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조각들을 다시 제자리에
브런치에 연결되는 계정이 꼬여서 계속 새롭게 가입해야 하는 페이지로 넘어가는 바람에 4개월 정도 아예 글을 못쓰게 되었다.
단순한 착각에서 비롯된 실수였는데 바로 잡았더니
원래의 계정으로 연결되었다.
지난 4개월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기간이었다. 이사를 2번이나 했는데,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인한 집주인의 실입주 통보, 은행이 정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저지른 실수, 그 과정에서의 전세대란.
타인의 실수가 나와 아내, 두 아이의 인생을 뒤흔들어댔던 것이다.
마치 내가 네트워크의 거미줄과 같은 연결을 이해하지 못해 접속장애가 발생했듯, 시장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정부의 정책은 돌고 돌아 내 인생을 흔들었다.
가재도구들을 창고에 맡기고 임시거처인
원룸 고시텔에서 살았다. 한숨만 나왔다.
방이면 술 먹고 싸워대는 옆방의 소음을 비롯한 악취가 풍겨대는 화장실과 음식을 해 먹을 수도 없는 좁고 좁은 열악한 환경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정치는 바로 내 삶을 건드리는구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 4개월간 접속을 하지 못한 일은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자 해결해야 할 작은 과제였다. 처음엔 프로그램을 탓했다. 그리고 삶의 엉킨 실타래를 푸느라 방치해놨다.
엉킨 주거의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는 은행, 국토부, 금감원, 변호사, 공인중개사,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4가정의 임대 임차인과 계속 상대해야 했다.
처음엔 내 책임도 아닌 일에 겪어야 하는 일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아이들을 데리고 당장 거리에 나가야 한다는 사실에 멘붕이 왔다.
그냥 버틸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런데 우리가 버티면 4가정이 모두 갈 곳을 잃고
헤매게 된다는 사실에 한 발 물러서 내가 피해를 감수하기로 했다.
유치원생 두 명을 데리고 3평짜리 원룸 고시텔에서 집을 구할 때까지 머물러야 했다.
이번 일로 등을 지게 될 뻔한 중개사분이 겨우 하나 남은 방을 구해주셨다.
너무 열악한 곳이라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그렇게 미안해하셨다.
첫 실수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진단하고,
그 실수를 내가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는지 변호사와 상담하며 압박할 수 있는 사람은 압박하고 품을 수 있는 사람은 품었다. 감정의 골과 남 탓을 잠시 접어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7월 4일부터 시작된 전쟁은 12월 28일 새로운 집에 이사를 하며 끝을 맺었다.
온 가족(일가친척 모두)이 집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다 같이 둘러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너무 많은 규제책이 나와 은행에서 적용 날짜가 아닌 대상에 대해 강제집행을 했기 때문에 도미노처럼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이었다.
남 탓은 쉽지만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남 탓은 습관이다. 왜냐하면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일보다는 남 탓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실수가 남 탓이 되고 남 탓은 인격이 되어 실타래를
엉키게 만든다.
실타래가 엉키면 모두가 피해를 보고
관계는 엉망이 된다.
우리가 겪는 전쟁은 현실이다.
이상만으로 현실에 접근하면 누군가 다치고
문제는 커져만 간다.
현실을 이상의 눈으로만 봤던 실수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용기가 모두를 살린다.
비록 내 잘못이 아니더라도.
실수를 바로잡지 않으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곧 인격이 된다.
인격이 되면 사람들은 등돌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