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세어도 트래킹
“세어도 같이 가실래요?”
그녀를 새롭게 만난 것은 인천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에서였다. 서로 낯이 익어서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그녀와 같은 직장에서 일했는데, 접점이 별로 없어서 잘 알지 못했다.
“강사 선생님, 너무 재미있지 않아요? 저랑 코드가 잘 맞는 것 같아요.”
사실 나는 강사가 좀 산만하고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여 내심 실망하고 있는 터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그 강의 후반에 거의 나가지 못했다, 반면에 그녀는 종강 후 뒤풀이까지 함께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6개월쯤 지나서였다. 근로자복지관 어반드로잉 프로그램 첫 수업시간에 그녀가 반갑게 인사를 한 것이다.
“아니, 대단하시네요. 일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열심히 다니세요?”
“직장 다니는 게 별 재미가 없어서 20년 전부터 문화센터나 도서관 등 외부 프로그램을 찾아서 다녔어요. 집이 인천역 부근에 있어서 버스 타고 1시간 이상 걸려요.”
뚜벅이로 다니려면 쉽지 않을 텐데, 지역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찾아 열심히 다니는 그녀의 열정에 깜짝 놀랐다. 또 한 번 놀란 것은 그녀의 드로잉 실력이었다. 드로잉 시작한 지 3년 정도 되어서 이제는 연필을 쓰지 않고 펜으로 바로 그리기로 했다는 그녀의 그림은 무척 정교하고 깔끔했다. 나는 아직도 연필로 밑선을 그린다.
드로잉 수업의 만남은 세어도 트래킹으로 이어졌다.
“세어도 같이 가실래요?”
나는 그녀 혼자 섬여행 하는 걸로 생각하고 같이 가주면 좋을 것 같아서 제안에 응했다.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가 10년 정도하고 있는 독서모임 회원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에 나를 끼워준 것이다. 내가 혼자 가는 것보다 같이 가면 좋을 것 같다는 그녀의 오지랖 큰 배려였다.
세어도는 인천 서구 관할의 유일한 유인섬이다. 배로 10~1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섬이다. 서구 행정선이 하루에 몇 차례 왕복하고 있다. 주민들은 만석 부두에서 탈 수 있지만 관광객은 서구청 누리집에서 개별로 예약하고, 세어도 임시 선착장(서구 오류동 소재)에서 탑승해야 한다. 이 모든 정보를 그녀를 통해 들었다. 예전에 걷기 함께 한 언니로부터 세어도에 대한 이야기는 잠깐 들었던 기억도 새롭게 떠올랐다. 10시 20분에 배를 타고 3시 배를 타고 나와야 한다. 서구청 직원들이 들어갈 때, 나올 때 명단 체크를 했다.
선착장에서 그녀와 모임 회원들을 만났다. 5명으로 이루어진 독서모임으로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끈끈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나보다 10살 후배고 나머지는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선배들이었다. 같은 업종에서 일했기에 초면이었지만, 금방 무리 속에 섞일 수 있었다. 그녀는 모직 소재의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가죽 모자를 썼다. 트래킹 복장이라기보다는 문화 여행에 더 어울리는 복장이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내 작은 가방에 비해 엄청난 무게와 부피감이 느껴지는 가방에 좀 놀랐다.
“제가 먹을 것을 많이 챙겨 와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 모임에서 빛나는 그녀의 존재감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 모임을 주선하고 추진하는 것도, 세어도 여행을 추진한 것도 그녀였던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으면 혼자라도 가려고 했어요.”
세어도는 작고 아담한 섬이다. 바다를 보면서 섬 구석구석 걸을 수 있도록 트래킹 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부드러운 숲길도, 갈대 무성한 바닷길도, 겨울나무들 사이에 오래된 초록을 붙들고 있는 소나무 군락도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2월 말, 날씨도 맑고 걷기에 좋은 날이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마음 편하게 걸었다. 점심은 선착장 가까이에 있는 유일한 카페 <오아시스>에서 먹기로 했다. 시원하게 펼쳐진 넓은 통창으로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세어도 사진과 함께 “세어도에 오길 참 잘했다.” 문구가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든다.
나는 출발 전날 미리 보내준 그녀의 문자 그대로 간단히 내가 먹을 빵과 과일로 간식을 준비했다. 반면에 그녀를 비롯한 모임회원들은 간식을 넉넉하게 챙겨 와서 서로에게 나눠주었다. 김치볶음을 해오거나, 빵이나 과자도 대용량으로 가져왔다. 가장 큰 그녀의 가방 속에는 선물로 받은 수제 식혜 2L, 오쿠로 구운 계란 반판, 6시에 일어나 손수 만든 유부초밥에 개인별로 소분한 쥐포와 육포까지... 모임의 막내가 가장 손 큰 맏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조금 민망한 나는 카페에서 생강차를 대접하는 걸로 고마움을 전했다.
그녀 덕분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근사한 세어도 트래킹이 되었다. 새로운 섬을 가본 것보다 그녀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더 특별한 하루였다. 잘 몰랐던, 그래서 내 나름대로 판단하고 규정했던 그녀라는 섬을 조금이나마 새롭게 알게 되었다. 선입견은 선입견일 뿐이다. 사실은 잘 모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빠르다.
가까이 있으나 접근하기는 쉽지 않은 세어도, 초록이 무성한 봄이나 낙엽 지는 가을에 가볍게 걸으면 좋을 것 같다.
세어도에 오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