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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길에서

by 부라톤

선택할 수 있다.

탁월한 설교와 감동의 음악과 예배와 나눔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찾는 일.

황폐한 곳으로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일.


사람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오아시스와 같은 곳에서 탁월한 기독교 정신이 가득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누릴 수 있다.


아무것도 없고 사람도 없고 메말라 보이는 곳에

홀로 서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일로

고통받을 수 있다.


당신의 주옥같은 설교를 듣기 위해서 인파가 몰리는 강단에서 아멘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은혜의 현장에서 ‘우리 목사님’ 소리 들으며 부족함 없이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당신의 어린아이와 아내 혹은 남편만 남아있는 좁거나 텅 빈 공간에서 성경 하나 의지하여 외칠 수 도 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도 해야 한다.

전셋집에서 몇 번 쫓겨나는 경험을 해보니 타협하고

집 얻어준다는 곳으로 갈걸 하고 후회도 많이 했다.

(목회자의 이중직이라는 말은 좀 하지 말자. 주의 종주제에 뭐 그리 대단한 직업이라도 되는 척 그만하자.)


솔직해지자. 내가 한국에서 목사가 되기 싫었던 이유는 하나다. 내 성격에 타협은 못할 거 같고 내 아이들에게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아버지가 30년 전 2만 명이 넘는 대형교회 담임목사를 마다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가서 개척하는 바람에 어릴 때 물새는 반지하방에서 끼니 걱정하며 개고생 했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타협은 못하겠다는 그 성격은 지금도 여전하다.)


<포기하고 싶을 때 붙잡아준 유진피터슨 교수님의 그 길을 걸으라.>


결국

돈 때문에 타협한다.

성도들이 듣기 원하는

은혜로운 설교 때문에 타협한다.


교회가 욕먹는 이유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동시에 모르고 있다.

순종의 길이 아닌 성공과 만족의 길로 가기 때문이다.


구제와 나눔을 하지 않는다고? 아니 엄청난

나눔과 구제를 베푸는 곳이 교회다.

오히려 그곳으로 사람들이 더 모인다.


그곳에서 목회 사역을 조금이라도 커리어에 보태려고 시작부터 유명한(?) 신대원에 예비목사들은 입학을 위해 줄 선다.


우리의 매력적인 종교 서비스를 향한 갈망이

그곳을 경험하지 못하면 본인과 자녀가 낙오된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한다.


능력 있고 이슈 메이킹을 잘하는 목사는 목회윤리를 저버리고 부목 사하다가 성도를 데리고 나와서 사람들의 만족을 채워주며 스타가 된다.(능력 없으면 쫒아가지도 않는다.)


유명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교회도 있다.


성도들은 좋다고 쫒아간다.

한국이고 미국이고 캐나다고 한국인들은 그렇게

교회를 하나의 소비 수단으로 전락시켜서 성공해왔다.(영미권을 참 좋아한다.)


“적어도 성도 수가 몇백 명 이상 되는 교회는 가줘야지. 이런 허름하고 작은 곳에서 뭐 배울 게 있겠어?”


성도나 목사나 생각하는 게 똑같다.

그리고 작은 교회의 사람들에게 뱀처럼 속삭인다.


“같이 가자. 여기서 뭐 먹을 게 있냐.”


조금씩 부르신 땅에 터 잡은 지역들의 작은 교회들이 무너지고 문 닫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기 시작한다. (왜 한국교회의 전체 성도 수는 줄고 지탄받는 기독교인데 큰 교회는 늘어가는가? 건강한 교회라는 거짓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정말 궁금하다. 어디서 낙오된다는 것인가?

신앙에서 낙오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진짜 신앙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부르심에 순종하여 죽을 때까지 버티는 것.

아이들과 부모님, 심지어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이 채우시고 입히신다.


그 순종의 길에서 아이들은 신앙의 옷을 입는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노라.”(시편 37:25)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자영업 하면서 사역을 하는 이유는 딱 하나.

타협 없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이다.


나 같은 사람이 하나 정도는 있어줘야

하지 않을까?


감히 한번 남들이 가지 않는 길에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진짜 하나님의 부으심을 맛볼 수 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왜 그렇게

성경에서 강조하는지 전 인생으로 경험 가능하다.


보증한다.


생각보다 그 길을 가는 사람이 많다.

보이지 않지만 친구가 많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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