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를 만나다-4. 분별

by 부라톤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다.

진리를 찾는다.

희로애락 애오욕을 자극해주면 기꺼이

소유를 지불한다.

돈, 인생, 시간, 삶을 지불한다.


문제는 진리가 희로애락 애오욕을 입으면

변질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가장해서

당신을 움직이게 하고 그들의 목적을 감춘다.

건물이 올라가고 사람들은 더 많아지고

그 안에서 거룩한 경험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거대한 퍼포먼스에 취해 하나가 된다.


희로애락 애오욕을 자극한 눈물을

은혜로 착각한다.


그 은혜로

정치에 동원되고 땅을 불하받으며(규제도 풀고)

큰 건물을 올리고 지도자로 추앙받는

능력 있는 목사들은 정치 언론을 지탱하는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큰 목사'가 된다.


한국교회의 한국전쟁 이후 발전사다.


한국전쟁으로 찢긴 민중의 마음과 가슴을

위로하며 동시에 그들의 마음 한복판에

복음의 탈을 쓴 반공사상을 주입시켰다.

(공산당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서북지역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된 교회들이 전쟁 후

남한기독교의 가장 강한 세력을 형성하였다-이들에게 반공은 삶을 무너뜨린 세력을 바라보는 당연한 시선이었다)

반공사상을 기반으로 교회에 모여든 군중을

사탄과 마귀를 물리치는 군대처럼 만들어

세력을 확장했다.


사람들은 산업화에 발맞춰 도시로 모여들었고

평일엔 산업화의 일꾼으로 12시간이 넘는 혹독한 일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일했다.

주말엔 각 고향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아 안식을 얻기 위해 교회로 모여들었다.

이들에게 예배란 정체성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동체 의식과 더불어 나라 발전에 방해가 되는 세력들을 척결하는 의식이었다.


반공사상을 기반으로 터 잡은 정치집단과

군사독재세력에게 교회는 좋은 파트너가 되었다.

행정부 내 중앙정보부 국방부 재정부 등의 핵심 요직에 교회의 엘리트들이 임명되었고

정부와 교회의 가교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한다.

입법부의 국회의원들의 자금세탁처가

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사법부의 엘리트들은 교회에 넘쳤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는 기독교회의 성도들이

연합하여 공산당을 물리치는 산업화의 역군으로

길러지는 사관학교였고 기업은 현장이었다.


축복=좋은 대학, 좋은 직장, 부와 명예

이 공식은 파트너 집단으로 들어가 가교 역할을

통해 카르텔을 형성하는 단계를

구축하기 위한 메시지로서 강력한 역할을 한다.

카르텔 안에서 자신들만의 기득권을 만들며 다수의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해도

전혀 죄의식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영향력을 갖게 되어

"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구조를 뒤흔드는 빨갱이들을 처단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교회는 점점 커지고

교회 목사는 큰 목사 혹은 스타 목사가 된다.

큰 목사가 되고자 목사 지망생이 되고 목사가 되어 동일한 코스를 밟는다.


명문대, 영향력 있는 교회들이 모여있는 전통적인 교단 타이틀 신대원, 미국 신대원, 현지 목회, 청빈받아 한국으로 귀환. 카르텔을 계승

대항하는 자는 교회 상위기관인 노회에서

면직 또는 이단 정죄.


이 카르텔에 언론과 법기관 들도 빠질 수 없다.


공생관계 수준이 아닌 한 몸이다.


기독교가 아니다.

이들에게 좋은 기독인은 예배에 안 빠지고

술, 담배를 안 하며 신우회를 만드는 사람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에 순종하여

기관에 헌신하는 목사말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축복을 받아 카르텔로 들어갈 수 있다.


정사와 권세, 권력의 주관자 악마가

40일 금식으로 지친 예수에게 던진 세 가지 시험

1. 돌이 떡 덩이가 되게 해 보라

->일단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냐?

2. 여기서 뛰어내려봐라 네 아버지가 구해줄 거다

->한번 정도 어기면 어때? 시험해봐 그래도 네가 섬기는 신이 한두 번쯤은 봐줄 거 아니냐?

3. 나한테 절해봐 세상의 모든 걸 줄게

->먹고살게 되었고 성공의 짜릿한 맛도 봤으니

이제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서봐야 하지 않겠냐?


"나의 기준을 따라 내 사람들과 함께하자.

다 네 것이 될 수 있다. 네가 세상의 왕이야."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조금씩 조금씩

진리의 길을 벗어나게하고

결국 자신처럼 악마로 만든다.

악마는 자신을 악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악마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능하며 결코 지는 게임을 하지 않는다. 엑소시스트나 귀신의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해서 사람들이 자신과는 상관없는 존재라고 믿게 한다.


악마는 카르텔로 현존한다.

그리고 실제 당신의 삶을 위협하고 먹고사는 문제로 당신을 깨어나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으로 이끌어 세상의 왕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인다. 멋진 삶을 보여주며

카르텔에 함께 하라고 독려한다.


언론과 재벌 기독교 보수라는 정치집단과

수사기관 사법 집단의 카르텔은 그렇게 악마가 되어 개혁을 부르짖는 시민들과 정치인들을 매장시키고 간첩으로 몰아서 죽이기까지 한다.

다수가 깨어나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깨어나도 빨갱이라고 몰아붙이고 대립, 분열의

이미지를 씌워 동원을 담당하는 교회를 움직인다.


교회에서는 교회 장로이기 때문에

당연히 뽑아야 한다며 사람들을 독려한다.

범죄자였던 사실과 상관없이 공안정국을 앞장서서

만들어냈든지 상관없다. 축복받아 떵떵거리면 자격이 충분하다고 한다.


하늘을 팔아 땅을 사 높은 곳에 서면

기독교는 사라진다.


이것이 축복인가? 배설물인가?


분별은 영성 거룩 노동의 가치에 눈뜬 부르심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얻는 시선이다.

부르심의 길을 걸으며 그들이 말한 축복이

바울이 말한 배설물임을 깨닫게 된다.


나락으로 떨어질 각오로 영성의 삶을 선택하면

거룩한 부르심으로의 여정이 시작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노동의 가치를 깨달으며 가시와 엉겅퀴를 헤치며 진리의 삶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음을 깨닫게 되고 나 자신을 찾게 된다.

아무리 자존감을 찾으려고 발버둥 쳐도 소용없다.

영혼의 성숙과정을 생략한 자존감은 없다.


자존감은 영혼의 성숙과정 가운데 자신을 찾는

작업을 통해 회복된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기독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존감을 회복시켜 삶의 이유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곳은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돕는 인큐베이터이지 동원 조직이 아니다.


카르텔은 한 영혼에 집중하는 교회의 존재 이유를

동원 조직으로 타락시켰다.


기독교회는 작고 한 영혼에 집중해야 한다.

동시에 지역에 뿌리내려 연합해야 한다.

동원의 행진을 부흥이라 착각하고 숫자놀음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목사들은 노동의 현장으로 내려와

땀과 수고를 통해서 가시와 엉겅퀴를 헤쳐나가며 부르심에 반응하는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을 배우며

부끄럼 없이 거룩한 회개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공의와 정의의 기준은 모세오경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한다.


공의와 정의의 기준을 배울 수 있도록

목사의 제자가 아닌 예수의 제자가 되어

깨어있는 민주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교회 구조와

사회구조를 만들도록 도와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발걸음에 순종함으로

숫자로, 건물로, 교단으로, 브랜드로 교회를 판단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기존의 반공사상에서 시작된 동원 숫자로 교회의

가치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나 자신이 에스겔, 요엘, 이사야가 돼야 한다.

누가 대신 외쳐주고 선택해줄 것이라 기대지 말고 성경을 보며 창세기부터 선배들이 걸어갔던 길을

마음에 새기는 작업을 하자.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줄

목회자가 존재하는 이유다.

선지자들이 활동하던 때와 지금의 현실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진리를 선포한 선지자가 내가 될 수 있다.


진리와 감정을 혼동하지 않을 때

분별의 눈이 생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카르텔 안의 기독교는 개독교가 되었다.


이제 다시 기독교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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