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남편 사이
새벽 세시 반.
아기가 울면 내가 먼저 벌떡 일어난다.
다른 이유는 없고 잠귀가 밝아 놀라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이의 필요를 새벽에 챙기는 일은
내 몫이 되는 날이 많아졌다.
이제 갑자기 자다가 놀라서 소리 지르는 습관이
많이 없어졌다.
정말 다행이고 놀랍다.
딱 필요만 챙긴다.
분유 타서 먹이고 기저귀 갈고
아내 품에 안기기.
나도 아기를 안아주고 싶지만
아기가 엄마만 찾는다는 사실에 조금 섭섭하다.
난 한 번 깨면 잠들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아기의 향기를 맡으면 잠들기가 쉬울 것 같았는데
허락하지 않는다.
엄마의 향기를 더듬어 안정을 찾는 아기는
내가 일어나도 내 곁으로 안아서 당기면 울음을
안 멈추고 엄마를 찾는다.
기저귀를 갈고 바로 엄마의 품에 안겨주면
다시 새근새근 잠든다.
잠이 안 온다.
눈만 껌뻑 껌뻑...
한 시간 정도 뒤척이니
다시 아기가 작은 소리로
필요를 챙겨달라고 찾는다.
아침해가 밝아온다.
이제는 밥을 해야 한다.
둘만 있을 때,
남편의 역할은 시어머니 막아주기 정도였는데
아이가 찾아와 셋이 되니
남편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겠다.
아빠가 되는 일이다.
아빠가 되는 일이 남편이 되는 지름길이다.
아빠의 역할을 찾아 필요를 채워주고
뭘 해야 할지 묻고 함께 아이의 부모가 되어갈 때
남편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어렵다.
아이를 낳고 아내는 심신이 매우 고단하고
예민한 상태이다.
아내도 처음 엄마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처음 아빠가 되었지만
몸의 급격한 변화는 겪지 않았기 때문에
몸으로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설거지, 밥하기, 아기 기저귀 갈기
분유 타기, 젖병 삶기, 먹고 싶은 거 사다주기,
목욕시킬 때 보조하기, 아기 안고 외출하기
소소하지만 아빠가 되며 동시에
남편이 되어감을 느낀다.
내 몸이 힘들었더니 아내의 건강 회복 속도가
빨라지며 아기도 안정감을 찾았다.
제일 좋은 점은 아기와 신체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아기가 나를 아빠로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사실이다.
아기가 내 품에서 웃기 시작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눈을 마주치고 웃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뿌듯함이 나를 가득 채운다.
아빠가 되어서야 비로소 남편이 되어간다.
육아가 시작되어야 아빠가 되는 법을 배우고
동시에 남편이 됨을 이제야 조금씩 알겠다.
아내들이 독박 육아에 괴로워하는 이유가
외로움 때문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함께하기로 약속한 남편이 남의 편이 되는 순간이
시가와의 갈등 상황과 육아 때문은 아닐까?
"도대체 내 편은 어디 있는 거지?"
난 불효를 각오하고 아내 편만 든다.
옆에 있는 아내에게 물어봤다.
"그건 정말 맞아."
어머니도 자기편인 아버지가 있으니
난 아내 편만 들고 내 선에서 다 커트한다.
뭐 속상해도 난 아내 편이 되려고 결혼했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미리 말했다.
아들임을 포기했더니 남편이 되었다.
이젠 반대의 상황.
아빠가 되어야 남편이 된다
아이가 생기고 적어도 아내에겐 잠이라도
자게 해주고 싶었다.
나에겐 가장 소중한 사람이니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잠자는 시간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래서 난 아기를 돌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보탬이지만, 서투르지만,
잠에서 깨는 일이 너무 어렵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남편이 되고 싶었다.
안 싸우는 일이 부부가 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 깨달은 탓일까
아내와 나는 정말 징그럽게도 싸운다.
그런데 싸우고 화해하고 서로의 입장과 감정을
오랜 대화의 시간을 통해 확인하고나면
하나됨을 느낀다.
싸우며 내가 깨달은 남편이 되는 방법(현재까지)
1.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녀의 편이 되는 일.
2. 한 번 작은 양보와 배려하는 일.
3. 그녀가 남긴 흔적을 정리하고 잔소리 안 하는 일.
4.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를 함께 돌보는 일.
작은 한걸음들이 쌓여 남편과 아빠가 된다.
"응애응애"
아기가 나를 부른다.
"응 아빠 간다~"
이젠 아빠가 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