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조종! 우리는 어디까지 자유로울까? 모드 쥘리앵 [완벽한 아이]
그런 식의 지배에는 우선 포식자가 있다. 포식자는 오로지 자신의 정신세계, 믿음, 욕구, 욕망만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식인귀와 같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단이거나 장애물일 뿐이다. 포식자가 먹잇감을 만나면 우선 지배를 위한 함정을 만든다. 무엇보다 상대에게 자신과의 관계가 절대적 사랑이라고 믿게 만든다. 그런 뒤 상대를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런 가치를 가질 수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로 다루면서 서서히 소유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포식자가 말하는 존재로 인지하게 되는 순간 함정을 벗어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그때부터는 희생자의 파괴가 순식간에 진행된다. 포식자는 육체적인 면과 지적인 면에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사회적인 면에서, 그야말로 모든 측면에서 철저하게 희생자를 파괴한다.
회사에서도 포식자가 위계를 악용해 먹잇감을 지배할 수 있다. 불행히도 정신의학자나 자기 계발 교육자들 중에도 식인귀들이 있다. 그들은 강력한 치료의 도구를 사용해 환자를 복종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파괴적이다. 그런 치료 도구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버지가 악용한 최면이다.
유사종교야말로 정서적 지배의 완벽한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언제나 영적 지도자 한 명이 제자들을 이끄는 사교 집단의 모델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부부관계에서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삼켜버리는 2인 사교'도 있고, 아버지나 어머니, 혹은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영적 지도자의 역할을 하는 '가족 사교'도 있다
나의 진료실에는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그런 식의 관계에 희생된 사람들이 자주 온다.
[완벽한 아이] 320-321쪽
우리는 모두 자유의지가 있고 스스로 선택하며 결정한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실상은 사회와 타인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디지털 기술과 AI의 발달로 인해 그 심리적 지배와 조종은 과거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정교해졌다.
1. 알고리즘: 족집게의 탈을 쓴 디지털 포식자
유튜브 앱이나 검색 앱을 열면 내가 전에 찾아본 내용이 자동으로 먼저 보여진다. '어쩜 내가 궁금해하는 걸 이렇게 잘 알지?' 어느 순간에는 마치 신의 계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AI 알고리즘은 내가 즐겨보는 채널과 성향에 맞춰 유혹적인 제목의 영상들을 줄줄이 내놓는다. 하나를 클릭하면 비슷한 내용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상을 보다 보면, 나의 '확증 편향'은 철벽처럼 견고해진다.
그 틈을 타 광고는 반복적으로 침투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강요처럼 느껴지던 것들도 반복 노출되면 익숙해지고, 어느새 나는 그것이 좋다고 느낀다. 그 시점부터 나는 세뇌된 상태, 즉 자본의 허수아비처럼 조종당하기 좋은 상태가 된다. 최근 구글 설정을 변경해 모든 맞춤 피드를 차단하고 검색 기록을 삭제해 보았다. 유튜브 창이 깨끗한 백지처럼 변했을 때 느낀 해방감은 잠시였다. 내가 필요한 것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 불편함과 허전함이 커서 결국 다시 원래의 설정으로 되돌려 놓았다. 거대 기업의 이윤 추구 방식에 내 의식과 취향을 기꺼이 내맡긴 셈이다.
2. 역사와 매체가 증명하는 '심리 조종'의 파괴력
이러한 디지털 지배는 과거 역사 속 포식자들이 사용했던 수법의 현대적 변용이다. 러시아 제국의 라스푸틴은 황태자를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황실에 침투해 황후를 심리적으로 장악했다. 영화 <겟 아웃>의 심리치료사가 찻잔을 두드려 주인공을 무의식의 심연인 '침잠의 방'에 가두는 장면이나, 조지 오웰의 <1984>에서 "2+2=5"라고 믿게 만드는 고문은 모두 '현실 인식 자체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알고리즘의 세뇌와 궤를 같이한다.
심리 조종의 논리가 국가 단위로 확장될 때, 그것은 나치 독일의 '민족 정화'나 크메르루주의 '사회적 청소' 같은 참혹한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 그들은 모두 '치료'와 '순수성'이라는 선한 명분을 내세워 개인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켰다.
3. 영혼의 사냥터: 구원이라는 이름의 지배
포식자의 무대는 디지털 세계나 실험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공포를 다루는 '종교' 또한 그들의 주된 사냥터다. 짐 존스의 인민사원이나 한국의 JMS(정명석) 사건은 구원과 치유라는 명목으로 신자들의 영혼과 육체를 유린했다.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메시아'나 '선생님'으로 믿으며 학대를 신성한 훈련으로 오해하게 된다. 의문을 제기하면 "믿음이 부족하다"며 죄책감을 심는 방식은 전형적인 종교적 가스라이팅이다.
4. 아픈 자각: 조종당하는 피해자이자 조종하는 가해자
모드 쥘리앵의 사례가 너무 극단적이어서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조종당하는 피해자인 동시에 타인을 조종하는 가해자였다는 아픈 자각에 이르게 된다.
나 또한 '사랑'과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신앙을 강요하고 특정한 삶의 방식을 강권했다. 교사로서 학교 시스템 안에서 아이들에게 심어주려 했던 가치들 역시, 어쩌면 사회 체제와 계급을 공고히 하기 위한 '합법적 세뇌'의 일환이었을지 모른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의도를 '선의'로 포장해 타인의 의지를 침해하곤 한다.
5. 디지털 주권과 자유의지를 향하여
디지털 심리 지배가 일상화된 오늘날, 심리 조종자는 어디에나 있다. 교육, 신앙, 구원, 그리고 사랑이라는 탈을 쓰고 말이다. 어떤 권위나 알고리즘도 나의 자아와 자유를 대신할 수 없다.
편리함이라는 미끼에 걸려 내 의식을 내어주는 대신, 불편하더라도 '비판적 사고'라는 불침번을 깨워야 한다. 진정한 치유와 성장은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취향과 가치관이 어디서 온 것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온전히 스스로 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알고리즘의 늪에서 잠시 빠져나와 백지상태의 화면을 마주했던 그 짧은 해방감을 기억하며,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금 확인한다.
Q "여러분도 '나를 위한 것'이라는 명목하에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