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게 좋은거지 라고 말한다면, 그건 네가 희생해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넌 배신자야
스물 셋-넷 무렵 처음 들어가고 퇴사한 회사에서 난 배신자가 되었다.
업체간 컨소시엄을 진행하는 사업을 초반부터 기획하고 개발했던 난, 내가 속한 회사와 함께 일하는 화사 모두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중심에서 회사들간의 진행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업을 진행하던 중 중간에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난 속해 있던 회사를 떠났다.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그곳에 있었기에 시간이 될 때면,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으로 중간의 입장에서 서로의 일을 돕고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간질로 인해 하루 아침에 난, 서로의 정보를 유출하는 사람 정도로 관계는 변질되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서로를 돕기 위해 한 일이었는데, 한 순간에 난 그들을 방해하고 그들의 일에 훼방을 놓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어른들에게 내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본인들이 설명하기 좋은 위치에서 명분에 알맞는 이유로 나를 깎아내리며 사업에 필요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갔던 것 같다.
"그래도 함께 일하며 좋은 성과들을 만들어나갔던 직원인데, 이렇게까지...?"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잘못이라면 잘못이었기에 아쉬움과 함께 꽤나 골치아픈 시간들을 보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비난은 물론이고, 회사를 소개해준 교수님들은 내게 연락해 이유도 듣지 않고 "직접 찾아가서 사과해라"라는 말만 반복했다.
심지어 찾아갔는지 안갔는지 체크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화나고 분한 일이지만, 어쨌든 그 상황을 만든게 나였기에 모든걸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고 찾아가 사과하며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나 하나 나쁜 사람이 되며 그 일은 마무리 되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관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기에 결코 내 생각대로만 될 수는 없음을... 그리고, 살다 보면 누군가의 삶에 훼방꾼이 될 수도 있고 어떤 누군가가 나에게 그럴 수도 있음을 경험했다.
하지만, 인생은 실전이고 현실이라고 했던가 긴 시간 사회생활을 이어나가다 보니 내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사회에서 종종 마주하게 되었다.
타인을 발판삼아 본인의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모습
모든 상황을 본인 위주로 해석하고 끌고 나가는 소시오패스 같은 사람들
본인도 겪어왔을 힘듦을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겪도록 하는 사람들
내가 겪었던 일들도 그랬을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좋은 핑계와 명분이 필요한 그런 상황에 끼워넣기 좋은 퍼즐조각 중 하나.
사람들은 좋은 게 좋은거라 말하지만,
좋은게 좋은 일들은 일상에서는 몰라도 사회에서는 그다지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10년쯤 사회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느끼는건, 수많은 사람들이 철저히 자신만을 위해 생각하고 살아간다는 것이고, 사회에는 항상 일을 잘하고 착한 사람들 보다 가식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게 "좋은게 좋은거지"라는 말이 낳은 결과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일을 하다보면 좋은 기회도 생기고, 좋은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책임은 항상 지고자 노력하는 사람만 견뎌내기에 때로는 누군가가 새로운 삶을 준비해보라는 듯이 나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리기도 하는게 내가 바라봐 온 전반적인 청년의 삶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난 여전히 30대 중반을 바라보며 "좋은게 좋은거지", 부딪히는 삶보다 피하는 삶을 선택해 살아가고 있긴하다.
다만, 그게 가능한 것은 굳이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희생양이 될만한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지 결코 사회가 바뀐 것은 아닌 것 같다.
누군가 약한 당신에게 "좋은게 좋은거지"라며 이 상황을 가볍게 넘기고자 한다면, 그건 분명 당신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건 항상 의도치 않은 상황들을 마주하며 의도치 않은 상황들을 만들기에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당연한 일은 아니다.
그저, 부당함을 그대로 부딪히고 견뎌 낼 단단함이 필요할 뿐