말.
김과 박, 서를 등진 오대표의 얼굴 위로 알 수 없는 표정이 스쳤다. 이연이 코트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얼굴에 썼다. 집에 갈 시간이었다. <홈 파티> 43쪽
집 우. 집 주.
옛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큰 집이라 여겼다지?
그런데 어떤 존재들은 왜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까? 실은 돌아왔는데 몇 번 돌아왔었는데 분이 굳게 잠겨 있어서 우리가 깜빡하고 닫아놓은 문만 한참 바라보다 떠난 건 아닐까?.... 사실 남편과 타임머신 대화를 나눴을 때 나는 남편이 우리만 아는 그때, 우리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어쩌면 나를 배려해 일부러 엉뚱한 소리를 한 건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그게 순도 높은 진심 같아, 앞으로도 같은 답을 할 것 같아 가슴 아팠다. 그리고 나는 손에 든 책을 보고야 비로소 종일 나를 사로잡은 깊은 상실감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그 낯선 당혹 앞에서 나는 손에 든 책을 다시 어느 자리에 두어야 할지 몰라 불 꺼진 현관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2021년 어느 가을밤이었다
<좋은 이웃> 142쪽
물론 나이 들어 좋은 점도 있었다. 젊은 시절 여기저기 밀가루처럼 지저분하게 흘리고 다닌 말과 마음들, 담백하지 못한 처신들. 쉽게 충분하거나 화를 낸 뒤 엄습한 부끄러움 같은 건 이제 많이 줄었으니까. 경험이 많다는 건 경험을 해석했던 경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헛구역질이나 트림은 '해석'이나 '의지'로 잘 막아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거였다. 기태는 자신이 늙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 믿었던 것조차 실은 아는 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삶은 또 얼마나 혹독할까?
<이물감> 176쪽
나는 뭐라 더 말을 못 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마나 한 말'을 최대한 진심 어리게 하는 것도 어른의 화법일 텐데, 누군가의 부고와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가진 표현의 한계와 상투성에 어쩔 줄 몰라했다. 상투성이 뭐 어때서. 세상에 삶만큼 죽음만큼 상투적인 게 또 어디 있다고. 그 '반복'의 무게에 머리 숙이는 게 결국 예의 아니던가.
<안녕이라 그랬어> 231쪽
잠시 후 노래가 끝나자 헌수는 '왠지 '가지 말라'는 청보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너한테 배웠어. 정말 많이 배웠어.'라는 가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쉽고 오래된 말. 다 안다 여긴 말. 그래서 자주 무시하고 싫증 냈던 말들이 몸에 붙는 것 같다'고. 아직 '인생'을 얘기하기엔 좀 젊다 싶은 세 살 연하 애인에게 나는 장난스레 물었다
-너는 그걸 누구한테 배웠어?
헌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농담하듯 받아쳤다
ㅡ어린 시절 가난에게!
<안녕이라 그랬어> 2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