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렇다고 나도 그런건 아니기에 우리는 표현해야 한다.
우린 감정과 관계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 없다.
항상 그래왔다.
들여다보지 않은 감정은 표현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반복적인 실수로 나타났다.
사회에서 불편한 관계로 인한 감정을 다스리는 법, 좋은 관계를 위한 감정을 쌓아가는 방법에 대해 딱히 배워본 적 없었다.
성인이 되며 내던져지듯 사회에 나와 기계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반복적으로 감정 소모를 해왔다.
20대는 그런 시간인가 보구나 하며, 너덜너덜 해진 마음은 애써 붙잡은 채 본능적으로 불편한 대인관계 속 표현해야 하는 감정과 그렇지 않은 감정을 분리해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으면 참 좋았으련만,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감정으로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 인한 힘듦은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문제가 되었다.
힘듦이 반복될수록 점점 예민해져 갔고, 예민해진 나는 스스로가 가진 문제를 들여다보지 못했다.
“나는 왜 화가 났을까?”
“나는 왜 우울할까?”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화나는 일이 많아지고, 우울한 일이 많아졌지만 그 이유는 그저 '내가 힘들구나' 내지는 '조금 지쳤구나'라고 생각했다.
예전보다 행복감을 느끼는 일은 점차 줄어들고, 그저 휴식만이 삶의 행복인 시간들로 채워져갔다.
그게, 어른이 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니 그런 줄 알았지만, 사실은 내가 마주해야 할 감정을 외면하며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미련하게도 항상 변화의 필요성을 찾는 시점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시기였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즈음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만 할 때, 처음으로 감정을 들여다보려 노력했다.
어째서 그 순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끌어안고 살았을까에 대한 아쉬움과 과거에 대한 회의가 컸기에 "많이 힘들었구나" 이런 방식의 공감은 사실 별로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지나간 일들은 돌이킬 수 없음을 잘 알기에 앞으로 일어날 같은 상황에서 조금 더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갈 수는 없는지 고민해 보고 싶었다.
힘든 감정뿐만 아니라 행복했던 감정까지도 다시금 떠올리며 이해를 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관계에서 내 솔직하지 못하는 감정 표현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어제도 오늘도 내가 했던 가장 쉽게 내뱉어지는 말 "괜찮아"
가장 흔히 남을 이해하고 본인이 편하기 위해 내뱉는 말이지만, 어쩌면 가장 나와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괜찮다는 한마디에 섣부르게 서로를 이해하고 앞으로를 살아가게 되는 말,
난 그걸 '섣부른 감정 표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으며, 내 섣부른 감정이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표현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정말 괜찮아?"
괜찮다는 말을 내뱉기 전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고, 상대에게 한번 되물어 보자.
내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좋은 방향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타인의 감정 또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관계에 있어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며 “나만 힘들면 다 괜찮아질 거야”라고 생각했던 시간들은 결국 문제에 부딪칠 때면 상처받을까 두려워 문제를 외면 혹은 회피하는 성격으로 굳어지게 되었던 것 같다.
딱히 누군가를 좋아하지도, 누군가를 애써 싫어하지도 않는, 애매모호한 관계를 유지하는 에너지조차 불편해 외로움을 택하는 삶
관계 회복 능력이 저하된 나의 모습이었다.
관계를 좁히고 멀리하는 것은 결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당연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감정의 교류가 피곤해짐에 따른 행동이며, 나를 표현하기 어려워졌음을 보여주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건강한 관계는 서로의 삶을 지속적으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당겨준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런 관계들은 서로를 잘 표현하는 관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행히도 내겐 좋은 관계들이 아쉽지 않을 만큼 남아있고, 그 관계 속에서는 최대한 잘 표현하려 노력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당연한 감정은 없어야 하며, 서운해지거나 갈등이 잦아질수록 우리가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표현을 충분히 했는지 되짚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같은 수 없고, 모두 잘 맞을 수 없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설 줄도 알아야 하고, 돌아선 서로에게 응원해 줄 줄도 알아야 한다.
관계가 어려울수록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건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감정 낭비가 아닌 상대에게 나를 표현하는 행동일지도 모른다.
물론, 감정 표현에 뒤따라오는 문제는 결코 편안할 수만은 없지만, 표현함으로써 비로소 마음속 힘듦은 비워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마음속에 담아두고 쌓아뒀다간 언젠가 그릇이 흘러넘칠수도 깨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