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황석영 [할매] 창비. 2025년 12월

by 여행하는나무

나무는 나이테 속에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흔적을 남겼다. 그 겹겹의 섬유질 속에 계절의 재활과 성장과 갈무리와 휴지의 반복이 새겨졌다. 이를테면 지상에서 계속되는 이 반복은 길건 짧건 시작이나 끝이 아니라 오래오래, 또다시 오랫동안 되풀이되는 변화에 지나지 않았다. 할매 37쪽


내 고향 산골 마을 우산각 정자 옆에는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있었다. 느티나무였는지, 팽나무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굵기가 우람하고 하늘 높이 뻗어있어서 올려다보면 까마득했다. 참새 방앗간 마냥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어른들의 사랑방이자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당산나무에 피가 흐르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다. 언젠가 나무 밑동 쪽으로 뭔가 진득한 게 흘러나와서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50년이 지나서 찾아가 보니 그 나무는 없어졌다. 흔적만 남아서 허전하고 아쉬웠지만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다.

2022년 한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 유명 관광지가 된 ‘우영우 팽나무’가 있다. 경남 창원 북부리에 있는 팽나무 이야기다. 유행에 빠른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가서 사진 찍어 인증하고... 그렇게라도 그 나무의 가치와 진가가 인정받아 다행스럽다고 해야 하나? 인간들의 한 생은 오래 살아야 120년. 그래서일까? 몇 백 년을 살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 저절로 경외감이 들고 감탄 어린 시선으로 오래 바라보게 된다.

창원 북부리 '우영우 팽나무' (문화재청)

몇 년 전에 “인천의 보호수를 찾아서”라는 연수과정에 참여해서 도심 속에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오래된 나무들을 만났다. 인천 청학동에는 540살 느티나무가 있다. <마을과 이웃>이라는 마을 공동체가 해마다 나무의 생일상도 차려주고 마을 잔치도 연다고 한다.

인천 청학동 느티나무

800살이 넘은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5개의 큰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 그 모양이 웅장하다. 봄이면 연초록 은행잎이 피어나고 가을이면 햇살을 받은 노란 잎이 황금처럼 빛나 보인다. 세월과 상관없이, 아니 오랜 세월 살아남았기에 아직도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영원한 현역 나무다. 800년 층층이 쌓인 나이테에는 어떤 사연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을까?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소설은 인간이 아닌 철새의 이동과 숲의 풍경으로 시작한다. 아무르 강 주변의 관목 숲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새가 먹이를 찾는 장면, 하늘에서 맹금류가 날아다니는 풍경 등 인간이 아닌 자연이 주인공이다. 인간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자연의 시점으로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동토의 땅 시베리아에서 시작된 생명의 이동과 순환이 한반도의 서해안 남쪽으로 무대가 전환된다. 개똥지빠귀 한 마리가 먼 거리를 날아와 서해의 낮은 땅에 팽나무 씨앗 하나를 배설했다. 그 씨앗이 발아해서 작고 여린 싹이 되고 드디어 살아남아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할매’가 되었다.


나무는 뿌리에서 물기를 빨아 들여 지상의 몸통 위로 끌어 울린다. 물은 굳은 껍질 속의 수관은 타고 올라가 가지와 잎의 끝까지 속속들이 적신다. 나무는 하루에 몇 시간씩 안개보다 더 가는 습기를 공중에 내뿜는다. 햇빛을 받아 생명 활동으로 만든 영양은 나무 전체에 퍼지고 일부는 뿌리에 저장된다. 숲에 사는 나무들의 뿌리가 땅속에서 서로 만나면 비껴가거나 돌고 헤어져서 자기와 남의 영역을 구분한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살다 보면 나무들은 서로가 누구인지 느끼고 분비물질과 냄새를 통하여 의사를 전달한다. 계절과 날씨 변화에도 알아서 대비한다.

할매 41-42쪽


할매 팽나무는 그곳에 뿌리내려 600년의 역사를 지켜보고 그곳을 지나간 생명들의 기억을 품고 있다. 팽나무의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겹겹의 층처럼 쌓인다. 하지만 할매 혼자가 아니다. 햇빛, 바람, 새들, 나비, 곤충, 풀과 꽃 그리고 계절 변화가 있다. 그리고, 온갖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생명들의 이야기가 함께 있다. 크고 작은 생명들이 살다가 스러지고 또 다른 생명이 깃들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 생명들은 긴 역사에서 보면 모두 하나의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네이버)

마치 한 편의 자연 생태 다큐멘터리 같은 이 소설에서 서해 갯벌은 중요한 자연 생태 공간으로 등장한다. 바닷물의 흐름, 온갖 게들과 작은 생물들, 철새, 바람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생생하고 다채로운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하지만 인간 역사 이전부터 유유히 존재하면서 생명을 키우고 생태 환경을 정화해 온 갯벌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인간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위태로운 환경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반복되고 순환하는 자연과 조우하면서 태어나고 죽고, 마을은 번성했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작가의 감옥 경험을 반영하는 캐릭터, 몽각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삶으로 보여준 고독한 수행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생존을 위해 먹이가 되어준 생명체들은 몽각의 일부가 되었고, 그의 몸은 다시 그 생명체들의 먹이가 된다. 우리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서로에게 속해있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한 차례 통증이 지나간 뒤에 비틀거리며 일어나 팽나무에게로 갔다.

나보다 먼저 있고 나중에 없어질 할매여. 이제 내가 먼저 없어지네.

그는 한때 그가 부지런히 잡아서 먹고 몸의 일부분이 되었던 것들에게 자신을 보시하기로 했다. 그래서 비틀거리며 갯벌로 나온 길이었다. 할매 83쪽


부근의 작은 모래구멍에서 기어 나온 칠게들이 그의 죽음에 몰려들었다. 칠게 떼가 그를 덮어버렸다. 바다는 다시 밀물과 썰물을 반복했다. 할매 84쪽


소설에서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흥망성쇠를 옴니버스식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굳건한 마을 공동체를 이루었던 조선 초기를 지나 조선 후기와 근대 초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과 마을은 여러 역사적 격변을 겪는다. 외세의 침략, 권력자들의 부패와 약탈, 천주교 박해, 천도교와 동학농민운동, 근대 격동기 사건들을 통과하며 평온했던 농촌 공동체가 역사 속 폭력에 흔들린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정치·종교 문제로 사람들이 희생된다. 고통당하는 민중들은 굶주려 죽기도 하고, 농민 봉기에 참여하기도 한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피었다 지는 사람들 이야기는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갖고 있는 거리감만큼 무척 담담하고 관조적으로 그려진다. 아마도 할매 팽나무의 시선으로 지켜보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카미카제 군사 비행학교가 들어서고 몽각이 심었던 팽나무는 무수한 총탄으로 죽어가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진다. 할매 팽나무는 모든 흐름을 묵묵히 지켜보고, 모든 것을 기억한다. 우리가 나무의 그 깊은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차분하고 관조적일 수 있을까?


마침내 마을터의 가장 안쪽 철망과 대숲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검은 몸을 뒤틀고 서 있는 고목이 보였다. 방지거 신부는 아! 하며 잠깐 그 자리에 섰다. 그는 나무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팽나무에 안기듯이 두 팔을 벌리고 뺨을 대보았다. 그때 그는 분명히 나지막한 쉰 목소리를 들었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할매 216-217쪽


20세기 후반 산업화와 개발의 시대에는 자연과 마을 환경이 크게 바뀐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새만금 간척사업이 추진되고 해안과 갯벌은 급격한 변화를 넘어 파괴되고 변형된다. 팽나무도 개발과 미국 군사기지 추진으로 인해 사라질 위험에 놓이는 존재가 된다. 환경지킴이들과 방지거 유산하 신부의 오체투지 삼보일배의 노력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그 위엄을 지킬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자연을 우리 이익에 따라 이용하기 바쁘고 개발 중심의 편리한 생활에 길들여져 있는 지금 우리, 팽나무는 여전히 쉰 목소리로 부르고 있는 듯하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이놈아, 언제까지 그럴 거냐.”


이 나무를 둘러싼 육백 년은 역사가 아니라 인연과 관계의 순환이며 카르마의 계속되는 전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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