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석모도 상주산
3월 하순에 강화도 석모도에 있는 상주산에 올랐다. 북한산처럼 화강암이 잘 발달된 산이다. 바위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땅 속 깊은 곳에서 단단한 마그마가 솟아 올라 거대한 바위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비바람에 깎이고 부서진 곳에 먼지가 쌓이고 씨앗이 날아와 싹을 틔워 풀과 나무가 자라는 울창한 숲이 되고 우뚝 산이 되었다. 지구는 무거운 걸음으로 꿈틀대며 변화하면서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은 그냥 흘려가지 않는다.
평일이라 산에 오르는 사람은 우리 두 사람밖에 없다. 느긋하게 천천히 걷는다. 소나무와 참나무, 소사나무 같은 정다운 나무들이 반갑다. 소나무들은 위로 우뚝 서기보다는 가지를 옆으로 뻗거나 줄기를 여러 개 만들어 자라고 있다. 세찬 바람과 소금기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 부근에는 여린 노간주나무가 많이 보인다. 햇빛이 가려 잘 자랄 수 있을까 염려스럽다. 그건 내 염려일 뿐, 나무는 스스로의 힘으로 잘 적응하고 살아갈 것이다.
참나무는 아직 회갈색 가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가지 끝마다 잎눈이 발아할 준비를 마쳤다. 새순이 눈을 뜨고 나오기 직전, 이문재 시인의 <새봄>이 떠오르는 그 순간처럼 보인다.
새봄
잔가지 맨끝
늦겨울 이른 봄
처음 눈뜬 새순이
뒤돌아보며 말한다
무서워요
앞에 아무것도 안 보여요
가지가 말한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안 보여
줄기가 말한다
네가 하늘을 보고 있는 거야
계속 올려줄 테니 앞만 보거라
뿌리가 말한다
하늘이 너를 보고 있는 거야
지금 네가 맨 앞인 거야
이문재,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문학과지성사, 2026
작은 새순 하나도 그냥 저절로 돋아나는 게 아니란다. 애쓰고 힘쓰며, 나무 전체의 응원을 받아 세상에 나온다 생각하니 그냥 바라볼 수가 없다. 대견하다 쓰다듬어주고 싶어진다. 진달래도 꽃봉우리를 조금 내밀고 있다. 일주일 정도만 있으면 활짝 피어날 것 같다. 꽃을 보기에는 조금 빠른 날에 와서 아쉽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연분홍 진달래꽃과 연초록의 새싹을 마음으로 느끼며 정상으로 향한다.
상주산은 정상이 264m이다. 그게 높지 않지만 해발 0지점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꽤 높게 느껴진다. 그래도 안전 밧줄과 등산로가 잘 되어 있고 중간 중간 바다를 조망하면서 걷기에 참 멋진 산이다. 화강암 바위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조금만 올라도 탁 트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지리산같은 흙산은 포근히 숲의 품에 안기는 맛이 있지만, 북한산이나 상주산처럼 암릉으로 된 산은 시원한 조망을 볼 수 있어서 나름 매력적이다.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바다는 갯벌이 발달하여 물빛은 맑지 않다. 흐린 물이지만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바다 생명체들이 살고 있을지 상상해보면 흐릿한 물빛마저도 아름답게 보인다. 석모도는 바다 못지 않게 드넓은 평야를 갖고 있다. 밥맛 좋은 강화섬쌀이 나오는 곳이다. 산에서 내려다보면 바둑판처럼 반듯반듯 정비된 넓은 들판이 풍요롭게 펼쳐져 있다. 부지런한 농부님들은 벌써 땅을 갈아엎고 봄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 보이는 모습은 360도 파노라마 풍경 맛집이다. 잔잔한 바다와 드넓은 평야, 조용한 아담한 마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북한과 인접한 강화도 교동도가 바로 눈앞에 있다. 맑고 쾌청한 날에는 멀리 북한의 개성시와 연풍군이 한 눈에 보인다. 오늘은 안개 낀 듯 뿌연 미세먼지로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북을 향해 설치된 망원경에 초점을 맞추어본다. 가까이 있으나 가지 못하는 땅과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며 이 땅에 평화를 기원한다.
하늘에는 까마귀 몇 마리가 까악까악 날고 있다. 저 까마귀들은 자유롭게 경계선을 넘어다니겠지? 살랑거리는 바람도 거침없이 오가고 있다. 북한 땅이 바로 코앞인데. 우리는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다.
남한 땅, 북한 땅, 구별이 어디 있으랴.
인간이 만든 경계선을 가리지 않고 넉넉하게 나누어주는 햇살, 별빛, 달빛.
우리는 자연만도 못하다.
통일이 되어, 아니 통일이 되기 전에도 남북한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화도, 석모도 상주산 산행은 이문재 시인의 표현처럼 ‘꿈을 꾸게 하는 꿈’으로 마무리되었다.
바람아 전해 다오.
이산가족들의 그리움을, 실향민들의 아픈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