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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라톤 Aug 22. 2021

광야에서 배우는 삶의 원리

탐욕을 벗어나는 법-대가를 치르라

탐욕이 무엇일까요?

보통 많은 일러스트는 탐욕을 산업혁명기의

시가를 입에 문 자본가들을 탐욕가로 소개합니다.

많은 사람들도 자신과는 관계가 먼 탐욕을 일러스트처럼 자본가들을 떠올립니다.


부자가, 자본가가 진짜 탐욕가들일까요?


탐욕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최고의 결과를 얻으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일명 도둑놈 심보입니다.


풀어쓰고 나니 좀 더 와닿습니다.

공부 안 하고 성적 좋기를 바라는 것

투자 안 하고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

이자 없이 돈을 빌려 쓰려는 것

과도한 폭리를 취하는 것이 탐욕에 좀 더 가깝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르지만 시간과 노력,

투자, 대출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성취를 통해서 성공의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들이 탐욕가라고요? 당신은 선동당했습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여전히 그들은 대가 없이 성공한 결과물을 뺏고 싶어 합니다. 그것이 탐욕이고, 선동가들은 그것을 이용합니다.


금수저, 은수저라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가문의 누군가가 성취한 것들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흙수저면 제로부터 시작해서 올라가면 됩니다.


이사야 53장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라고 인정하기 싫어서 건너뛰는 대표적인 고난당하는 메시아의 모습이 담겨있는 책입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모욕당하고, 채찍질당하고, 고통당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인생과 몸으로 오롯이 받아냅니다.


죄의 결과인 고통의 문제를 담아내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의 길이라는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속건 제물이라는 표현으로 대가를 반드시 치르는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합니다.


광야에서 사탄은 돌이 떡 덩이가 되게 해 보라고 합니다. 양자역학으로도 불가능한 물질 간의 전이를 대가 없이 하나님의 아들의 힘으로 해보라고 합니다.


절벽에서 뛰라고 합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종교적인 신비, 절정의 경험이면 기독인이 될 수 있다고 많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방언하고, 설교에서 은혜받으면 기독인이 될까요? 세상의 정의를 만든다고요? 누가요? 정의를 만든다고 연설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쟁이요 싸움을 붙이는 사람입니다.


사탄에게 절하면 온 세상을 준다고 합니다. 자신을 찍어주면 부자들의 것을 뺏어서 준다는 말에 속아 여전히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립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사탄에게 절하면 그의 하수인이 될 뿐이죠. 깨닫고 난 이후엔 죽음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삶의 문제를 밖에서 찾지 마세요.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최고의 결과를 바라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열역학 법칙은 말합니다. 100% 효율은 없다.

대가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모터, 전기기구들 모두 이 대가를 최소화하기 위해 계속 연구하고 또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대가가 없는 에너지의 전환은 없다고 결론 내립니다.


한 방에 되는 것을 꿈꾸는 탐욕을 버리고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기독인 되기, 엄마 아빠 되기, 우등생 되기, 부자 되기, 건강하기 등

모두 대가를 치러야 가능합니다.


대가를 치러야 가능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쳐주신 진리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슴에 새겨야 할 탐욕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입니다.


광야는 바로 대가를 치르는 하나님의 나를 향한 계획을 만나는 곳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자신을 향한 계획이 있다고 흥분하지만 대가를 치르지 않고 그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사탄은  지점을 노립니다. 대가 없이 종교적 황홀경과 삶의 지위와 의식주의 성함으로 하나님을  삶에 채우려고 하는 법을 제시하고 받아들이도록 독려합니다.


왜 예수님이 말씀으로 이를 물리치시고 고난 받는 메시아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을까요? 반드시 이사야 53장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건너뛸 수 없습니다.


갯세마네 동산에서 끝까지 씨름하시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갈 길을 정하시죠. 죽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은 클라이맥스로 탐욕으로 얼룩진 죄를 사하시는 과정은 대가를 치르는 영성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어린이 찬양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 땅 속에 묻힌 아무도 모르는 보석 x2, 그 보석 발견한 사람은 기뻐 뛰며 집에 돌아가 집 팔고 땅 팔고 냉장고 팔아 기어이 그 밭을 사고 말 거야!!”


“기뻐뛰며” 에서 멈춰서 밭을 살 수 없습니다.

집, 땅, 냉장고를 팔아야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광야에서 돌이 떡 덩이가 되게 하는 공짜 점심이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눈물 흘리며 찬양하는 내 얼굴이 내일 향해야하는 치않고 버티고 있는 삶이 있습니다.  삶에서 여전히 사탄은 자신에게 절하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보내시는지 알고 결정했다고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으로만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저항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출애굽기 6장 1절)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대가를 치르고 하나님의 강한 손을 기다리는 매일의 도전과 인내가 모이고 모여서 비로소 탐욕을 이기는 힘이 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독교는 대가를 치르는 영성

즉, 현실에 뿌리박은 대가를 치르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이 땅에서, 내 삶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걸어가는 운동입니다.


기독인이 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감정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내일도 만날 그 순간순간들에서 피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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