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환관이었던 조고는 시황제가 죽자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내세워 왕을 만들고
권력을 잡습니다.
승상이었던 이사를 비롯한 신하들을 모조리 죽이고 권력을 독차지한 조고는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폐하, 말을 충심을 담아 바치오니 받아주소서!!”
호해는 신하들에게 물어봅니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지록위마),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는가?”
사슴이라고 하는 사람, 말이라고 하는 사람이 나뉘었습니다. 조고의 말에 동조하여 사슴을 말이라고 한 사람은 자기편으로 삼고, 사슴이라고 한 사람은 적으로 간주하여 후에 누명을 씌워 죽이고 왕의 권력까지 장악합니다.
함양을 손에 넣은 조고는 항우와 유방의 군사가 진격해오자 호해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자영을 왕으로 삼지만 결국 자영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진나라는 기울어져버리죠.
권력을 잡고 윗사람을 뒤흔드는 행태를 말하는
사자성어 지록위마는 이 사건을 통해서 유래됩니다.
권력을 잡아본 적도 없는데, 이 사자성어가 우리의 인생철학을 세워가는 데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곰곰히 한 번 우리의 인생의 키를 누가 잡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지금 누구를 위해 시간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나요?
내가 아닌 사람이 나의 인생을 잡고 흔든다면 과연 우리의 삶이 진나라의 운명과 다른 점이 과연 있을까요?
많은 스피커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동당해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분명히 사슴인데, 말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일을 매일 반복합니다. 게다가 그들의 지령을 받아 댓글부대가 되기도 합니다.
홀로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결정하는 선택의 순간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된 것입니다.
사슴을 보고 말이라며 나를 흔들어대는 사람들과 메시지들은 삶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정책을 이기는 시장은 없다.”
“집을 팔 기회를 드리겠다.”
“지금이 고점이니 기다리라.”
최근에 제가 만난 지록위마 메시지입니다.
권력을 가진 그들의 메시지는 오만하게도 시장이라는 생태계를 바꿔놓아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말입니다.
자연을 이기는 생물이 없듯,
생태계인 시장을 이기는 개인, 정부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생존을 걸고 치열한 수싸움을 통해서 주고받는 시장의 원리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오만해지는 순간 도태당하고 시장에서 제외됩니다.
저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자주 봅니다.
최상위 포식자를 두려워하고 미운 마음이 생기지만 그들의 개체수가 인위적인 방법으로 줄어들면 생태계는 엉망이 됩니다. 인간은 오만하게도 수시로 자신의 관점으로 자연을 어지럽게 만듭니다.
왜 혁명을 부르짖고 개혁을 추진한다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더 사회가 혼란해지고 돈이 없는 사람만 더욱 힘든 세상이 되는 것일까요?
오만하기 때문입니다.
개혁은 오랫동안 차근차근 진행해야 합니다.
혁명은 개개인 각자의 인생만 하면 됩니다.
개혁과 혁명의 잣대를 남에게만 들이대면서
지록위마를 외쳐댄다면 사회는 매우 어지러워집니다. 왜 진나라가 그토록 엉망이 되었을까요?
지금 나의 인생이 혼란하고 비참하다면 원인은
밖에서 찾지 말고 내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동안 지록위마의 메시지에 동참해서 부하뇌동하며 살았다면 이제 전환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내 대신 싸워 줄 항우나 유방을 기다리며 멈춰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항우나 유방이 되어 내 안과 밖의 조고들을 물리쳐야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당장 내가 가진 생각과 다른 유튜브와 신문을
찾아보고 나의 생각과 다른 아내, 남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개혁이며 혁명입니다.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문이 점점 닫히고 있습니다.
문이 언제 다시 열릴지 모릅니다.
문 밖에서 들어오면 죽는다는 말에 멈춰 서서 서성이지 말고 일단 문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리고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세요.
내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세상을 나의 색으로 칠하는 연습부터 시작하면 진짜 색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