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에 관심이 생겨 그 분야의 책을 고르는 경우가 있고, 별생각 없이 책을 골랐는데 읽다 보니 그 분야에 관심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후자였다.
차에 대한 글을 읽다 보니, 몇 해 전 템플스테이로 완도에 위치한 신흥사에서 마셨던 차가 생각났다. 스님이 직접 만드셨다는 차 몇 가지를 정성껏 내려주셨는데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었다. 혼자 머그컵에 인스턴트 녹차 티백을 하나 넣어 마실 때와 느낌이 너무 달라 이유를 찬찬히 생각해 봤다.
우선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기대감이 생긴다. 찻잔을 예열하고 차를 추출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동시에 차의 이름은 무엇이고, 차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시게 될 차가 어떨지 점점 궁금해진다. 차분한 공간에서 차를 마시다 보면 향과 맛에 집중하게 되어 차가 더욱 맛있게 느껴진다. 여기에 평온함은 덤이다.
보통 정신을 차리려고, 또 카페인에 중독되어 매일 1~2잔씩 커피를 마셨다. 커피를 좀 줄이고 차를 마시는 습관을 갖고자 작가분이 추천하는 차 중에서 대익차 보이차 7572 숙차(357g)를 주문한 후 검색사이트에서 ‘다기세트’, ‘다구세트’로 폭풍 검색을 했다. 싼 것은 3만 원 대도 있었고 디자인이 괜찮은 국내산은 10만 원대, 우리나라 도자기 명인이 만든 것은 20만 원이 넘는 것도 있었다. 평소 같으면 ‘고민은 배송만 미룰 뿐’하고 바로 결제했겠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사기로 했다.
그러던 중, 언니와 테라로사 카페를 갔는데 디자인이 예쁜 티팟(Stump Teapot)이 있어 유심히 보고 사진을 찍었더니(지금 보니 엄청 티 나게 행동했구나) 언니가 고맙게도 티팟을 선물해 줬다. 티팟 인퓨저에 보이차를 넣고 우려낸 후 집에 있던 커피용 머그잔에 차를 따라서 마시는데 스님이 주신 차를 마셨을 때 좋았던 느낌이 전혀 없었다. 혼자 큰 머그컵으로 보이차를 연거푸 두 잔을 마시고 나니 향이고 뭐고 너무 배가 불러 화장실만 자주 갔다. 내가 생각한 차 한잔의 여유가 아닌데... 아, 작은 찻잔을 사야겠다.
‘에라토’ 브랜드의 옳음 다기잔과 다기잔 받침을 구입했다. 역시 도구가 중요하다. 작은 잔에 따라 마시니 확실히 차가 더 맛있었다. 첫 잔의 맛과 시간이 지나 더 진하게 우러난 두 번째, 세 번째 잔의 맛을 비교해서 즐길 수 있었다.
다도에 대한 유튜브도 보고, 블로그에서 검색해 보니 보이차를 해체할 때 차 손상을 최소화하는 차침도 필요하고 찻잔을 예열하려면 숙우도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도 주문해야 하나? 차침은 나무젓가락으로, 숙우는 드립 커피 추출할 때 썼던 서버로도 대용이 가능하다고 같다. 이렇게 소비요정을 잠재웠다. 다기 갖추는 것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이제 차를 더 자주 즐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