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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라톤 Nov 05. 2020

교회의 시작

기독교의 핵심을 한 단어로 말하면

순종이다.


그렇다면 뭐에 대한 순종일까?

부르심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보다 낫다는 사무엘의 사울을

향한 호통에서 알 수 있듯, 순종은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부르심의 단계, 순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1. 구원으로의 부르심

2. 지역(동네) 교회로의 부르심

3. 인생의 단계(시즌에 맞게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

-학교, 직업, 결혼, 독립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도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사람들이 많다.


할렐루야를 외치며 사탄을 물리친답시고

불교 사찰을 훼손하고 불 지르는 행동 따위가

순종 일리 만무하다.


유명 교회로의 쏠림이 가속화되고 교회 자체에 대한 혐오감으로 나 홀로 성도가 많아지며 지역교회로의 부르심은 잊힌 가치가 된 지 오래다.

(바울서신이 지역교회를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가?)


마치 메뚜기처럼 2-3년마다 교회를 옮기며 자신의 입맛에 따라 교회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 교회, 땅으로의 부르심을 외치는 일은 허공 속의 메아리와 같다.


오히려 지성의 시대에 역행하는 공허한 신비주의처럼 비칠 뿐이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선거로 뽑은 당신 의지를 대변해주는 존재가 아님에도 민주주의의 하나님을 만들어 우리의 의지를 표명해주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만들어낸 결과다.


나를 만족시키는 하나님.


그렇게 이스라엘도 그들만의 하나님을 만들어

섬겼다.


교회는 소비자들의 입맛을 위해 땅을 포기하거나

땅을 돈으로 도배한 화려한 건물로 채워 소비자들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한다.


물론 설교도 행복과 성공과 자기 계발, 지적만족을

의한 다양한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접근하고자 안간힘 쓴다.


교회와 설교는 그렇게 타협하며 권위를 잃어간다. 성도를 긁어모으기 위해 윤리 따위는 필요 없다.


같은 전략과 같은 메시지로 식상할 뿐이다.


그러나

약속의 땅, 부르신 땅, 소명의 땅이 분명히 있다고

성경은 창세기부터 말한다.

선교지만 소명의 땅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우리가 주목해야할 곳은 바로 우리의

삶의 경계인 대한민국이다


타협은 없다.

우리는 그의 종이다.


부르심은 나를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땅으로 인도한다. 그 여정에서 우린 우리 자신을 내려놓는 숱한 훈련을 받고 자존심과 경험과 명예를 버린다.


항복(surrender)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목사든지 성도든지 상관없이

주의 종이 된다.


민주주의 지식인이며 동시에 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소비자들은 순종의 과정에 입문하기 시작하면

매우 당황한다. 종이 아닌 주권을 가진 나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시작된 훈련을 피해 갈 방법은 없다.


안심(?) 해도 좋은 사실이 있다.

많은 노아의 후손들 중에 아브람이 선택되었듯,

아무에게나 훈련이 시작되지는 않는다.


순종의 훈련이 시작된 것은 당신의 중심을

여호와께서 눈여겨보셨기 때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내가 아니길 바란다.


그의 뜻이면 가고 뜻이 아니면 멈춘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각각의 역할과 직분을 가지고

함께 공동체를 이룬다.


그것이 교회다.


그곳에서 우린 주제를 알게 된다.

시즌에 맞게 학교, 직업, 가정을 이루며

하나님 나라의 운동에 동참한다.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은 가장 중요한 지역교회로의

부르심을 잃어버리게 만들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정치 지지기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정책을 집행하는 통치자가 지지율을 위해 움직이듯 하나님도 그렇게 일한다고 당신을 이해시킨다.


당신을 설교, 음악과 삶 전체를 기독이라는 이름을 달고 소비하게끔 유도한다.


선지자들은 이 풍습과 세태와 맞서 싸우느라 인생 전체를 통째로 하나님께 드렸지만 평생 핍박을 맡았다.


메시지를 바꾸라.

정죄하지 말라.

너만 하나님 믿냐 오버하지 말라.

평범하고 소박하게 삶을 누리도록 놔두라.


복을 갈망하던 옛 세대를 비웃으며 지적인 세대들은 자신들의 학문과 기준으로 설교를 재단한다.

팝과 대중음악의 옷을 입은 찬양들은 감정에 못 이겨 흐르는 눈물을 은혜로 착각하게 만든다.


설교에 은혜받고 찬양에 눈물을 흘리고

교회를 나서지만 현실에서 만나는 도전에 쉽게 동화되고 소비의 삶을 산다.


갑자기 눈이 떠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시작된 것이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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